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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혜민 Aug 08. 2024

너는 공주야


오늘도 YES24를 서성인다. 여전히 종이책이 손끝에 맞닿는 감촉과 종이 뭉치가 주는 묵직한 내음이 좋다. 꽤 오랫동안 종이책에 빠져, 아이들을 배제했다. 시율이는 꽤 서운했는지 오늘은 기웃거린다.

“엄마 시율이 책도 사줘. 공주 책 공주 책!!”


그녀의 기세를 등에 업은 시후도 동참한다.

“안녕 블립 사주세요!”

그렇게 우린 사이좋게 한 권씩 골라 담았다.


두 녀석이 선택한 동화책은 색이 정반대다. 시후는 글밥보다 그림이 많고 재밌는 책을 선호하며, 시율이는 이야기가 있는 생활동화 또는 공주 동화책을 좋아한다.   

  

책이 도착했을 때, 각자의 것을 먼저 읽어달라며 결국 다툼이 시작됐다. 분쟁에는 가위바위보만큼 공정한 것이 없기에, 서둘러 두 녀석은 마주 보고 손을 내밀었다.


“가위바위보-”     


시작은 '안녕, 블립'이 차지했다. 그 곁의 시율이는 공주 동화책을 안고 조용히 기다린다. 안녕블립 마지막 장이 넘어감과 동시에 시후를 밀치고 시율이가 다가왔다.


“인어공주 읽어줘!”     


‘깊고 깊은 바닷속에 아름다운 인어 공주들이 살았어요.’ 이야기가 시작되며 공주 동화책을 싫어하는 시후가 자리를 떠나질 못한다. 그럼에도 자르지 않고 조용히 듣는다. 시율이가 공주 동화책을 좋아하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불쾌한 표정으로 시율이 곁으로 다가오는 시후, 오빠가 다가옴이 불편한 시율이 또한 경계를 놓지 않는다. 나는 인어공주를 혼자 읽고 있었다. 그리고 시후가 가까이 다가왔을 때, 책 속 인어공주를 가리키며 시후에게 물었다.     

“시후야 이거 누구일까?”


책을 한동안 들여다보던 시후는 시율이를 번갈아 보더니 한마디 툭 던졌다.


“시율이.”     


그 순간, 6살 시율이 얼굴에 쑥스러운 행복함이 가득 찼다.    





거북이 아들과 토끼 딸 함께하는 육아는 이따금 혼란스럽지만, 대부분 뭉클하다.

무심한 오빠와 섬세한 동생이 함께하는 일상은 때론 속상하지만, 여전히 벅차다.



자폐스펙트럼을 앓는 시후는 여전히 상호작용에 어려움이 있고 표현하는 것에 미숙하다. 그럼에도 가슴에 담 몽글몽글한 순수함은 누구보다 크다.


시후 속에만 가득한 아쉬운 감정은 때론, 시율이를 만나 꽃이 피기도 한다.      






7살 유치원을 다녀온 시후는 가방을 정리하기보다, 던지는 것에 익숙했다. 그때는 하원 후 센터 일정이 가득하여 나 역시 그 가방에 신경을 못 썼다. 늦은 저녁 시율이는 궁금하다. 오빠가 오는 유치원에서 뭐 하고 놀았는지, 행여 비타민 사탕이 있을까 싶어 묵직한 엉덩이를 바닥에 맞대고 가방을 연다. 그리고 핑크색 뭉치를 발견했다.

    


반듯하게 적은 편지와 핑크빛 팔찌와 반지.

한글을 읽지 못하는 시율이에게 시후의 편지를 읽어주며 선물을 건넸다. 팔찌와 반지를 끼고 시후에게 다가가 시율이는 수줍게 인사를 건넨다.


"오빠 시율이 주려고 만들었어? 나 핑크색 좋아하는데. 오빠 고마워 사랑해."

"알았어."


두 녀석의 짧은 소통에, 괜히 코끝이 시리다.



시율이의 긴 마음 표현, 시후의 짧은 대답에는 편견이 없다. 다만 방식에 차이가 있을 뿐이다. 우리는 시후의 세상을 통해 천천히 살아가는 법을 배우고 있다. 그리고 시후는 반짝이는 시율이를 통해 공존하는 법을 익다.


두 녀석이 만들어가는 오늘을 통해, 더 나은 내일을 꿈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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