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남편의 권리를 주장하고 싶다!
글을 썼다, 지웠다, 썼다, 지웠다 했지만, 결국 한번 터진 손가락을 멈출 방법을 모르겠다.
"저.. 여보, 나 이거 먹어도 돼?"
"배달음식은 안 먹기로 했잖아."
"그랬는데.."
"에이, 여보! 지금까지 3주 내내 잘 지켰는데.. 너무 힘들어?"
"그게 아니고, 엄마가.."
"어머님이?"
어머님 얘기가 나오자마자 신경이 곤두섰다.
남편을 맡기고 그렇게 부탁을 드려도 늘 '좋은 취지'로 흔드시는 게, 늘 어머님이다.
"여보.. 아직 자기 암 환자야. 다른 집들은 좋은 거 더 못 먹여서 안달인데.."
"알지.. 근데, 엄마가 식단이 매일 똑같아서 지겹다고.. 배달시켜 달라고 하셔서.."
다이어트해 본 사람은 다 알지 않나?
식단조절 할 때 보는 배달어플이 얼마나 괴로운지.
정말 이럴 때마다 어머님께 서운하고, 화나고, 미워서
'고부간의 이야기'를 주제로 글 쓰는 걸 멈춰야지 싶었던 마음이 사라진다.
어머님도 몇십 년을 당뇨를 앓고 계신다.
건강식으로 챙겨 먹는데도 자꾸만 심해지기만 하신다며, 병원 다녀오는 날은 늘 전화로 나이 듦에 대한 서러움을 말하셨다.
그리고 그 레퍼토리엔 언제나 아픈 어머님을 돌보느라 힘들어하는 내 남편과 시아버님에 대한 미안함도 함께였다.
남편이 아프기 전까지만 해도 나는 어머님의 그 안타까운 사연에 공감했고, 안쓰러웠고, 지켜드리고 싶었다.
분명 그건 딸 까진 아니어도 '딸 같은'은 되는 마음이었다.
그래서 어머님 건강검진 표가 나올 때마다 어머님 전용 '영양제 쇼퍼'를 자처했다.
어머님이 카톡으로 보내시는 결과표를 보며, 부족한 영양소나 필요한 영양소들을 체크해, 프랑스에서 파는 영양제들 중 가장 좋은 것들로만 선별하여 어머님 건강상태에 맞춰 보내드렸다.
그때마다 어머님은 '아휴, 이런 거 괜찮아. 미안한데 뭐 하러.' 라며 고마움을 표현해 주셨고,
그때마다 나는 뿌듯해했다.
'딸 같은 며느리' 였으니까.
그런데 남편이 아프고는 그게 잘 안된다.
힘들게 공부해서 이렇게 먹어보자 하고 식단을 정해주면, 어머님이 저렇게 한 번씩 흔드신다.
이것저것 잘 먹으면 되지, 너무 까탈 부려도 못쓴다며...
아무리 머리로는, 한 번씩 다른 거 먹는다고 남편 암이 심해지는 게 아니라는 건 알지만..!
그래도 안 좋은 걸 굳이 먹이고 싶은 보호자가 어딨겠나.
브런치를 보면, 삼시세끼 건강식으로 챙겨 먹이는 보호자들도 많고, 어떤 분은 유기농으로 직접 키워 먹이기까지도 한다는데.. 속이 상할 때마다, 속 좁은 나는 자꾸만 삐딱해진다.
남편 아프기 전에는 주말마다 전화를 드렸다.
일하는 며느리니, 일주일에 한 번이면 된다고 너그러이(?) 이해해 주신 덕분이었다.
나는 매주, 반찬은 뭘 챙겨줬는지, 동지엔 팥죽을 해줬는지, 보름엔 보름나물과 견과류를 챙겨줬는지, 복 날엔 보양식을 해 먹였는지 등을 어머님께 검사를 받았다.
머나먼 타국에서 일하는 며느리여도 그때그때 맞춰서 해 먹이기를 바라셨으니까.
그럴 때마다 내심 불편하고 서운하긴 했지만, 귀하게 큰 외동아들 내가 데려와서 그렇구나 하며 감수했다.
남편도 해 먹은 것처럼만 전화로 말씀드리면 되니 신경 쓰지 말라고 본인이 나서서 둘러 둘러 거짓말을 해줬다. (아마 그래서 괜찮았던걸 지도?)
그래서 남편을 어머님께 맡기고 올 때, 걱정이 없었다.
내가 챙겼던 것 보다 더 잘 챙겨주시리라 믿었으니까.
그런데, 그렇게 귀하게 키운 외동아들이라던 남편은 시댁에선 신데렐라가 되었다.
스스로 야채를 손질해 밥을 차려먹고, 설거지, 빨래, 청소도 다 본인이 한다.
게다가 어머님, 아버님 식사며, 자잘한 심부름이며 하는 것들을 다 챙기는 것까지.
남편 몫이 아닌 일이 없다.
세상에 이렇게 부지런한 암 환자는 처음이다 정말!
수술 잘 끝났으면 된 거라고, 강아지 간식 좀 사다 달라며 눈 오고 추운 날 시키시는 아버님도,
음식으로 자꾸만 속 썩이는 어머님도
아무리 노력하고, 이해해보려 해 봐도 미운 마음이 가시질 않는다.
그러다 보면, 어머님은 오빠 아니어도 아버님이 계신다고 저러시는 건가? 하는 못된 마음까지도 든다.
"나 배달 왔다. 엄마 챙겨서 차려주고 올게."
"..."
"여보 화내지 말고.. 엄마 챙기고 나서 나는 그냥 내 식단 먹을게, 나 괜찮아."
"..."
"나 밥 먹고 올게, 응?"
"알았어, 다녀와:)"
배달이 왔다는 남편 카톡에, 좋게 대답이 안 나가 대꾸를 못했다.
눈치 빠른 남편은 속상해 있는 내 마음을 이미 눈치채고 미안해 어쩔 줄 몰라한다.
행여나 스트레스받을까 걱정돼 이내 못 이기고 ' :) ' 웃음 표시까지 붙여 보냈다.
정말 이럴 때마다 어머님께 하고 싶은 말을 꾹꾹 눌러 담아야 하는 사회 분위기도 억울하다.
어머님이 아들 권리를 주장하며 전화를 하셨던 것 처럼
나도 내 남편에 대한 권리를 주장하며, 소중히 대해달라 강력히 말씀드리고 싶지만,
며느리인 나는 입을 열 수가 없다.
정말이지 이럴 때마다, 결혼을 하는 모든 고부들 사이에 남편의 권리이전 계약서 같은 게 있었으면 좋겠다.
'귀하의 아들 ***은, ***에게 권리가 이전되었습니다.'를 명시해서 말이다.
그러면 이 세상 고부 갈등이 좀 줄지 않으려나?
얼른 남편을 데려와야겠다.
더 미운 며느리가 되지 않으려면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