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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Wine Freack Dec 31. 2022

나폴레옹·처칠·마릴린먼로…"샴페인 없인 못살아"

샴페인②

와인은 시간이 빚어내는 술입니다. 인류의 역사와 함께 와인의 역사도 시작됐습니다. 그만큼 여러 가지 흥미로운 이야기들을 품고 있는데요. WSET(Wine & Spirit Education Trust) 국제공인레벨을 보유한 현직 기자가 매주 재미있고 맛있는 와인 이야기를 풀어드립니다.


“스파클링 피치, 스페인산 무알콜 샴페인. 탁월한 맛과 향으로 소중한 순간을 더욱 소중하게~”

불과 몇년 전 국내 대형 프랜차이즈 제과점에서 전국 지점으로 유통시킨 한 음료의 설명입니다. 뭔가 이상한 점을 발견하셨나요? 특별할 게 없어보이는 이 문구는 와인러버들 사이에서 꽤나 유명세를 탔습니다. 국내 굴지의 유통망을 갖춘 프랑스 수도 이름까지 딴 프랜차이즈가 프랑스 와인에 대해 심각하게 무지하다는 조롱으로요.


정답은 ‘스페인산 무알콜 샴페인’ 입니다. 지난 이야기에서 우리는 샴페인을 ‘프랑스 샹빠뉴 지역에서 난 발포성 포도주를 일컫는다’고 정의했습니다. 샴페인의 정의에 따르면 ‘스페인산’은 아예 샴페인이라는 이름을 붙일 수가 없는 것이죠. 그렇다면 정확하게 무엇을 샴페인이라고 불러야할까요? 이번에는 샴페인이 되기 위한 조건을 간단하게 알아보겠습니다.


‘샴페인’이 되기 위한 꽤 엄격한 조건들


와인은 크게 스틸 와인과 주정강화 와인, 스파클링 와인 등으로 나뉩니다. 스파클링 와인은 다시 샴페인과 샴페인이 아닌 녀석들로 나뉘는데요. 샴페인은 프랑스 샹빠뉴 지방에서 양조한 발포성 와인(스파클링 와인·sparkling wine) 중 이 지역에서 자란 포도를, 지역이 인정하는 전통의 방법으로 양조한 와인에 한해 쓸 수 있도록 법으로 정해져있습니다.


다른 지역에서 생장한 포도거나, 다른 지역에서 양조됐거나, 양조 과정에서 샹빠뉴 전통방식을 따르지 않는 등 어느 하나라도 지키지 못한다면 샴페인이라는 이름으로 불리지 못하는 겁니다. 따라서 스페인산 샴페인이라는 것은 아예 존재하지 않습니다.


그럼 도대체 어쩌다 스파클링 와인, 일명 뽀글이를 다 ‘샴페인’으로 치환해버리는 참사가 벌어진 것일까요? 물론 이 역시 나름대로 사정이 있습니다. 우선 프랑스 현지에서 샴페인 AOC(원산지 통제명칭·Appellation d‘Origine Controlee)가 1936년에야 제정됐습니다. 그 전까지는 원산지에서도 샴페인이라는 용어가 마구 혼용됐던거죠.


더욱이 우리나라에 이러한 AOC가 공식 적용된 것은 2011년 한·EU FTA가 체결되고 나서입니다. 즉 2011년 전까지는 국내 와인의 소비가 많지도 않았고, 샴페인의 정확한 정의를 따져할 이유도 없었던 것입니다.와인의 보급과 저변 확대가 제한적이었던 사회적 분위기도 크게 한몫 했을 것이고요.


샴페인이라는 이름이 붙지 못한 녀석들은 어떻게 됐을까요? 크레망(Cremant·샴페인 양조 방법을 따랐으나 원산지가 샹빠뉴가 아닌 다른 프랑스 지역)이나 까바(Cava·샴페인의 양조 방식으로 양조했으나 원산지가 스페인 카탈루냐 지방) 등 다른 이름으로 불립니다. 저마다 샴페인과는 조금 다른 특징도 지니고 있는데, 이 녀석들은 다음 기회에 얘기하도록 하겠습니다.


성공적인 ‘샴페인’의 고급화 전략


재밌는 점은 이렇게 샴페인의 조건을 점점 제한하다보니, 샴페인의 값어치가 더 올랐다는 것입니다. 수요는 늘어가는데 공급이 점점 줄어드니 당연한 일이라고 봐야할까요. 현대에 이르러 샴페인은 최상위 프리미엄급만 놓고 보면 특별히 더 비싸다고 볼 수는 없지만, 구매 여력이 되는 범위 내에서는 상당히 비싼 축에 속하는 와인이 됐습니다.


여기에 적절한 셀럽 마케팅이 안그래도 비싼 샴페인의 가격에 불을 당깁니다. 현대 마케팅 이론에서는 이를 상당히 성공한 ’고급화 전략‘으로 얘기하기도 하는데요. 이 때문에 어떤 와인러버들은 샴페인을 가르켜 ’거품 와인‘(탄산 때문에 거품이 있는 와인임과 동시에 과대포장·평가된 와인)이라고 부르기도 하죠. 여기 샴페인에 얽힌 셀럽들의 이야기를 몇개 소개하면서 이번 편을 마칩니다.


“Come quickly, I am tasting the stars!”(빨리 오세요, 나는 별을 맛보고 있어요)

샴페인을 소개하는 문구들 중 가장 유명한 문구를 꼽으라면 아마 1800년대 후반 광고에 우후죽순으로 등장한 이 인용문일 겁니다. ’별을 맛보다‘라는 추상적이지만 왠지 느껴지는 것 같은 아름다운 문장이죠.

사실 이 문구는 어떤 샴페인 브랜드가 사용했는지도 불분명합니다. 다만 확실한 것은 샴페인을 마셔본 이라면 누구나 군침을 흘리게 될 광고계의 명문장으로 널리 알려져 있습니다.


Le champagne est indispensable en cas de victoire et nécessaire en cas de défaite”(승리하면 샴페인을 마실 자격이 있고, 패배하면 필요해진다)

근대 유럽을 호령했던 나폴레옹의 샴페인 사랑은 유별났습니다. 승리를 축하하거나, 패배한 군중의 침울한 분위기를 타파하기 위해 샴페인은 언제나 필요하다는 얘깁니다. 샴페인 병을 여는 방식인 ’사브라주‘(Sabrage·사브르라는 군용 칼을 사용해 병목을 깔끔하게 떼어내는 샴페인 오픈 방법) 역시 나폴레옹이 발명했다는 얘기가 있습니다.


나폴레옹은 특히 모엣샹동과 인연이 깊은데요. 1807년 러시아 황제와 틸지트조약을 맺고 파리로 돌아오는 길에 모엣의 하우스(샴페인 와이너리는 와이너리 대신 하우스라고 표현 합니다)를 찾은 얘기는 현재까지도 모엣샹동 하우스의 대리석 조각에 새겨져 있을 정도 입니다. 모엣샹동은 근대 유럽의 유일한 황제였던 나폴레옹을 기려 엔트리급 모델에 ’임페리얼‘이라는 이름을 붙였다고 합니다.


“I go to bed with a few drops of Chanel N˚5, and I wake up each morning to glass of Piper Heidsiek. it’s warms me up”(나는 샤넬 넘버5를 입고 잠들고, 파이퍼 하이직으로 한 잔으로 아침을 시작해요)

세기의 섹스 심벌로 이름을 떨친 마릴린 먼로도 샴페인(파이퍼하이직) 애호가였습니다. 샴페인들로 목욕을 했다는 것도 유명한 일화죠. 현대에 저 멘트가 실제 먼로의 멘트가 아닌 상업적인 목적으로 만들어진 것이라는 것이라는 얘기가 있습니다만, 널리 알려지고 다양하게 인용돼온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입니다.


“First things first. Get the champagne”(제일 중요한 것부터. 샴페인부터 가져와)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영국을 이끌었던 윈스턴 처칠도 샴페인 러버로 잘 알려져 있습니다. 위 멘트는 1931년 뉴욕에서 교통사고를 당한 후 깨어나서 처칠이 뱉은 첫번째 말로 유명하죠. 처칠은 ‘폴 로저’라는 브랜드의 샴페인을 특히 좋아했는데, 평생 5000병 넘게 폴 로저를 마셨다고 합니다. 폴 로저 하우스는 처칠의 사랑에 보답하기 위해 처칠을 위한 샴페인 2만병을 따로 보관했고요.


폴 로저 하우스와 처칠의 인연은 그의 사후에도 계속 이어집니다. 1965년 그가 사망하자 시판되는 모든 샴페인의 병목에 검은 리본을 달아 그를 애도했고, 사후 10년이 지난 뒤 생산하는 샴페인 중 최상위 라벨에 현재까지도 ‘뀌베 서 윈스턴 처칠(Cuvee Sir Winston Churchill)’이라는 이름을 붙이고 있습니다.


매일경제신문 프리미엄 코너에 연재되는 주간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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