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귀가 되줘서 고마워
"올해 벚꽃이 일찍 핀다더라?"
"어짜피 한국에 나 혼잔데, 괜찮아"
"우리 벚꽃이랑 인연이 깊잖아"
".... 우리가?"
"자기가 7년을 기다렸다고 사귀자고 손잡았던 날, 석촌호수에 벚꽃이 흐드러지게 피어있었어. 기억안나?"
"..."
"그리고 그 날 저녁에 비가 엄청 와서, 다음날 부턴 벚꽃을 볼 수가 없었지"
"..."
"그래서 오빠가 막 나한테, 아슬아슬했다고, 하루만 늦었어도 고백 못할 뻔 했다고 웃었잖아"
"미안해.. 나 뭔가 흐릿하긴 한데.. 머리가 아파"
"괜찮아 괜찮아. 수술하고 나면 그럴수 있어."
"나 바보 됐나보다. 에피 속상할텐데.. 미안해"
"안속상해! 내가 다 기억하니까 괜찮아. 그냥 옛날 이야기처럼 들으면 돼 오빠는!"
"... 미안해"
"진짜 괜찮아. 나 머리 좋잖아. 내가 다 기억하니까 오빤 안해도 돼"
오빠 너는 오늘도 나에게 '미안해'라고 한다.
대학원에서 의학박사 학위를 받고, 시험으로 병역특례까지 통과했던 나의 너가,
수술 후 가장 많이 한 말이 '미안해' 라니.
크게 잘라낸 뇌로 인해, 잃은 기억들이 많은 탓이겠지.
처음에 쓰러지고 말이 어눌해졌을 때,
갑자기 나를 빤히 쳐다만 보고 내 이름은 부르지 못했을 때,
간단한 단어조차 떠올리기 힘들어 했을 때.
내 세계가 무너져내렸어.
오빠, 넌 나에게 자랑스러운 동문이었고,
내가 가장 존경하는 선배였고,
든든한 내 뒷배였다.
하지만, 괜찮아.
들리지 않는 내 귀를 당신이 10년간 대신 해 줬듯
나는 당신의 기억이 되어 줄게.
비가 내릴때마다 당신이 녹음해 들려줬던 빗소리에 내가 행복했듯
일기장처럼 나를 펼쳐보며 오빠 너가 행복했음 좋겠어.
내 귀가 되어준 너에게
나는 기억이 되어줄게.
그러니 우리 미안해 말고 감사하자.
서로 다른 몸이 아닌 한몸으로 견뎌보자.
딱 이렇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