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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혜민 Apr 22. 2024

오빠는 시율이가 지켜줄 거야


할머니를 사랑하는 시율이는 방학을 기다립니다. 방학을 하면 금자할머니집에 오래오래 있을 수 있거든요. 금자할머니는 시율이의 이야기를 끊지 않고 끝까지 들어줘요. 잠자리에서도 시율이가 듣고 싶은 자장가만 불러줘요. 할머니집에서 평화로운 나날 중 하루였어요. 소파에 앉아 커피를 마시던 할머니 곁을 비워둘 수 없던 시율이는 할머니 엉덩이에 자신의 엉덩이를 바짝 붙입니다. 손에 든 티니핑스티커를 할머니 손톱에 하나하나 붙이기를 열중해요. 또 삐져나가는 것을 용납 못하죠. 그러다 무심하게 툭 내뱉습니다.   

  

“할머니. 밖에 나가면 시율이가 오빠 손 꼭 잡아야 해.”

“왜?”

“시율이가 오빠 지켜줄 거야.”

“오빠 혼자 잘할 수 있을 거 같은데?”

“아니야. 오빠 밖에 나가면 무서워서 못가. 시율이가 손 잡고 같이 갈 거야.”     


시후 이름을 생각하면 방금 전 맛있게 고구마를 먹던 모습이 떠오르는 반면, 시율이를 생각하면 신생아실 침대 위에서 혼자 누워있던 모습이 먼저 떠오릅니다. 이내 가슴 끝에 이유를 알 수 없는 감정선이 찌릿하 코끝으로 스며듭니다. 아마 미안함이겠죠?     



30개월이란 이른 나이부터 치료를 시작한 시후는 지금도 매일 치료실을 오갑니다.

아, 목요일은 쉬네요. 주 5일 치료를 했더니, 주 후반부로 갈수록 힘든지 학교에서 울더라고요. 특히 목요일 오후 체육시간에, 줄넘기를 하면서 더 두드졌어요.


30개월 때, ‘아아’하며 알아들을 수 없는 외계어를 저 혼자 분석하듯 해석해 유추하곤 했는데, 9살이 된 지금은 ‘게임하게 돈 주세요! 1조 주세요!’하는 것 보면 감사할 뿐입니다.     


그런데요, 시후가 이렇게 자신의 속도로 스트레스받지 않고 성장할 수 있었던 것은, 저희 집 장군 시율이 덕분입니다. 새침데기 장군은 엄마랑 단둘이 다이소 스티커 쇼핑을 좋아하지만, 엄마랑만 데이트한 게 미안한지 집에 가면 오빠를 부릅니다.


“오빠. 잡기 놀이하자. 시율이는 블루 할게~ 오빠는 뭐 할 거야?”

“나는 그린!”

“그럼 오빠 숨어~ 시율이가 쫓아갈게!”    

 

6살 꼬마 숙녀는 티니핑을 사랑하죠. 그런데 말이죠, 초등 오빠들이나 좋아할 만한 게임캐릭터 ‘로블록스’를 다 알아요. 왜냐하면 시후 오빠가 좋아하거든요. 그리고 욕심 많을 6살 꼬마가 자신의 욕구를 낮추고 오빠가 사랑하는 캐릭터로 잡기 놀이를 합니다. 그것도 자신이 술래를 하면서요.     


놀이 중에도 끊임없는 상상 놀이가 유지됩니다. 상황언어를 공하는 거죠. 중간중간 집중력이 흐트러지는 시후를 시율이가 호락호락 넘어가게 두질 않습니다.


“오빠! 내가 물어봤잖아~ 대답해야지! 어디 공격할까?”

“손바닥 간질간질 공격!”


침대 위에서 블루의 간질간질 공격으로 결국 그린이가 참패를 합니다.


“깔깔깔~~~”      








저는 시율이를 생각하면 떠오르는 감사한 분이 계셔요. 바로 시후의 유치원 선생님이셨던, 박소연선생님입니다.(3년의 시간에 농축된 사랑을 듬뿍 받아 평생 갚으려고 해요)

선생님께서 저에게 늘 잊을만하면 일깨워주신 부분이 ‘시율이’였어요. 시후선물을 보내주실 때도 늘 시율이 선물을 잊지 않으셨죠.


“어머니, 시율이가 진짜 보물이에요. 저 믿으셔야 합니다.”

그때는 믿지 않았죠. 그런데 이제는 알겠더라고요.



가끔 성가셨어요. 지금 시후한테 하나라도 더 알려줘야 하는데, 시후 공책에 낙서하는 시율이에게 화도 냈어요. 시무룩하며 방을 나간 시율이는 얼마의 시간이 지나지 않아 또 시후 곁에 옵니다. 똑똑한 녀석은 이번에는 공책에 낙서하지 않아요. 그저 옆에서 지켜보죠. 그리고 틈을 지키다 한마디 합니다.


“우리 오빠 잘한다!”


부족한 전, 책상 앞에서 하염없이 웁니다.     






비장애자녀는 태어나면서 아니, 임신했을 때부터 많은 것을 포기하고 살아갑니다.

일단 태어나자마자 아빠엄마를 뺏겨요. 그리고 티니핑 만화를 보고 싶은데, 시, 청각이 예민한 오빠 때문에 TV는 늘 꺼져있어요. 먹고 싶은 것도 구강, 후각이 예민해 메뉴가 정해져 있죠.


그런데 늘 참을 수만은 없어요. 6살 꼬마잖아요.

서러움이 켜켜이 쌓 목 끝에까지 차오르면 세상 잃은 듯 웁니다. 그 앞에서 저도 같이 웁니다. 시율이 덕분에 울고 나면 저도 개운해지네요.     



이젠 시선을 조금 넓히고 살아갑니다. 시후도 중요하지만, 시율이도 제가 사랑하는 저의 하나뿐인 딸입니다. 시후를 활동보조 선생님께 맡기고, 단둘이 영화를 보러 갔어요.

‘겨울왕국’을 보는데 앉질 않네요. 어느새 엘사로 변신해 노래하고 춤을 춥니다.

그날 이후, 시율이를 생각하면 떠올랐던 장면이 신생아실에서 영화관으로 바꿨습니다.

시율이도 좋았는지, 엘사영화 이야기를 아직도 하네요.     



저는 시율이에게 특별한 것을 하지는 못할 거 같습니다. 복직하고 나니, 정말 빠듯하네요.

그래서, 일상을 함께하려 합니다.


시후에게 적당한 거리 두기를 시작했어요. 발달은 느려도 9살에 맞게 스스로 생각하고 선택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기 시작했어요. 그리고 그 틈을 시율이와 공유합니다. 그래서인지 시후가 요즘 조금 샘을 내기 시작했습니다.

     


시율이와 같은 또 다른 시율이도 일상 속에서 행복했으면 좋겠습니다. 시율이 표현으로 대신합니다.


“시율이 마음에 행복이가 찾아왔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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