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7화.
“할매 그 여자 이름이 뭐였노?”
“니 보고 싶나?
몇 년 안 살다 나가서 나도 이자뿌따. 내 죽기 전에 너거 엄마 찾아주고 죽어야 제.”
벽돌핸드폰도 무선호출기도 없던 내게 몇 년에 한 번 볼까 말까 하는 가계도 인물을 착출 해 내는 것부터 순조롭지 않았다. 물을 때마다 숫자가 달라지지만, 얼추 내가 다섯 살 즈음 집을 나갔다는 할머니의 기억을 토대로 여자의 이름부터 알아내야 했다. 할머니를 모시고 사는 작은아버지에게도 질문을 거르지 않았다.
“아... 너거 엄마? 참 이뻤지.”
안 묻느니 못했다.
2남 4녀 중 장남인 아버지는 위로 누나만 셋, 아래로 남동생, 여동생이 각각 있었다. 서울로 시집간 누이들은 명절에 조차 코빼기도 비추질 않았다. 때문에 어린 나로서는 고모들 얼굴 본 날을 손에 꼽았다.
무렵 8년간의 당뇨합병증으로 고통받던 할머니가 돌아가셨다. 아침밥을 야무지게 드시고 갑자기 쓰러진 후 두 달을 병상에 누워만 계셨다.
할머니가 계시던 시골 작은아버지 댁으로 장 씨 일가친척들이 한데 모였다. 편도만도 5시간이 넘는 거리를 단숨에 달려온 고모들은 아버지와 한참을 부둥켜안고 꺼이꺼이 울어댔다. 일절 연락도 끊고 지낼 때는 언제고 조문 온 빈객을 치르는 중간중간 막걸리를 들이켜고 서로의 해묵은 안부를 다정스레 묻는 광경이 낯설었다.
장례식이 모두 끝나고 유품 정리가 시작되었다. 그제야 눈물이 핑 돌았다. 영원한 내편이 사라져서인지 아니면 더 이상 엄마를 찾을 방도가 없어졌다는 생각 때문이었는지 혼란스러웠다. 할머니가 쓰시던 옷과 가방, 이불 할 것 없이 죄 아궁이 속으로 던져졌다. 아궁이가 미어터질 것 같았던 그녀의 흔적들이 활활 타오르더니 금세 사그라들었다. 굴뚝을 빠져나온 하얀 연기는 너울너울 흩어졌다. 연기가 된 할머니가 그곳에 잘 도착하길 빌었다.
새엄마와 작은엄마는 할머니방 청소에 여념 없었다. 다급해진 나는 돌아갈 채비가 한창인 고모들 사이를 기웃거렸다. 영악한 구석이 있었다. 또래보다 순진하고 세상물정 어둡던 내가 와중에 여자의 이름을 찾을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어쩌면 오늘은 신이 주신 기회일지도.
“고모, 혹시 저희 엄마 이름 아세요? 친엄마요...”
“나야 모르지. 언니는 기억나?”
“나도 모르지. 아이고... 벌써 언제 적인데. ”
“별안간 네 엄마이름이 왜 궁금한데?
새엄마가 뭐라고 해? 어머, 얘 지엄마 보고 싶은가 봐.”
졸지에 그녀들 대화의 물꼬를 터주게 되었다.
“어린 게 얼마나 엄마가 보고 싶을까. 쯧쯧.”
어느새 혀 차는 소리뿐 더 이상의 말은 없었다.
가여운 조카정도로 생각해 주니 눈물 나게 고마웠다.
결국 할머니 장례식에 가서조차 여자의 이름을 찾지 못했다.
허망함만 안고 집으로 돌아왔다. 며칠간 제대로 씻지 못한 새엄마는 혼자 목욕탕에 가고, 생리가 터진 나는 아버지와 두 동생들을 돌보았다.
"아빠, 제 엄마 이름이요, 아무도 모른다네요. 생전에 할머니도 모른다고 했고, 삼촌도 고모들도 모른데요. 일부러 말 안 해주는 걸까요? 진짜 기억나지 않는 걸까요?"
"너거 엄마 이름? 와 궁금하나? ㅇㅇㅇ이다. 진작 내인테 묻지."
여태 엄한데서 보따리를 찾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