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 수업 중 스마트폰 이용법이란 게 있었다. 전화를 쓰는 데도 그 방법을 알아야 하다니... 예전에도 주민센터나 도서관에서 이런 강의를 본 적이 있지만 그때는 그저 지나쳤다. 스마트해봤자 전화하고 인터넷 검색을 하는 게 다였으니까. 하지만 앱도 수없이 많고, 또 뭐가 뭔지 모를 '정보 제공에 동의하시겠습니까?'이런 문구들을 볼 때면 가슴이 뜨끔하니 그런 것도 가르쳐주나 해서 가봤는데...
명랑한 선생님이 노년층의 학생을 맞았다. 음, 그 구성원을 보니 '나는 여기 왜 왔을까?~'하며 수업내용이 좀 의심스러워지긴 했다. 그래도 일단 왔으니 잘 배워보자~!! 선생님은 말하길, 스마트폰 여러 수업 중 마지막 시간이라 했다. 나는 이 수업이 시리즈인 것도 몰랐고 그렇게 배울 것이 많음은 더더욱 몰랐다. 스마트폰이란 한두시간에 배울 수 있는 게 아닌가 보다. 스마트폰이 너무 스마트해져서 그것을 커버하기엔 사람의 스마트함이 모자라게 됐다는 뜻?
그날은 AI 이용법, 해외여행 갈 때를 대비해 구글에서 외국어 번역, 통역 기능을 이용해 보자고 했다. 그래, 그 스마트한 녀석은 신통하게도 외국어를 금방 잘도 했다. 사실 이런 기능을 모르는 것은 아니었다. 일본어를 하나도 모르는 동생도 일본에 가서 현지인처럼 잘 놀고 쇼핑도 잘 하고 돌아오니까. 일본어가 이 정도면 영어 번역은 더 좋을 테다. 참 좋은 세상!!!! 인가????
두 가지 마음이었다. 예전에 외국에서 좀 살았다. 일본어는 어렵지도 않고(히라가나를 배울 때는 엄청 어려웠으나...) 몰라도 새것을 배우는 맛이 있어서 공부가 그럭저력 좋았다. 그때 이런 AI가 있었다면 일어를 더 빨리 많이 배울 수 있었을 텐데. 이후 캐나다로 이사를 갔다. 영어가 휴~ 정말 안 됐다. 일어를 배우면서 새끼 손톱만큼 알던 영어조차 다 잊었다. 그래도 다행히 좋은 친구들을 많이 만났다. 어쩌면 서로 말이 부족해서 더 따뜻하게 이해했을지도 모르겠지만. 그 시절에 영어 잘하는 AI가 있었다면 더 깊은 대화를 나눌 수 있었겠지. 그때의 친구들이 보고 싶고 좀 아쉽다. 이렇게 생각하자면 이 외국어 AI는 참으로 기특하다.
하지만 현재.... 그 고생의 시절을 지나 일어든 영어든 정말 필요하다고 생각하면 소통할 수 있다. 가끔씩 식은 땀을 흘리거나 얼굴이 화끈거릴 수도 있겠지만, 하려는 마음만 있다면 그 정도쯤이야. 상대방도 약간의 인내를 가진다면야 의사소통에 문제 없겠지. 그런 면에서 다른 외국어라면 엄청 감사하겠지만 일어와 영어라면 내게는 그닥이다.
무엇보다도... 이런 AI가 생활 속에서 활기를 친다면, 좀 염려되기도 한다. 외국어 공부는 왜 할까? 핸드폰을 분실했거나 배터리가 다 됐을 때를 대비해서???
'이제 외국어를 몰라도 괜찮아요. 통번역자는 없어도 되겠죠? 편하게 하고 싶은 말 다 하세요~'
선생님은 낭랑한 목소리로 이 AI들을 칭찬했는데. 음, 나는 그 없어도 된다는 통번역 알바를 한 적도 있고, 아무것도 가진 것은 없지만 그나마 외국어는 좀 한다는 자부심 비슷한 것이 있었다. 그런데 이제 그나마 완벽한 과거의 유물이 되어버렸다. 이 시대의 관점으로 보자면 외국어가 아닌 컴퓨터에 그 시간과 노력을 투자했어야 했다.ㅠㅠ 나는 아무 기술도 능력도 갖지 못한 잉여인간@@??
지금 외국어를 배우는 학생들은, 이렇게 기계가 다해준다면 열심히 공부하려는 마음이 생길까? 언어를 좋아해서 재미로 하는 사람 빼고 누가 거들떠볼까. AI가 외국어도 다해, 지식도 정보도 다 알려줘, 참 요즘 젊은 세대는 무엇을 배워야 할지 당황스럽다. 물론 그것을 편집하고 응용하는 능력이 필요하다지만, 그 정도의 머리를 지닌 이는 소수에 불과할 테고 나머지들은 무엇을 할까. 자기 머리는 쓰지 않고 스마트한 기계들에만 의지하다간 그저 도태되는 것이 아닌가. 영화 <혹성탈출>에서 나오는 멍청한 인간들이 생각난다. 자신의 능력에 걸맞는 뭔가를 하면서 제 잘난 맛을 느끼며 살 때 만족과 행복을 느끼는 것이 아니었나.
새롭게 주어진 문명을 최대한으로 즐기며 이용한다! 이렇게 생각한다면 속이 편할 테고 이것이 나를 위한 정답인 것을 안다. 스마트폰이, AI가 뛰어나봤자 인간이 이용하는, 인간의 편의를 도모하는 기계지, 하고 무시하면 된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꾸만 머리속이 시끄러웠다. 결국 알고자 했던 정보제공 관련 내용은 질문도 못하고 심하게 스마트한 스마트폰의 위세에 눌린 채 그 수업을 마쳐야만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