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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Wine Freack Dec 10. 2022

축하할 땐 흔들어서 ‘뻥~’ 샴페인의 기원

샴페인①

와인은 시간이 빚어내는 술입니다. 인류의 역사와 함께 와인의 역사도 시작됐습니다. 그만큼 여러 가지 흥미로운 이야기들을 품고 있는데요. WSET(Wine & Spirit Education Trust) 국제공인레벨을 보유한 현직 기자가 매주 재미있고 맛있는 와인 이야기를 풀어드립니다.


“목사님, 거래 잘 마쳤습니다. 돌아가면 같이 축하주 드시죠”

“그래, 알았어. 내가 좋은 샴페인 칠링해 놓을테니까, 조심히 돌아와”


최근 큰 인기를 끌었던 넷플릭스 드라마 ‘수리남’의 한 장면 입니다. 중요한 마약 거래에 나섰다가 미국 DEA(마약단속국)에 붙잡힌 이상준 집사(김민귀 役)가 거래 성사 여부를 확인하려 전화한 전요한 목사(황정민 役)에게 일이 틀어졌음을 암시하는 부분이죠. 술을 마시지 않는 이 집사가 축하주를 마시자고 하자 이상한 낌새를 감지한 전 목사는 티나지 않게 냉큼 ‘샴페인을 칠링해놓겠다’고 화답합니다.


이처럼 샴페인은 드라마는 물론 영화에서도 흔하게 축하주로 등장합니다. 축하할 일에 샴페인을 곁들이는 것은 만국공통이기도 한데요. 도대체 언제부터, 왜 세계인의 축배에는 샴페인이 자리하게 됐을까요? 오늘은 축하할 일이 생기면 마시는 와인, 만찬이나 연회에서 빠지지 않는 와인인 샴페인에 대해 얘기해 보겠습니다.

드라마 ‘수리남’ 에서 전요한 목사가 ‘좋은 샴페인’이라고 말한 후 나온 샴페인. 모엣샹동 엔트리 같지만, 캡 부분 호일을 보면 1980년대 올드빈티지 샴페인이다.

우선 샴페인이라는 어원부터 따져볼까요. 샴페인은 프랑스 동북부의 샹빠뉴(Champagne) 지역의 영어식 발음입니다. 샹빠뉴라는 어원은 고대 로마인들이 썼던 라틴어 ‘캄파니아(Campania·평야)’에서 유래했습니다. 너른 평야 지역인 이 지역의 와인에 지명을 그대로 붙여서 샹빠뉴라 불렀는데, 영어식 발음 ‘샴페인’으로 세계에 널리 알려진 것 입니다.


샴페인이 축배의 상징이 된 것은 꽤 오랜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야 합니다. 서로마 제국이 멸망하기 전이던 서기 300년대부터 이 지역에서는 넓은 평야와 시원한 기후를 활용해 양질의 화이트 와인을 생산했는데요. 서기 476년 서로마 제국이 멸망하고, 프랑크족들을 통합한 클로비스 1세가 샹빠뉴 지역 대도시인 랭스(Reims)에서 카톨릭으로 개종하고(서기 508년) 그 지역 고품질 와인을 축하 만찬에 쓰면서 유명세를 타기 시작합니다.


클로비스 1세 이후 왕권을 차지한 프랑스왕은 랭스에 세워진 대성당에서 대관식을 거행하는 전통이 생겼습니다. 실제로 역사상 30명이 넘는 왕들이 랭스 대성당에서 즉위식을 치렀구요. 새 왕이 즉위하는 기쁘고 영광스러운 날에 쓰이던 축하주가 바로 샴페인이었던 겁니다. 가히 ‘축배를 위해 존재하는 와인’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랭스 대성당. 프랑스 왕국의 초대 국왕인 클로비스 1세의 대관식이 거행된 이래 전통적으로 프랑스 국왕들의 대관식이 거행된 곳이다.

그런데 초기의 샴페인은 우리가 알고 있는 탄산이 함유된 ‘뽀글이’가 아니었다는 사실 아시나요? 1600년대 우연한 발견 전까지는 샴페인은 그저 왕족과 귀족들이 즐겨 마시는 고급 스틸 와인(still wine·기포가 없는 일반 와인)일 뿐이었습니다. 하지만 샹빠뉴 지역의 위도와 기후적 특성 때문에 샴페인의 운명을 송두리째 바꿔 버리는 사건이 일어나게 됩니다.


어느 날 샹빠뉴 지역 양조장의 한 와인메이커가 까브(cave·와인 보관 창고)에 가보니 외부 침입 흔적도 없이 와인 몇 병이 스스로 깨져 있었습니다. 처음엔 대수롭지 않게 넘겼지만, 여러 양조장에서 몇 년에 걸쳐서 이런 일이 계속적으로 일어났고, 사람들은 이를 기이한 일로 여기고 불안해 했습니다. 당시엔 이를 ‘악마의 술’이라 부르며 기피하기도 했습니다.


사실 와인병이 깨지는 일은 샹빠뉴의 지리적·기후적 특성 때문에 생긴 겁니다. 다른 지역에 비해 다소 추운 샹빠뉴 지역에서는 겨울이면 와인 발효가 중단됐다가 날씨가 포근해지는 봄에 재차 발효가 진행되면서 병 속에서 탄산가스가 발생하곤 했는데요. 이렇게 생겨난 탄산가스가 포화 상태에 이르면서 팽창압력을 버티지 못한 병이 깨졌던 겁니다.

돔 페리뇽 수도사 동상.

이렇게 골칫거리로 치부되던 기포를 오감을 자극하는 주요한 요소로 발상의 전환을 이뤄낸 사람이 바로 샴페인의 대표 브랜드로도 널리 알려진 ‘돔 페리뇽(Dom perignon)’의 피에르 페리뇽 수도사 입니다. 그는 이 시기 ‘요상한 거품을 없앤 양질의 와인을 만들라’는 임무를 띄고 샹파뉴 지방의 오빌레(Hautvillers) 수도원의 취사와 와인 담당 수도자로 부임했습니다.


페리뇽은 수년이 지나 결국 병이 깨지는 현상을 막고, 거품에 안에서 액체에 녹아드는 방식을 발견해냅니다. 두꺼운 유리병과 코르크 마개를 철사로 고정시키는 방법으로 병이 터지지 않으면서도 거품이 살아 있는 와인을 개발한거죠. 이후 후세에 이르러 페리뇽 수도사의 이름에 성스럽다는 의미의 도미누스(Dominus)를 붙여서 도미누스 페리뇽, 줄여서 돔 페리뇽이 됐습니다.


이게 현재까지 우리가 즐기고 있는 샴페인 입니다. 다만, 이 일화의 진위에 대해서는 와인업계에서 의견이 분분합니다. 이미 그 전부터 탄산의 존재와 탄산을 와인에 결합하는 방식에 대한 시도가 있었던 것이 밝혀지면서, 최근에는 상업적인 마케팅의 일환으로 치부되고 있기도 합니다.


이후 샴페인은 ‘태양왕’이라 불렸던 절대군주 루이14세의 명령에 의해 그의 대관식에 축하주로 수백통이 동원되는가 하면 나폴레옹1세의 즉위식에서도 축하주로 쓰였고, 1789년 프랑스 대혁명 당시 혁명군이 바스티유 감옥을 해방하면서 진군할 때 시민들과 함께 샴페인을 마시면서 기뻐하는 등 축하의 자리에 빠지지 않는 와인으로 자리매김하면서 세계인의 머릿속에 ‘샴페인=축하주’ 공식이 각인됐습니다.

대관식에 샴페인 수백통을 동원한 루이 14세의 초상.  <그림=이아생트 리고>

샴페인의 기포들은 맥주나 콜라의 그것과는 조금 다릅니다. 작고 조밀하지만 입 속에 경쾌하게 터지는 기포들은 샴페인을 마시는 사람으로 하여금 기분이 좋아질 수밖에 없게 하는 매력이 있습니다. 게다가 아로마는 얼마나 상큼한지 순간적으로 피로를 씻어주기도 하죠. 어쩌면 그래서 ’하이텐션‘이어야 할 축하하는 자리에 더 어울리는 와인일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세상의 모든 스파클링 와인을 샴페인으로 부르지는 않습니다. 샴페인은 샹빠뉴 지역에서 전통 방식으로 만들어진 스파클링 와인에만 부여할 수 있는 명사 입니다. 샴페인 양조 방법을 따랐다고 하더라도 샹빠뉴 지역에서 길러진 포도로 양조된 와인이 아니라면 샴페인이라는 이름을 붙일 수 없는거죠. 이 때문에 까바(Cava·스페인 카탈루냐 지방의 스파클링 와인), 프로세코(Prosecco·이탈리아 북부 지방의 스파클링 와인) 등 다양한 종류의 다른 스파클링 와인이 존재합니다.


그렇다면 샴페인과 일반 스파클링 와인을 가르는 양조의 조건은 뭘까요? 다음 주에는 스파클링 와인이 샴페인이 되기 위한 조건들과 샴페인을 사랑했던 역사 속 인물들에 대해 얘기해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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