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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디오소년 Jun 09. 2023

조각을 찾아라

제10화.

엄마가 가난해서 놀랐다. 엄밀히 말하자면 크게 실망했다.         



       

자고 나면 이름이 바뀌었던 대형마트 뒤로 다닥다닥 어깨를 맞댄 옹색한 집들이 비탈진 언덕을 줄지었다. 곧 무너질 듯 담벼락 틈새로 얼굴을 내민 서양민들레는 가난한 동네의 상징이었다.


드르륵 가게셔터를 올리면 다섯 평 남짓한 크기의 주방 겸 다용도실이 펼쳐졌다. 10년 전에 접었다던 화장품가게는 뽀얗게 앉은 진열장 먼지로만 존재했다. 멋을 아는 엄마의 겨울 외투들이 걸쳐진 스탠드 옷걸이 뒤로 페인트칠이 사이사이 벗겨져 있었다. 위로 절반은 흰색, 아래로는 짙은 회색. 나는 시퍼렇고 거무스름한 곰팡이 포자가 허공을 마구 날아다니는 상상을 했다. 낮은 찬장에 변변찮은 살림살이를 지나 신발을 벗고 올라서면 동굴 같은 은거지가 나왔다.      


마침내 우리는 이 방에 유일한 가구인 퀸 사이즈의 침대를 셰어 하는 사이가 되었다. 방안에 난 쪽문의 허술한 걸쇠를 풀면 작은 세면대 공간과 화장실로 통하는 출입문이 다시 나있었다. 엄마는 화장실 앞에 쪼그려 앉아 비 오는 날 비 맞고, 눈 오는 날 눈 맞아가며 담배를 입에 물었다.     


처음 함께 살기로 했을 때 엄마의 직업은 택시드라이버였다. 밤낮없이 회사택시를 굴렸지만 두 여자 목구멍에 풀칠하기엔 턱없이 부족했다. 단지 운전을 좋아해서 시작한 일은 사납금을 맞추다 허무하게 끝이 났다.    

  

기사식당은 너무 더럽다는 이유로 나와 버렸다. ‘살린다’는 이유로 반쯤 남은 공깃밥을 덜어내는 걸 본 날 더는 일할 수 없다고 주인에게 고했다. 엄마가 식당에서 일하는 반년 동안 우리의 뱃속 양분을 채운 건 퇴근 때마다 봉지에 받아온 김치와 깍두기, 멸치볶음 따위였다.    

 

유난히 추위를 많이 타던 엄마가 가장 오랫동안 버텼던 일은 아파트현장 준공청소였다. 새벽 5시면 어김없이 일어나 공부하러 가는 딸아이의 도시락밥을 짓고, 두꺼운 방한 바지에 발목 위까지 감싸주는 두껍고 긴 양말을 신었다. 보온병에 커피를 가득 담고 멋이라곤 하나 없는 튼튼한 안전화를 착용한 후 전장으로 향했다.               







나는 허파에 바람이 잔뜩 들어있었다.     


매일같이 도시락을 가방에 넣고 도서관으로 출근했지만 실은 모험을 꿈꾸느라 현실에는 관심도 없었다.

애초에 공부는 해 본 적도 없었고, 외모를 치장하고 다른 이들의 눈길을 기다렸다. 탤런트가 꿈이었다가 승무원으로 전향했고 토익학원에 다녔으며 엄마 몰래 미용학원에도 등록했다.               

‘기껏 찾았더니 돈도 없어?’

엄마에 대한 ‘보상심리’는 ‘보복소비’로 이어졌다. 뒤늦게 찾은 딸의 뒷바라지를 해대는 늙은 여자는 그렇게 고생을 자초했다.

 



50대 여자와 20대 여자는 매 순간 부딪혔다.      

성격차이, 감정차이, 사고방식, 생활습관은 함께 하지 못한 시간 동안 모녀 관계의 단단한 외벽을 만들어냈다. 누구보다 엄마의 사랑을 갈구했지만 정작 엄마를 애정하진 않았다. 다만 사랑이든 물질이든 결핍된 무언가를 채워야만 했다.  

             

“뜬구름 그만 잡고 취업을 했으면 좋겠다.”     


그녀가 처음으로 입을 열었다. 쓸데없는 잔소리는 소거하고 맥락만 꼬집어서.

몇 년째 승전 없는 싸움은 아무래도 사투리와 억양 때문인 것 같아 승무원학원을 등록해야 한다고 말할 참이었다.


반박할 근거를 찾지 못했다. 게다가 이제는 갈 곳도 없었다.




나는 엄마와의 공생을 결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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