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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디오소년 Jun 30. 2023

대배우(중)

“아이고, 우리 달띠 왔나”

아이는 이 특별한 호칭이 퍽 듣기 좋았다. 돌이켜보면 할머니는 작명의 귀재임에 틀림없다.  나는 알지 못했다. 활자 뒤에 숨겨진 의미를. 둥글고 복스럽기만 하던 얼굴의 면적은 날로 커져만 갔다.        



  

‘작은 얼굴’에 대한 집착과 열망이 피어난 건 사춘기가 시작된 어느 명절날이었다. 텔레비전에서 한 여자연예인이 CD로 얼굴을 가리는 장면이 나왔다. 다소 충격적인 장면을 목도한 나는 호기심이 발동했고, 줄자를 꺼내 들어 사촌들과 서로의 얼굴 길이를 측정해 보았다. 나이가 제각각인 일곱 명중에 독보적인 1위였다. 인정할 수 없었다.   


납득이 안 되는 것 중 또 하나는 거울과 사진의 간극이었다. 샤워를 마친 후 거울에 비친 나는 자욱한 수증기를 뚫고 나온 듯 제법 빛이 났다. '오~ 오늘 좀 예쁜데...' 한껏 블러셔로 쉐딩까지 하고 친구들을 만나서 사진을 찍으면 그때부터 심란해졌다. 아침까지만 해도 반쪽이던 얼굴은 넓은 면적을 여과 없이 드러냈다. 철저히 원근법을 무시하고 정직하게 찍힌 사진을 보며 엄한 친구를 원망하고, 헤어지자마자 보내 준 사진을 모조리 삭제하는 것으로 소심한 복수를 했다. 한술 더 떠 무방비 상태에서 찍힌 사진은 차마 눈뜨고 보기 힘든 실정이었다. 때문에 배우를 꿈꾸면서도 카메라가 두려웠다.  


보름달, 빵떡, 얼큰이, 대가리, 대갈장군... 큰 얼굴은 뿌리 깊은 열등감을 낳았다.


억울하고 답답한 마음은 엄마를 찾고서야 절로 고개가끄덕여졌다. 모계유전이었다. 그녀는 네가 본판이 얼마나 예쁜데, 옛날에 태어났으면 부잣집 맏며느리였을거라는 둥, 뇌가 크면 지능지수가 높다는 둥 딸의 심기를 건드리지 않으면서도 책임소재는 떠안으려 하지 않았다. 내면의 아름다움이나 가꾸지 허구한 날 거울만 보고 자빠진 딸아이가 적잖이 답답했을 터.  


다행히 나는 분별없이 낙관적이었다.

오이와 토마토로 몸의 크기를 줄이고 돈을 버는 족족 경락 마사지에 쏟아부었다. 얼굴은 일시적으로 작아지는가 싶더니 시간이 지나자 언제 그랬냐는 듯 수축된 근육이 제자리를 찾았다. '춥파춥스형' 인간이 되었다.








짧은 서울 상경기가 일단락되고 제일 먼저 찾은 곳은 성형외과였다. 쌍수(쌍꺼풀수술)에 성공한 친구의 추천 병원이었다. 아울러 광대만 살짝 다듬으면 될 것 같다는 친구의 따뜻한 조언에 힘입어 내심 기대가 컸다.


"이런 경우는 흔치 않네요. 환자분은 유감스럽게도 광대가 큰 게 아니라 그냥 두개골이 큰 거라... 아직 수술 사례가 없습니다. 새로운 기술이 나오면 그때 한번 봅시다."


적잖이 실망했다. 두개골을 꺼내 들고 돌려 깎기를 하고 싶은 심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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