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만 하루 쉬는 날이다. 느지막이 일어난 아이는 기분 좋게 만화를 뒤척이면서 하루를 시작했다.
그러면서 내일 여행 가니까 미리 연산까지 다 해놓겠다며 한턱 쏘듯이 말한다.
거기까지 너도 나도 행복했다.
자발적으로 숙제를 미리 해놓겠다니 엉덩이를 팡팡 해줄 만큼 대견했다. 난 작은 것에 감사하기로 작정한 엄마니까...
그런데 학원 숙제가 이메일로 와있는 것을 본 뒤부터 끙끙대기 시작한다.
울부짖는다.
나는 그 소리가 힘겹다. 살짝 울먹이면서 뭔가 끙끙대면서 말을 하다 말다 하면서 하기 싫다고 하는 아이의 말과 행동이 견뎌내기가 힘들다.
양이 많아서도 아니고 어려워서도 아닌걸 너도 나도 안다.
하기 싫고 귀찮을 뿐이다.
잠깐 점심을 밖에서 먹고 돌아와서도 아이는 이유를 바꿔가면서 짜증을 내느라 시간을 허비했다.
결단이 필요했다.
차분하게 그만하는 게 좋을 거 같다고 했다. 공부든 숙제든 마음이 하는 일인데, 짜증을 계속내면서 억지로 하는 것은 자기 것이 될 수 없다. 그런 태도는 소중한 시간을 낭비하고 우리의 관계를 나쁘게 하는 일이라고도 설명했다. 더불어 학생으로 해야 할 일이 숙제인 것이고 오늘 할 일이 많아진 것은 내일 하지 않기 위함이지, 오늘 공부나 숙제를 더 하는 것이 아니라고 잔소리했다. 공부를 좋아하기는 힘들지만 잘할 수는 있는 것이고, 공부하기를 싫어할 수 있지만 못하는 것과는 다르다는 것을 구별해 주었다.
골을 내면서 샤워를 하러 가더니 돌아온 아이가
"엄마, 고마워요." 한다.
그리고는 책상에 앉아서 마저 남은 할 일을 시작했다. 20분 남짓 뒤 띠리링 하고 이메일이 도착했다.
오늘 나는 가슴 뭉클한 작은 기적을 경험했다.
아이의 짜증을 하루 종일 견뎌내면서 차분하게 아이에게 말한 것이 아이에게는 자기를 기다려주고 사랑해 주는 엄마의 노력으로 받아들여졌나 보다.
본능을 거슬러 기다려주고 믿어주고 아이의 입장에서 잠시 서보았을 뿐인데, 아이는 고마움을 느꼈다. 나도 조절할 수 있는 엄마구나하는 효능감을 느꼈다.
그렇게 오늘, 아이와 나는 성장하고 배웠다.
그리고 감사했다.
그러나 저런 일이 있은 후, 여행 가서도 열심히 놀았고 그 후로 감기로 며칠간 고생도 했다. 지나온 열흘 남짓 해야 할 일이 늘어나지도 않았고, 어려워지지도 않았다. 오히려 하던 것을 조금씩 조절하고 아프다는 이유로 과하게 하지도 않았다. 하지만 여전히 해야 하는 본인의 일을 완수해야 함에 있어 짜증을 내고 있다.
아직은 인정하고 싶지 않은데, 사춘기에 들어간 것인지, 공부에 대한 정서가 나빠진 것은 아닌지... 걱정을 버려야 할 것 제1순위로 꼽는다는 '자녀교육 절대공식'을 읽고 있으면서도 참...
#사진출처: 픽사베이, 내 이메일 캡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