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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Wine Freack Jan 16. 2023

그 분이 들른 빵집도 대박 나는데…직접 만든 와인은?

샤토뇌프 뒤 파프

와인은 시간이 빚어내는 술입니다. 인류의 역사와 함께 와인의 역사도 시작됐습니다. 그만큼 여러 가지 흥미로운 이야기들을 품고 있는데요. WSET(Wine & Spirit Education Trust) 국제공인레벨을 보유한 현직 기자가 매주 재미있고 맛있는 와인 이야기를 풀어드립니다.


몇년 전 ‘교황의 편지’가 바티칸에서 발견됐다며 화제가 됐던 적이 있습니다. 교황의 편지가 왜 화제가 됐냐고요? 발신인이 700년 전 인물인데다, 수신인이 무려 ‘고려왕’이었거든요. 네, ‘조선’ ‘고려’할 때 그 고려 맞습니다.


“존경하는 고려인들의 국왕께. 왕께서 귀하의 왕국에 머무는 옛 그리스도인들과 새 그리스도인들을 인간미 넘치는 친절로 받아주시고, 온정이 넘치는 은혜로 그들을 보살펴 주셨다는 소식을 듣고 무척 기뻤습니다. (후략)” -1333년, 교황 요한 22세-


이 글은 공개된 서신 내용의 일부인데요. 현재는 라틴어로 쓰인 ‘존경하는 OO인들의 국왕께’라는 수신인 부분을 놓고 고려가 아니었다는 주장이 제기되는 등 여러 학설이 대립하는 상태입니다.


갑자기 왜 뜬금없는 역사 이야기냐고요? 오늘 소개할 와인은 저 서신을 작성한 교황 ‘요한22세’를 빼고는 설명할 수 없거든요. 바로 ‘교황의 새로운 성’이라는 뜻을 가진 ‘샤토뇌프 뒤 파프(CDP·Chateauneuf-du-Pape)’입니다.


와인에 진심이었던 과거 카톨릭 교회


요한 22세는 그 유명한 ‘아비뇽 유수(Avignonese Captivity)’ 사건으로 아비뇽에 교황청을 차리고 집무를 보았던 아비뇽의 교황들 7명 중 두 번째 교황입니다. 아비뇽 유수는 교황이 프랑스왕에게 뺨을 맞은 ‘아나니 사건(Anagni slap)’과 함께 교황권의 몰락을 상징하는 중요한 사건이죠.


부자는 망해도 3년은 간다던가요. 아나니에서 굴욕을 당하고도 여전히 교황이라는 이름의 권위는 막강했습니다. 이를 제어할 필요성을 느낀 프랑스왕은 교황을 프랑스인으로 뽑고 로마가 아닌 자신의 권위가 미치는 프랑스의 시골, 아비뇽에서 집무를 보도록 했는데, 이게 바로 아비뇽 유수의 시작입니다.


전임이자 아비뇽의 첫 교황이었던 클레멘스 5세는 와인에 까다로운 사람이 아니었습니다만, 요한 22세는 그렇지 않았다고 합니다. 어찌보면 당연한 이야기기도 합니다. 당시 와인은 거의 유일한 기호품이었고, 바티칸에 가지 못한 채 프랑스의 한 구석에서 사무를 보는 교황이었지만 교황은 대부분 굉장한 세도가의 권력자였으니까요.


개인의 기호와 교황의 배경을 차치하더라도, 당시 제례에서 와인은 빠질 수 없는 품목이었습니다. 당시 교회법에는 ‘썩지 않은 포도주가 성찬식에 제공돼야 한다’고도 돼있을 정도였죠. 지난 샴페인편에 나오는 페리뇽 수도사의 이야기를 기억하시나요? 당시 카톨릭 교회는 포도주 관리를 위해 수도사를 따로 파견할 정도로 와인에 진심이었습니다.


만약 원래 교황청이 있던 이탈리아 반도의 바티칸이었다면 바로 그 경계 투스카니 지방의 와인들을 쉽게 공수했을 겁니다. 하지만 알프스 산맥이 닿아있는 남프랑스의 작은 마을까지 그 와인들을 실어오는 것은 너무 비효율적이었습니다. 결국 요한 22세는 다른 지역에서 생산된 포도주를 운송하는 대신 직접 만들기로 합니다.


교황의 새로운 성, 샤토뇌프 뒤 파프


그 무렵 아비뇽에서도 이미 와인용 포도를 재배하고 양조하고는 있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교황인 요한 22세의 성에 차지 않았던 것으로 보입니다. 요한 22세는 ‘예수의 피’로 대변되는 성찬용 와인은 더 힘차고 굳건해야 한다고 생각했을 것이라는 우스갯소리도 있죠.


결국 그는 아비뇽에서 북쪽으로 약 17㎞ 떨어진 지금의 ‘샤토뇌프 뒤 파프’ 마을에 여름 별장을 짓고는 그곳에 교황권이 미치는 각지에서 가져온 포도나무를 심어 와인을 만들게 했습니다. 포도원을 만들고 포도원에서 일할 사람이 필요해지면서 마을은 많은 사람이 오고가는 번창한 곳이 됩니다.


건설 초기 이곳을 사람들은 그곳에 있던 석회석 채석장 이름을 따 샤토뇌프 칼세르니에(Chateauneuf Calcernier)라고 불렀다고 합니다. 여기에서 초기에 생산된 와인들은 ‘뱅 뒤 파프’(Vins du Pape·Wine of pope), 즉 교황의 와인으로 불렸습니다.


하지만 일종의 ‘교황 마케팅’ 이었을까요? 곧이어 사람들은 마을을 교황의 새로운 성이라는 뜻의 ‘샤토뇌프 뒤 파프’라 부르기 시작했고, 자연스레 이 마을에서 생산하는 와인도 뱅 뒤 파프 대신 샤토뇌프 뒤 파프(CDP)로 불리면서 인기를 끌었습니다.


마치 전임 교황이자 보르도의 귀족 가문 출신이던 클레멘스 5세가 소유하고 있던 보르도 페삭레오냥 지역의 포도밭이 ‘샤토 파프 클레망(Chateau Pape-Clement·클레멘스 교황의 성)’이란 이름으로 불리면서 인기를 끌었던 것과 비슷한 느낌입니다.


13개 품종이 합쳐진 ‘거룩한 화합’의 와인


교황의 명령으로 전 유럽 각지에서 가져온 포도나무의 품종은 다양했습니다. 하지만 아비뇽에 식재를 하더라도 특유의 기후와 풍토에 적응할 수 있는 품종과 그렇지 못한 품종이 있죠. 결국 샤토뇌프 뒤 파프 마을에서는 자생 품종을 포함 살아남아 양조할만한 과실을 맺어낸 품종들을 적절히 섞어 포도주를 양조합니다.


그래서 혹자는 CDP를 ‘거룩한 화합의 와인’이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교황의 명령으로 전 세계에서(당시의 세계관으로 본다면 전 유럽은 사실상 전 세계였습니다) 모아온 포도 품종 중 우월한(살아남은) 품종을 섞어 양조한 와인이기 때문입니다.


현대에는 프랑스의 AOC(Appellation d’Origine Controlee·원산지 통제 명칭)법에 따라 무려 13가지 품종을 섞을 수 있는데요. 주로 쓰이는 품종만 뽑아 GSM(Grenache-Syrah-Mourvedre·그르나슈-쉬라-무르베드르)이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하지만 사실 교황은 화합보다는 ‘먹을만한’ 와인을 만들기 위해 꽤나 골머리를 썩었을 것으로 추측됩니다. 이 지역에서 원래 많이 키우던 쉬라와 무르베드르는 당시의 양조기술로 단일 품종 고품질의 와인을 만들기에는 섬세함이 부족했기 때문입니다. ‘예수의 피’로 불릴 정도 고품질의 와인을 만들기 위해서는 당시로서는 여느 보르도 와인처럼 여러 품종을 섞을 수 밖에 없었을 것이라는 설명입니다.


여튼 요한 22세는 결국 와인 역사에 길이 남은 와인을 만들어냅니다. 시음 적기에 제대로 브리딩(breathing)만 해서 마신다면 굳건함과 섬세함, 우아함을 모두 느낄 수 있다는 거룩한 화합의 와인, 샤토뇌프 뒤 파프의 탄생입니다.


※매일경제신문 프리미엄 코너에 연재되는 주간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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