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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디오소년 Jun 16. 2023

조각을 찾아라

제11화. 마지막화

‘교육전문가’는 적성에 딱 이었다.

어딘가 모르게 있어 보이는 명함도, 얕은 지식을 뽐낼 때마다 충족되는 미미한 자긍조차 만족스러웠다.               



다만 그것이 ‘학습지교사’ 일 때는 얘기가 달라진다. 사시사철 체중의 20%에 달하는 백 팩을 지고 그것도 모자라 보조가방을 활용해 무게를 분산시켰다. 오전에는사무실로 오후에는 지하철에서 버스로 한번 갈아탄 뒤해당 구역을 순례했다. 하루 10명 남짓, 이제 막 두 돌이 지난 제자들의 가정을 차례로 방문해서 ‘사과’, ‘바나나’가 적힌 낱말카드를 수 없이 외쳤다. 평생 굵은 종아리에게 섭섭한 마음을 안고 살았는데 막상 차 없이 돌아다니다 보니 우람한 장딴지에게 신세 지는 꼴이 되었다.      


봄이면 아지랑이 채 피어오르기 전에 손수건부터 챙겨야 했고, 장마철엔 젖은 양말과 동반한 시큼한 냄새를 가리기 위해 매번 양말을 갈아 신는 수고를 자처했다.

마지막까지 비교적 외모를 덜 본다는 외항사로 가능성을 두고 토익책과 씨름하기를 꼬박 2년. 학원 매출 신장에 어마한 공을 세웠던 시간이 꿈처럼 아득해져 갔다.  

   

그 사이 가게 딸린 방을 정리하고, 30년 된 복도식 아파트 주민으로 입성했다. 18평 안에 내가 일조한 공간은 신발장 크기만큼은 되려나. 엘리베이터 층수 버튼을 누를 때마다 휘장을 두른 듯 감정이 넘실댔다. 입주민과 동승이라도 할 때는 층수를 확인하고 “아 △△층 사시는구나. 저희는 ○층이요. 이번에 이사 왔어요.” 하며 하루속히 그들 사이에 동화되고 싶어 했다. 두 여자에게 아파트란 공간은 다시는 바닥으로 내쳐지고 싶지않을 만큼 안락한 완충지대였다.    




            





하루는 더디 가고 세월은 빨리 간다. 그리고 바야흐로 진짜 여름이 되려는 참이다.


“엄마, 이번엔 괴산이야. 작지만 계곡도 있고... 둘레길이 있더라. 비가 와서 좀 그런가. ”     


젊은 애들끼리 가야 좋지. 늙은 장모 불편할 텐데 손사래 칠 땐 언제고 엄마는 딸네 식구의 캠핑 단골이다. 평생 나만 위해 살았으니, 이제는 남을 위해 살아보고 싶다던 엄마의 직업은 10년째 요양보호사. 생계를 위함이 컸지만, 하루하루 연명하는 삶에 낙담한 어르신을 돌보고 위로하는 일에서 일종의 ‘치유’를 느낀다고 했다.     

극성스러운 모녀는 새벽 댓바람부터 우의를 챙겨 입는다. 호젓한 산길을 따라 걸으면 슬금슬금 초여름 냄새가 반긴다. 나는 살포시 핸드폰을 꺼내 ‘비 오는 날 듣기 좋은 노래 7080’을 재생시켰다. 확실히 분위기를 탔다.      


“너도 저 노래 좋아하는구나? 풋. ‘감성’은 날 닮았네.”     


권인하의 [비 오는 날의 수채화]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잔잔한 호수 수면 위로 떨어지는 빗방울들이 점점이 박혔다. 우리는 평지길을 지나 산길로 접어들었다. 청설모와 민달팽이가 지나는 길을 걸으며 엄마의 하루 일과와 이모들의 근황을 확인했다. 땅의 질퍽함, 풍성한 초록의 생명들과 등에 맺힌 땀방울까지 공유하는 시간. 깊은 산중에서 이렇게 아름다운 길을 걸을 수 있는 호사가 또 있을까 하면서.




우리는 다시 힘찬 걸음을 내디뎠다.                    

                                                                                  -끝-








기억의 조각들이 완성되었습니다


어쩌다 장편의 글이 되었네요


'그동안 시청해 주셔서 감사합니다'라고 한마디는 해야만 할 것 같았습니다



엄마를 통한 나의 이야기는 브런치를 시작한 이유였고한 번은 거쳐가야 할 과정이라 여겼습니다


키보드를 두드리는 내내 우울했고, 떠올리는 것조차 버거워 어느 날은 깊은 땅속으로 꺼져 버렸다가 붉으락푸르락 흥분을 감추지 못하고 지금의 가족들에게 내비친 날도 있습니다


제게 행복이 무엇이냐 물으신다면 지금의 삶이라고 답할 것입니다


어린 시절, 그렇게도 열망했던 꿈의 소리를 지금은 글로 자유롭게 표현하고 있으니까요


여러분도 행복하셨으면 좋겠습니다


진심으로 감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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