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와니니 Jan 04. 2023

쏘울 푸드의 정체

나는 국류를 좋아한다.

뜨끈한 국물은 언제나 진리라고 믿는다.

추운 날은 말할 것도 없고, 날이 더운 날도 이열치열이다.

고기, 야채가 어우러진 육개장, 우거지탕을 비롯하여 잘 끓여진 갈비탕, 매운탕, 매콤한 어묵탕, 미역국, 생선지리탕, 다슬기국, 선짓국 등이다. 

우동도 면을 먹기 위해서가 아니라 국물을 떠먹기 위해, 수제비도 국물이 시원해서 좋아한다. 

글을 쓰면서도 침이 가득 고인다.


하지만 아이가 태어나고 나서는 아이도 함께 먹을 수 있는 종류의 반찬을 주로 한다. 

해보려고는 하지만 잘하지는 못하여 요리 몇 가지를 동시에 한다는 것이 불가능하다. 게다가 가족이 고작 3명이면서 그다지 대식가들이 아니다. 그러니 어른이 먹을 뭔가를 별도로 주문하기도 번거롭고 어차피 아이가 먹을 건 또 해야 하니 쉽지가 않다. 


그럼에도 가끔 국요리를 곁들이는 욕심을 부린다. 

대표적인 것이 김칫국이다. 

메인요리를 하는데 부담을 주지 않으면서 얼큰하고 뜨끈한 국물까지 들이켤 수 있으니 1석 2조이다. 


김치와 마법의 재료(?)만 있으면 끝이다. 콩나물, 양파와 파는 냉장고에 뒹굴면 넣어준다.

그 마법의 재료라는 것도 지인이 준 것이었다. 김칫국 끓일 때만 유일하게 투하한다. 

그런데, 남편이 그 김칫국을 맛보더니

"이게 바로 나의 쏘울 푸드야. 영혼까지 따뜻하게 해주는 아........ 나의 쏘울 푸드~~~. "

뭐? 쏘울 푸드? 영혼까지? 


자가격리자를 위한 쏘울푸드(김칫국) 대령 식판


나는 요리에 진심인 편이다. 되도록 건강한 맛을 내기 위해 시간을 들여 노력하는 편이다. 

베이스 국물까지 멸치, 무, 파, 다시마 등을 직접 우려내서 요리한다.

고기 요리를 할 때도 육질을 부드럽게 하기 위해 압력밥솥에 한번 익혀하거나 양념에 양파나 키위를 살짝 넣어하는 등의 비법(?)을 추구한다. 내가 직접 조미료를 구매한 적도 없었다.


그런데 수입 MSG 물에 김치를 투하한 것이 쏘울 푸드라니 이 무슨 귀신 씻나라 까먹는 소리던가. 

내가 지금까지 낑낑대면서 재료를 사들고 와서 

몇 시간 동안 서서 재료를 다듬고, 

우려내고 끓이고 지지고 볶고 해준 음식들에게는 한 번도 해주지 않던 찬사였다. 

 



그러고 보니 기억난다.

시어머니는 여러 가지 음식을 빠르게 맛있게 만들어 내신다. 그런데 요리 말미에 희한하게 생긴 통에 담긴 무언가를 두어 번씩 툭툭 털어 넣으셨다. 얼핏 보면 깨소금 같기도 하였고 맛소금 같기도 했다. 

그러던 어느 날 

"어머님 그게 뭐예요?"

"다시다."

남편은 내가 한 음식에 대해 자극적이지는 않지만 건강하게 맛있다고 

적정선을 교묘하게 잘 지키는 칭찬을 했었다. 

그러면서 본인의 엄마도 조미료를 안 쓰고 맛있는데  연륜이 부족한 나도 그런 맛이 비슷하게 난다고도 곁들였다.


시어머님의 아드님에게 이제는 말할 수 있다.

당신이 좋아하는 맛은 바로 MSG맛이라고!

지금껏 어머님이 해주신 음식도, 당신이 쏘울푸드라고 쏘울을 담아 칭찬하던 그 음식도 바로 그 MSG맛이라고 말이다. 

그리고 내 요리에 대해 거짓말을 했거나 맛을 못 느꼈거나 둘 중 하나였다고 말이다.


좋은 재료로, 음식을 정성 들여 직접 해 먹이는 것이 나의 임무라고 생각하고 힘든 수고를 기꺼이 마다하지 않고 했었는데 이제는 조금 자유로워질 때가 왔나 보다. 

요리에 집착하는 것도 돌이켜보면 나의 결핍을 채우고자 했던 욕심이기도 하다. 

요리를 하다 보면 가족이 맛있게 먹고 기쁠 때도 있지만

한 상 차리고 나면, 몸은 이미 고단하고 맛과 냄새에 이미 취해 음식을 즐기지 못하는 경우도 많다. 

새해에는 요리의 외주화나 MSG의 적극적인 활용을 통해 자유를 쟁취해야겠다.



#쏘울푸드 #MSG

매거진의 이전글 美 경찰관과의 조우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