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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엘키 Dec 08. 2022

딱지 접기 내공

엄마 노릇 브이로그

  

 제법 치는 폼이 남자답다. 소리도 쩍! 쩍! 바닥에 찰싹 잘도 달라붙는다.  오른쪽 팔에 딱 힘을 주고 손가락 3개를 딱지에 감싸고 손목의 스냅을 이용해 바닥으로 내리칠 때 손목을 꺾는다. 이게 딱지치기의 정자세라고 한다.  "엄마 그렇게 치면 딱지 안 넘어간다. 손가락 3개로 딱지 가운데를 감싸고 팔에 힘주고 내리칠 때 손목을 꺾어서 딱지 가운데를 맞추는 거야!"  "응 알았어"

온 힘을 다해서 하란 데로 했는데 내 딱지는 바닥에 모서리를 찍고 하늘로 튕겨 날아가 버린다.




  아들 녀석 학교에서 친구들과 딱지치기가 한창 인가 보다. 집에 오자마자 딱지를 더 만들어야 한다며 나한테 만들어 내라고 명령을 하신다. 네 거니까 네가 만들어야지 나도 받아치지만 머릿속에는 벌써 어떤 종이를 접어야 단단하게 잘 접을 수 있을까를 생각하고 있다. 반에서 젤 잘하는 친구는 작은 딱지로도 큰 딱지를 잘도 따간다고 한다. 자기도 잘하지만 친구가 더 잘하고 있고 친구한테 딱지를 잘 치는 비법에 대해서 배웠다고 한다. 


 나한테 가르쳐 줄 테니 딱지를 접어오라는 분부를 받잡고, 일 년 내내 한 번도 보지 않은 벽 달력이 몇 장이나 남아있나 세어보며 다행히 뜯지도 않은 달력의 12장을 모조리 다 뜯어내고 딱지 만들 준비를 한다. 두 장은 포개어야 단단하고 힘 좋은 딱지가 될 것이니 두 장을 예쁘게 자르고 있는데 너무 크게 접으면 안 된다고, 선생님이 시끄러워 작은 딱지만 쓰랬다고 작게 접어야 한다고 잔소리를 늘어놓는다. '그럼 네가 접던가' 속으로 삼키며 또 한소리 하지만 내 손은 빛보다 빠르게 가위를 들고 가장 적당한 크기로 자르고 있다.     


 두장을 포개어 사방을 꾹꾹 눌러 예쁘게 접은 딱지 1개에 또 하나를 합체시켜 1+1 합체 딱지를 만들어 내밀었다. "우와 엄마 이거 어떻게 접은 거야?" 내가 접은 딱지를 보고 마음에 들어 하는 눈치다. 이렇게 단순한 딱지 접는 법도 모르면서, 넌 역시 나보다 한수 아래구나. "엄마 우리 빨리 대결하자" 새삥 딱지가 맘에 들었는지 나에게 도전장을 내민다. 그래 나도 소싯적 한 딱지 했거든 어디 한번 붙어보자. 집에 있는 딱지 다 들고 와서 똑같이 반반으로 나누어서 층간 소음 없이 매트도 깔고 딱지치기 연습을 시작한다. 엄마 마음이 다 똑같겠지만 대충 져주고 빨리 이 재미없는 딱지치기를 끝내야지. 


 근데 학교에서 친구들하고 쳤다고 딱지 치는 폼이 좀 난다.  힘의 분산 없이 오른쪽 팔에 힘을 주고 흔들리지 않게 두 다리를 바닥에 꽉 고정시키고 세 손가락으로 딱지를 움켜쥐더니 오른쪽 손목의 스낵을 이용하여 내  딱지를 딱! 딱! 잘도 뒤집는다.  져주고 빨리 끝내려 했지만 이것은 자존심 싸움. 이 판에서 물러서면 엄마를  무시할게 뻔하다. 나도 질세라 힘껏 내리쳐보지만 번번이 딱지 모서리가 땅에 꽂혀 튕겨 버리고 엉뚱한 바닥은 왜 이렇게 내리치는지 어깨가 부서질 것 같다.


 실실 웃으며 내 딱지를 모두 휩쓸어간 아들은 이제 자기가 반에서도 이길 거라고 좋아한다. 져주고 빨리 끝내려던 심산이었는데 리얼 지고 말아버리니 내심 기분이 상한다. 하지만 내가 접어준 딱지의 위력에 대해서 아들의 신임을 얻었으니 됐다. 집에서 제일 실한 놈으로 5개를 골라 깔끔한 지퍼락에 넣어 책가방에 넣어둔다. 내가 접어준 딱지를 보며 친구들이 부러워할 테고 아들은 나에게 고마워하는 행복한 상상을 한다.



다음날 하교시간. 

"오늘 딱지 시합했어?" 

 "응" 

무뚝뚝하기도 하지 자세히 좀 말해주지 엄마 하루 종일 궁금했는데.

"이겼어? 딱지많이 땄어?"

"아니"

"왜?" 

"딱지가 너무 뚱뚱해서 힘없는 여자애들도 다 뒤집더라"

아.. 그랬구나. 내가 너무 욕심을 부렸구나. 1+1 합체하면 힘이 좋아 뒤집기 좋은 줄로만 알았지. 왜 잘 뒤집힐 거라고는 생각 못한걸가. 네가 하수가 아니라 내가 하수였구나. 엄마가 되니 이렇게 앞뒤 구분 못하고 애 기 세워주기 위해서 무모한 짓거리를 많이도 했는데 리스트가 하나 더 추가되고 말았구나. 언제쯤 한석봉 엄마급의 현명함을 탑재할 수 있을까. 그 이후로도 나의 딱지 접기는 며칠간 계속되었고, 아들은 한번 속지 두 번 속지 않는다는 눈빛을 보내며  께름칙한 마음으로 내 딱지를 받아 반 딱지 올킬하기에 도전 중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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