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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엘키 Jan 08. 2023

엄마가 사리만드는 시간 _ 겨울방학


"아휴 또 방학이네..아이구야~~~" 어릴 적 엄마의 한숨 섞인 혼잣말을 들어버린 나는 내심 서운한 마음이 들었다.





초등학교 아니 국민학교 시절, 가장 손에 꼽아 기다리는 시간은 생일 다음으로 방학식 날이다. 아침에 일찍 일어나지 않아도 되고, 학교 갈 마음의 부담도 없고, 방학 숙제만 끝내놓으면 종일 놀 수 있었다. 그 당시에는 학원도 없으니 그냥 마냥 놀았다. 어릴 적 가장 행복한 시절이었다. 하지만 엄마의 속마음은 달랐던 것 같다. 나는 장사하시는 엄마, 아빠랑 하루 종일 같이 있어서 너무 행복했는데 엄마의 혼잣말이 내 귀에 콱 들어와 박혔다. "아휴 또 방학이네 아이고야~" 어릴 적 엄마의 한숨 섞인 혼잣말을 들어버린 나는 내심 서운한 마음이 들었다. 나는 엄마 아빠랑 같이 있어서 너무 좋은데 엄마는 그게 아니었던 것이다.


학원도 가지 않고 종일 3형제가 복닦거릴 테니 엄마에게는 얼마나 고단한 시간이였을가. 어린마음에 그때는 엄마가 참 못됐다고 생각했다. 자식들이 방학을 했으면 맛있는 것도 해주고, 대공원도 놀러 가고 눈사람도 만들고 같이 놀아줘야지 한숨을 쉬다니. 참 섭섭했다.


하지만 지금 내 아들이 10살이다. 요즘 학교는 유난스럽게도 방학을 길게도 한다. 12월 30일 방학식 3월 2일 개학식. 2달을 공짜로 놀린다 아무리 나라에서 학교 보내주는 거라 하지만 이거 너무한 거 아닌가. 우리 어릴 적에는 숙제라도 많았다. 탐구생활도 1권씩 해야 하고 만들기, 그리기, 일기 쓰기 등등 적지 않은 숙제를 해야 했고, 방학이 끝나면 고스란히 선생님께 검사도 받아야 했다. 헌데 요즘 초등학교는 숙제도 없다. 뭐 요즘 애들 학원 다니느라고 숙제 없는 것 좋아할 사람도 많겠지만, 난 그렇지 않다. 학교 숙제는 어느 정도의 강제성을 띠고 꼭 해야 한다는 의무감도 생긴다. 근데 숙제가 하나도 없다. 뭐 간단한 운동하기. 독서록 작성하기 정도이고 이것도 검사하지도 않는다. 그러니 숙제를 해야 할 이유가 없다.



그러므로 겨울방학 2달 동안 아이는 오로지 엄마 차지이다.



아이는 신이 났다 2달 동안 학교에 안 가도 된다. 물론 학원도 다니고 집에서 공부도 하지만 학교에 가지 않는 것만으로도 심리적 부담에서 해방이다. 친구들을 만나지 못하는 섭섭한 마음도 일주일이면 없어지는 것 같다. 요즘 아이들은 학원 다니기에 바빠서 서로 잘 어울려 놀지도 않는다. 놀고 싶어도 연락하면 다들 학원에 가야 한단다. 실망한 나의 아드님은 자의반 타의 반으로 집돌이가 되고 신나게 유튜브와 게임 속에서 친구를 만난다. 엄마는 이렇게 컴퓨터 앞에 찰싹 달라붙어 앉아 거북목이 되어가는 아이를 보면 부아가 치밀어 오르고 쟤를 어떡게해야 하나 머리가 아프다. 학원으로 돌리자니 학원비도 만만치 않은데 가성비를 생각하면 뽕을 못 뽑을 것 같고, 그렇다고 놀리자니 속이 터진다. 집에 같이 있으니 수시로 참견하고 이거 해달라 저거 먹고 싶다. 게임 30분만 더 주면 안 되냐 유튜브 30분만 더 보면 안 되냐. 종일 묻고 종일 떠들어댄다. 아이의 수다 수발을 3일만 들다 보면 머리가 멍해지고 아이가 오는 발소리만 들려도 모른척하고 싶어진다. 그런데 2달이라니.


2달 동안 놀구만 있을 수는 없다. 요즘 유행하는 자기주도학습도 시도해야 하고 문해력이 딸리면 큰일이 난다고 하니 책도 매일 하나씩 읽어야 한다. 수학도 놓치면 안 되지 연산, 복습, 예습, 3종 세트를 가열하게 계획표에 넣어본다. 운동도 매일 30분씩. 영어 듣기 읽기도 매일 1시간씩. 아 또 뭐가 있더라 해야 할 거 엄청 많은데.


이렇게 엄청난 스케줄표를 짜놓으면 일단 엄마는 마음이 편하다. 하든 안 하든 뭐라도 짜놔야지 아이도 하긴 해야 한다는 마음의 의무감이 생긴다. 물론 이 많은 계획들 중 반도 지키기 못할 것이다. 하지만 유튜브와 게임 시간을 허락해 주는 대신 공부 할당량도 주어져야 2달을 공짜로 날리지 않는다. 근데 이거 다 엄마 숙제다. 애는 게임시간을 확보해야 하니 공부는 해야 하고 날림으로 문제 풀고 날림으로 책 읽고, 건성으로 앉아 있을 거라는 건 너무도 잘 알고 있지만 시켜야만 하는 엄마 숙제.


아들내미 1명 건사하기가 이렇게 힘든데 울 엄마는 3명을 어찌 키워 냈을까. 3명이서 방학 동안 단칸방에서 볶닥 대고 먹어댔을 테니 얼마나 고되고 방학이 싫었을까. 엄마의 한숨 섞인 한풀이는 애교였다. 나 같으면 마음속 깊은 곳 단전에서 올라오는 심한 말이 튀어나왔을 것이다. 물론 아이를 사랑하고 내 눈에는 세상 최고 이쁜이지만 그건 그거고 이건 이거다. 나의 엄마는 마더 테레사 동생뻘되는 좋은 엄마였던 것이다.


이제 겨울방학 8주 중에 1주일이 지났다. 남은 7주 동안 엄마는 사리를 만들 테니 아들아 너는 실컷 너의 추억을 만들렴. 엄마한테 너무 말 많이 시키지는 말고, 부탁해요. 사랑해요 아들♥


야심찬 일주일 계획표


글.사진_@엘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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