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papeltina Feb 25. 2024

내가 기억이 되어줄게

내 귀가 되줘서 고마워

"올해 벚꽃이 일찍 핀다더라?"

"어짜피 한국에 나 혼잔데, 괜찮아"

"우리 벚꽃이랑 인연이 깊잖아"

".... 우리가?"

"자기가 7년을 기다렸다고 사귀자고 손잡았던 날, 석촌호수에 벚꽃이 흐드러지게 피어있었어. 기억안나?"

"..."

"그리고 그 날 저녁에 비가 엄청 와서, 다음날 부턴 벚꽃을 볼 수가 없었지"

"..."

"그래서 오빠가 막 나한테, 아슬아슬했다고, 하루만 늦었어도 고백 못할 뻔 했다고 웃었잖아"

"미안해.. 나 뭔가 흐릿하긴 한데.. 머리가 아파"

"괜찮아 괜찮아. 수술하고 나면 그럴수 있어."

"나 바보 됐나보다. 에피 속상할텐데.. 미안해"

"안속상해! 내가 다 기억하니까 괜찮아. 그냥 옛날 이야기처럼 들으면 돼 오빠는!"

"... 미안해"

"진짜 괜찮아. 나 머리 좋잖아. 내가 다 기억하니까 오빤 안해도 돼"




오빠 너는 오늘도 나에게 '미안해'라고 한다.

대학원에서 의학박사 학위를 받고, 시험으로 병역특례까지 통과했던 나의 너가,

수술 후 가장 많이 한 말이 '미안해' 라니.

크게 잘라낸 뇌로 인해, 잃은 기억들이 많은 탓이겠지.



처음에 쓰러지고 말이 어눌해졌을 때,

갑자기 나를 빤히 쳐다만 보고 내 이름은 부르지 못했을 때,

간단한 단어조차 떠올리기 힘들어 했을 때.

내 세계가 무너져내렸어.




오빠, 넌 나에게 자랑스러운 동문이었고,

내가 가장 존경하는 선배였고,

든든한 내 뒷배였다.




하지만, 괜찮아.

들리지 않는 내 귀를 당신이 10년간 대신 해 줬듯

나는 당신의 기억이 되어 줄게.


비가 내릴때마다 당신이 녹음해 들려줬던 빗소리에 내가 행복했듯

일기장처럼 나를 펼쳐보며 오빠 너가 행복했음 좋겠어.



내 귀가 되어준 너에게

나는 기억이 되어줄게.


그러니 우리 미안해 말고 감사하자.

서로 다른 몸이 아닌 한몸으로 견뎌보자.

딱 이렇게.



 


작가의 이전글 브런치 스토리 조회수 알고리즘 파헤치기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