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세대 아이돌과 MZ세대, 그리고 나의 인생관
최근 가요계는 걸그룹으로 시작해서 걸그룹으로 끝난다고 말할 수 있을 정도로 걸그룹의 인기가 지배적이고, 특히 2020년대와 동시에 시작한 4세대 걸그룹의 전성시대가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지속되고 있다.
지난해 수많은 신인상과 대상까지 거머쥔 아이브, '튜닝의 끝은 순정이다'를 가요계에서 증명하고 있는 현시점 가장 핫한 그룹 뉴진스, 이 두 그룹과 함께 작년 센세이셔널한 데뷔를 이루어낸 르세라핌 등 작년에 가장 핫했던 루키 세 팀을 포함해서 에스파, 엔믹스, 케플러, 스테이시, 있지, 피프티피프티, 하이키 등등 수많은 4세대 걸그룹이 가요계를 이끌고 있다.
걸그룹과 아이돌의 세대를 나누는 것이 명확하지는 않다. 세대를 어떤 기준으로 나누느냐에 대해서도 의견이 갈리곤 한다. 예를 들면, 여자아이들을 3세대로 볼 것인지, 3.5세대로 볼 것인지, 4세대로 볼 것인지, 또는 2019년을 기준으로 볼 것인지, 2020년을 기준으로 볼 것인지 같은 논쟁이 벌어지곤 한다. 하지만, 많은 평론가들이 말하듯이, 4세대 걸그룹에게는 모두가 알 수 있는 공통점이 있다.
'누가 뭐라 해도 나는 나의 길을 간다'는 "주체성"과 "자신감"의 서사를 저마다의 걸크러쉬 컨셉을 통해 조명하고 있다는 점이다. 4세대 걸그룹의 시작으로 일컬어지는 ITZY의 <달라달라>의 가사를 보면 확실하게 4세대 걸그룹의 관심사가 무엇인지 알 수 있을 것이다.
소녀시대, 카라, 원더걸스의 2세대 걸그룹, 트와이스, 레드벨벳, 블랙핑크의 3세대가 대부분 초점을 맞춘 풋풋한 사랑과 설렘의 감성을 뛰어넘어, 4세대 걸그룹은 자신의 꿈과 커리어, 그리고 자신의 인생에서 가지는 프라이드, 자신감에 대해 말한다.
이런 가사를 어디서 들었보았나 잘 생각을 해보니 힙합 음악이 생각났다. 힙합은 항상 자신의 삶과 자신감을 말하지 않는가. 힙합 음악들을 생각해보면, 자신이 살아온 삶에 대한 자신감, 음악에 대한 자신감, 자신의 고향에 대한 자신감, 그리고 자신만의 길을 걸어가겠다는 굳은 의지를 직설적으로 뱉어내는 래퍼들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런 힙합이 가사나 음악적인 부분들이 아이돌 음악에 점차 반영되었고, 과거에도 2NE1이 이런 힙합적인 아이돌 음악을 지향했었지만 2010년대 후반 블랙핑크, (여자)아이들 같은 그룹 이후 힙합 문화가 아이돌에 본격적으로 들어왔다고 볼 수 있고, 이런 힙합 문화와 아이돌 문화가 합해지는 그 지점에서 4세대 걸그룹이라는 문화적 산물이 배출된 것이다.
한편, MZ라는 용어가 최근 2년 간 대한민국을 뜨겁게 달구고 있다. MZ 세대는 1980년대생부터 2000년대생을 일컫는 표현이지만, 주로 언론이나 미디어에서 다루는 MZ세대의 특징은 Z세대의 그것을 과장하고, 확대하여 표현하는 것이라고 생각된다. 따라서, MZ세대의 수많은 현상들을 Z세대로 한정해서 보는 것이 보다 정확한 것이라고 생각된다.(Z세대는 1990년대 중반부터 2000년대 초반 출생으로, 최근 사회에 진입한 세대를 지칭한다) 어찌 되었건, 미디어에서 보여주는 Z세대는 4세대 걸그룹이 표현하는 삶의 방식을 적극적으로 표현해내고 있다.
어떤 것이 원인이고 결과인지, 또는 선후관계가 어떻게 되는지는 모르겠지만, '아이돌'과 '젊은 세대'는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 아니겠는가. 아이돌이 젊은 세대의 모습을 형상화한 것인지, 젊은 세대가 아이돌들의 모습에 영향을 받은 것인지, 무엇이 먼저인지는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 같은 사소한 논쟁일 것이고, 결국 중요한 것은 "자유로운 삶", "주체성", "자신감"이 이 시대를 살아가는 새로운 세대가 매우 중요한 가치로 여긴다는 것이다. '누가 뭐래도 나는 나의 길을 간다'라는 말처럼 남들의 간섭과 위계성을 어떤 세대보다 싫어하는 세대의 등장이라고 볼 수 있다.
나 역시 그 세대의 중심에 서 있다. 학창시절에 방탄소년단, 엑소, 트와이스, 레드벨벳, 블랙핑크, 프로듀스101을 직격탄으로 맞았고, 수험생활을 시작할 즈음에는 앞에 소개한 4세대 걸그룹의 등장을 보았다.
그렇다면, 나는 그런 본인에 대한 프라이드가 강하고, 자신감 가득한 삶을 살고 있을까. 전혀 그렇지 않다. 오히려, 가끔씩 모두가 자신감 강한 세대적 특징 아래에서 나라는 사람이 너무나 초라해보이곤 한다. 아직 어떤 길로 가야 할지도, 어떤 선택을 해야 할지도 잘 모르겠다. 이미 성인이 되고서도 한참이 되었는데, 여전히 어른스러운 고민들과는 거리가 멀기만 한 나의 고민들은 참 한심하게만 느껴지곤 한다. 내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 내가 어떤 것을 좋아하고, 어떤 일을 잘하는지는 보통 10대 때 찾곤 하지 않는가. 물론, 20대, 30대에 그것을 찾는 사람도 충분히 있겠지만, 10대 때 찾는 것이 인생 전반에서 보았을 때 매우 효율적일 것이다.
그런데, 내가 10대 때 무슨 일을 했는지, 어떤 생각을 했는지를 돌아보면, 다소 후회스럽기도 하다. 물론, 나름대로의 경험도 했고, 공부도 했지만, 그 경험과 공부 모두가 대입이라는 큰 문제에 담겨서 존재했었다. 대입을 넘어선 경험이나 공부는 '대학에 가서 해라'는 말로 정리되고 말았다. 그리고, 입시라는 것이 얼마나 잔인한 것인가. 정말로 남들과 나를 끊임없이 비교해야 하고, 본인을 몇년 간 끝없이 쥐어짜내야 한다. 나도 그랬다. 이 기형적인 사회구조와 입시제도 아래에 선 10대의 나에게 자존심과 주체적인 삶은 4세대 걸그룹이 말하는 "내 삶을 내가 원하는 대로 살겠다"의 이상적인 모습이 아니라, "내가 얘보단 낫지", "내가 쟤네보단 좋은 대학을 가겠지"라는 초라한 모습이었다. 나의 자존심은 내 삶에 대한 자신감이 아니라, 그래도 남들보다 내가 이건 잘한다, 얘보다는 잘한다라는 열등감의 표현의 일종이었다.
그런 방식으로 살도록, 생각하도록 우리 사회와 교육 현장이 말한다. 현재 대한민국의 입시 시스템에서는 그런 사람들이 성공한다. 어떤 문제를 생각할 때, 이것을 전부 사회의 탓으로 몰아서도, 전부 개인의 탓으로 몰아서도 안되겠지만, 적어도 이 문제에서는 사회의 탓이 더 클 것이다. 나를 포함한 많은 대학생들이 대학에 들어온 이후, 갈피를 잡지 못하고 휴학을 생각하고, 계속해서 전문직과 고시 열풍에 빠져드는 것도 이런 교육 시스템에서의 문제와 맞닿아 있을 것이다.
종종 미디어에서 MZ세대를 사회성 없고, 개인주의적인 성향이 강한 세대로 풍자하는 모습이 보인다. 우선, 분명히 밝혀야 할 것은 그 세대의 대부분은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내가 본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저 다른 세대들과 비슷한 사고방식으로 겸손하고 사회성 높은 모습이다. 커뮤니티, 미디어 등에서 사회성 없고, 개인주의적인 사람들이 과장되고 과대대표되는 모습이 분명히 있다. 그리고, 또 확실히 해아할 중요한 문제는 바로 이 세대의 일부를 사회성 없고, 개인주의적인 성향으로 만든 주체는 바로 구세대가 만들어 놓은 사회 체제와 시스템이라는 것이다.
입시 시스템에 어릴 때부터의 강한 서열화로 대표된 엘리트주의를 주입한 결과이고, IMF 이후의 사회의 극한의 대립과 비교를 학교에 주입한 결과인 것이다. 그 아래에서 걸크러쉬 같은 자신감과 주체성을 강조하는 문화가 등장해 삶에 들어왔고, 그 모든 것이 혼재된 산물이 바로 지금 사회에 들어오는 세대들의 모습인 것이다. 그 속에서는 열등감에서 불타오르는 근거 없는 자신감이 가득하고, SNS를 통한 남들과의 비교가 가득한 한편, 그 아주 세속적이고도 세속적인 분노를 커뮤니티에 배설하는 현상이 만들어지게 된 것이다.
그래서 난, 조금 쉬고 싶다. 쉬면서 사고 방식을 바꿔야겠다. 남들과의 비교보다는, 내가 원하는 내 삶을 살아야 한다는 4세대 걸그룹의 목소리처럼 세속적인 성공이나 가치보다는 진정한 내 주관적인 가치관과 성공 방향, 인생의 목표를 찾아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