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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혜민 Oct 11. 2024

사주 보는 한의사


시어머니 손에 이끌려 시골 깊숙한 곳에 자리 잡은 그곳에 들어섰다. 둘러봤을 때 한의원임을 바로 확인하기 어려운 그곳은 허름한 외관으로 걸음이 더 이상 진행되지 않았다. 동행한 남편 또한 다르지 않았는지, 의심의 눈초리로 여기저기를 훑어보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내 그는, 나를 그곳으로 먼저 밀어 넣었다.  

   


세월과 함께 스며든 녹을 채운 낡은 의자에 몸을 기댔을 때 근엄한 표정의 한의사는 무작정 손을 끌어당겼다. 오른손 손목에 그녀의 손가락이 얹어지고 살며시 눈을 감은 그녀는 심장소리에 귀를 기울이기 시작했다. 이내 이곳저곳을 살피는 그녀의 매서운 눈빛은 때론 불쾌했고 대부분 불편했다.


손 여기저기를 주무르기도 이따금 전해지는 거친 압박함께 몸이 얼어붙었다. 그 상황 모면하고자 고개만 옆으로 내뺀 순간 혈압계가 푸-하고 팔의 긴장을 놓아준다. 그제야 함께 숨이 쉬어졌다. 그리고 그녀가 입을 열었다.     



“뭐 그렇게 바삐 살아?”
“네?”
“그렇게 지 혼자 다 하려고 하니깐 몸 여기저기가 아프지!”

    

진맥에 그런 것도 알 수 있냐며 너스레를 떨었지만, 가슴은 동요되기 시작했다.

지난 나의 삶이 그랬으니깐.      






지난날, 출간을 위해 글을 적기 시작했다. 백지에 적어 내려가는 기록은 그저 내가 행복해서 시작한 일이다. 어떤 날은 추억에 젖어 혼자 깔깔거리며 적기도 하고 또 어떤 날은 엉엉 울며 차오른 눈물을 쓱쓱 닦아내며 써 내려갔다. 그리고 그 기록이 하나의 뭉치가 되었을 때, 먹먹함으로 돌아왔다.           


그땐 몰랐다.

가혹한 스케줄에 몸이 부서지는 줄도,

묵묵히 따라오는 30개월 시후의 삶도.

그저 치료를 이유로 아이에게 지원해줄 수 있는 우리의 상황에 감사할 뿐이었다. 그런데 눈앞에 놓인 뭉치를 마주하고서야 깨달았다.


‘지난날 우린 참 지독했구나.’     



나의 삶은 우리와 같은 아픔을 가진 가족과 다르지 않다. 우리는 흔히 겪지 않는 아픔을 경험한다. 그 경험은 불안을 증폭시키고 원천을 알 수 없는 우울로 서서히 잠식되어 결국 고립을 선택하기도 한다.


난 그런 당신을 만날 때면 유독 마음이 아프다. 그래서 여전히 현장에서 나와 같은 당신을 만날 때면 마음이 요동치는지도 모른다. 그 연유에 지난 1년 이곳저곳 기웃거리며 일을 만들고 있다. 덕분에 탈이 났음을 엄한 한사 앞에 들통이 나고 말았다.



까칠 미를 살짝 품은 난, 진맥을 통해 건강상태를 확인지 않고 마음을 확인한 그녀가 탐탁지 않았다. ‘경찰 앞에서 약을 파네.’라며 꾼을 의심했으나 그녀가 내게 되돌려준 것은 진심이었다.     


‘천천히 해도 된다고. 쫓기듯 살지 말라고.’      



자리에서 일어나 문을 열고 나왔다. 처마 끝에 매달린 오래된 종의 묵직한 소리와 긴장된 몸을 이완하려 가슴을 연다. 그제야 습한 기운이 사라진 따스한 가을 하늘을 보았다. 천천히 흔들리는 연둣빛 잎사귀의 간질거림을 느다.     






그녀의 두툼한 손이 나에게 포개졌다. 그녀의 아귀에서 벗어날 수 없는 따뜻함은 이내 토닥임과 함께 뜨거워졌다. 앞으로 시후가 살아갈 세상이 따뜻함에서 뜨거움으로 녹진해질 수 있다면, 나는 아마도 한사의 조언을 듣지 않을 것이다.


사진출처 :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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