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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혜민 Nov 10. 2024

할머니는 피자가 싫다고 하셨어


여든을 훌쩍 넘긴 외할머니는 홀로 지내시며 자유로운 노후를 만끽하는 반면, 자신의 배를 채우는 일에는 야박하다. 막내딸인 우리 엄마는 그런 할머니가 걱정되는지 안부 전화에 잊지 않는 대사가 있다.


“엄마 밥 먹었어? 뭐 해서 먹었어?”     


대충 먹었다고 신경 쓰지 말라는 할머니의 말끝에, 엄마는 걱정 섞인 말투로 잔소리를 잊지 않는다.


“김 여사! 이번 주 언니들이랑 갈 테니 맛있는 거 먹자.”    

 


외할머니댁 가까이 사는 엄마와 이모들은 정기적으로 할머니 댁을 찾는다. 지금처럼 가을 단풍이 아름다울 때도, 아이들 시집, 장가 다 보낸 여유를 즐길 때도, 퇴직한 삼식이 남편이 꼴 보기 싫을 때도.

머리가 희끗희끗한 중년의 딸들은 홀로 사는 엄마의 집을 찾는다. 급할 게 하나도 없는 예순을 훌쩍 넘긴 나이를 대변하듯 할머니 집에서 여유롭게 엄마 품을 즐긴다.   

  


그러던 평일 저녁 엄마로부터 전화가 왔다.


“딸. 바빠? 안 바쁘면 피자 주문 좀 부탁해.”


늦은 저녁, 거두절미하고 피자를 앞세운 전화는 바로 엄마가 외할머니댁에 갔음을 알리는 신호이다.


“불고기 반, 야채 반으로 하고. 빵 끝에 치즈랑 피자 위에도 치즈 추가!”


서두른 일방적 주문 나열에 주변이 웅성거린다. 피자 시키는 일이 이렇게 다급할 일인가 싶어 연유를 물었다.


“너희 할머니 피자 좋아하면서 시키지 말라고 아우성다. 너 돈 쓴다고.”    

 

찰나의 순간, 할머니는 엄마와 나의 통화를 귀 기울이며 언성을 높다. ‘애 자꾸 돈 쓰게 하지 말라고’ 그리고 엄마는 통화종료 버튼을 누르는 것을 잊은 채 할머니와 대화를 이어 나간다.


“알았어. 알았어. 남수 카드로 시키라고 할게. 됐지?”

※ 남수는 저희 아빠입니다 ♡



엄마에게 받은 메시지

40여 분이 지나고 메시지에 사진이 도착했다.

불고기 반, 슈프림 반으로 이뤄진 피자 한 판. 그리고 위생 장갑 한 뭉치.


분명 도우를 비롯해 피자 한 판에 치즈를 추가했음에도, 사진에 전해지는 피자 얇다. 다들 두툼하니 맛있으셨다고 하셨음에도 이상하게 마음이 허전하다.      


탁자 위 피자. 그 옆에 기대어 있는 외할머니를 보았다. 해를 거듭하며 굽어 가는 허리에, 깊어지는 주름에, 피자를 대접할 기회가 점점 줄어든다는 생각에 유독 시리다.     







여든을 훌쩍 넘긴 노모는 예순의 중턱을 맞이한 딸들과 오랜만에 만나 먹는 음식이 피자다. 마흔을 가까이 둔 나도 잘 소화하지 못하는 피자를 그녀들은 둘러앉아 위생 장갑을 야무지게 끼고 알록달록한 그것을 입안 가득 채운다. 그리고 피클 하나로 입안을 개운히 하는 것도 잊지 않는다.


늦은 저녁 부대낄까 걱정에, 다른 메뉴를 권해도 피자면 충분하다고 만류다. 난 좀처럼 이해되지 않았지만 8시를 넘긴 시간 피자를 주문했다.  피자가 도착하고, 충분히 드셨을 시간 엄마에게 메시지가 왔다.


순식간에 먹고 다 같이 나란히 누웠다고. 딸 고맙다고.     


불현듯 깨달았다. 내가 쓴 단돈 몇만 원의 피자가 엄마의 허기만 채운 것이 아니라는 것을. 그리고 어쩌면, 할머니도 같은 마음 아닐까 싶었다.


딸들과 동그랗게 둘러앉아 입가에 피자 소스를 묻히 딸들이 두런두런 쏟아내는 어린 시절 추억이 좋은 지도, 했지만 달콤했던 그 시절로 돌아간 지금 덕분에, 피자가 좋은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쳤다.

  

앞으로도 할머니는 손녀가 힘들게 번 돈이 나가는 것이 아까워 같은 말을 외칠지도 모른다.

'할머니는 피자 싫다!'


그러나 나는 여전히 피자 주문에 있어서는, 할머니 말씀을 듣지 않을 것이다. 나의 배달 앱에 할머니집주소가 남아있다. 어쩌면 오랜 시간이 지나도 못 지울 하나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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