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와니니 Jan 23. 2023

천냥을 얻은 자와 잃은 자

한글학교에서 숙제를 해가면 도조 포인트를 받는다고 했다. 아이는 가끔은 열심히 또 가끔은 대충 해갔다. 도조포인트 같은 당근에 그다지 연연하지 않는다. 

그의 성품이 강직해서라기보다는 귀찮거나 하기 싫으면 그만이지 그것을 얻기 위해 해가는 어린이는 아니란 의미이다. 

몇 번은 도조포인트가 넘쳐나 풍족하게 쇼핑을 했다고 자랑했으나 

물품이 별로 없다는 것을 안 뒤로는 더욱 그랬다. 

그러다 1학기 마지막 쇼핑날이라며 등교했다.


하교 후 차를 타더니 

"엄마, 오늘 학교에서 있었던 일 말해줄게. 아니다. 스포가 될 수 있으니까 집에 가서 말해줄게."

눈치 없는 엄마는 쿨하게 

"그래." 한다.

뭔가 반응을 기대한 아이는 

"엄마 내가 조금만 스포 해줄까?"

그제야 어색한 발연기로 묻는다.

"어 궁금하긴 하다. 뭔데? 스포 살짝만 해봐." 

"아니야. 그냥 뭐 하나 샀어. 더 이상은 안돼."


집에 도착하자마자 가방을 내던지고

알록달록한 양말을 하나 내민다.

"엄마, 내가 모은 도조포인트로 엄마 주려고 선물 샀어." 

"진짜? 엄마 주려고 산 거야? 너무 예쁘다. 마음에 들어. 고마워. 근데 너는 뭐 샀어?"

"나는 안 샀어. 포인트가 얼마 없어서 엄마 것만 샀어"

그러면서 살짝 멋쩍게 씩 웃는다. 

너무 귀엽고 감동적이고 고마웠다. 어쩜 내 아들이지만 멘트도 이쁘다. 

그동안 속상했던 것들이 녹아내리는 듯했다. 

시상식의 멘트처럼 그럴듯한 멘트가 떠오르질 않았다. 정말 기뻤고 가슴에 뭔가가 뭉클하게 올라왔다. 

그래서 나름은 행복과 고마움을 내색한다고 냅다 양말을 꺼내 신으면서 사진을 찍었다. 

사진출처: 기리 남겨둘 내 핸드폰


"엄마는 이 양말 너무 마음에 들어. 정말 고마워. 당장 신고 다녀야겠어. 엄마 이거 까만 원피스에 포인트로 신고 다녀도 될까? 너무 좋은데... 아들이 사준 거라고 자랑하려면 그 정도는 해줘야 사람들이 물어볼 거 같아"

"아니 그건 좀 아닌 거 같아. 너무 튀어. 집에서만 신거나 바지에다 신어."라면서 패션 코디까지 해준다.

"엄마, 나 효도자지?" (한국말이 어색한 거니)

"어 너 효자 맞아. 효자야." 

이렇게 너와 나는 오랜만에 행복하고 따뜻하고 편안한, 그런 완벽한 오후를 보냈다.  




한국으로 돌아가는 가족들이 있어서 저녁식사 초대를 했다. 며칠간 여러 마트를 전전하면서 혼자서 장을 보고, 음식을 하고 맞이하는 시간이다. 요리에 정성을 다하지만 잘하지 못하는 관계로 시간이 오래 걸리고, 꾀부리지 않고 해대느라 에너지를 많이 쏟는다. 사람들과의 만남이 기분 좋고 감사한 일이지만 일로만 따지면 저녁식사 초대는 힘들고 고된 일이긴 하다.


사진출처: 지인이 담아준 내 음식사진


음식을 먹으면서 담소를 나누던 중 관심사 이야기가 나왔다.

나의 요즘 관심사는 육아와 글쓰기이다. 가끔 육아에 잘 먹이기 위한 요리가 추가되는 정도이다.

사실 육아라고 읽고 쓰지만 욱아가 적절한 표현이고 그로 인해 매일을 참회와 반성으로 보내는 지라 남편도 사람들 앞에서 그것을 말할 수는 없었던 듯하다. 글쓰기도 익명을 전제로 하는 브런치에다 글을 쓰는 것이니 드러낼 수 없었을 것이라(그 외의 관심사는 주변적이다. 과거에는 재테크도 관심사였으나 지리적 특성과 자금 사정으로 관심을 좀 접어두었다).


그러면... 그렇다면... 그냥 가만히 있었어야 했다.

남의 편은 하지 말았어야 하는, 뱉지 말았어야 하는 멘트를 무념무상의 경지에 올라 내던지고 말았다.

"우리 와이프는 아무 일도 안 해."

엥? 순간 모든 지인의 표정이 굳어지며 남의 편을 제외한 4명의 시선이 약속이나 한 듯 나에게 쏠렸다. 

"형, 그 멘트는 지금 아닌 거 같아요."라고 속삭이는 분도 계셨다.

그제야 남의 편은 말 한마디로 천냥빚을 지고 말았다는 것을 눈치챘나 보다. 

"아니 그게 아니고, 요새... 우리 와이프가 원래 재테크에 관심이 많았는데, 여기서는 아무것도 안 한다는 말이야."라고 주절주절 말했지만 너와 나는 이미 골든 게이트 브리지 거리만큼 이쪽과 저쪽에 서 있다. 


그날 우리 집에는 귀하게 천냥을 갚은 이도 있었고,

천냥을 쉬이 잃은 자도 있었다.  그래서 넌 남의 편인가 보다.



# 현재 남의 편 # 미래의 남의 편

 



매거진의 이전글 Life is NOT fair.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