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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AN Nov 23. 2023

너와의 마지막 시간이 우리의 이별은 아닐 거야.

촛불을 끄고

길었던 우리의 시간

마침표를 찍었다.




2020년 4월 어느 봄날.

언어치료를 끝낸 후 내가 기다리고 있던 놀이치료실 문을 조심스레 열고 얼굴을 삐쭉 내민 아이.

6시윤이(가명) 장난기 가득 담긴 동그란 눈에 나이와는 왠지 맞지 않게 두꺼운 안경을 낀 남자아이였다.

억양 없이 반복적인 패턴의 말투, 타인과의 언어적, 비언어적 의사소통이 어려운 상태, 눈맞춤이 간헐적으로 이뤄지고, 집중력이 낮은 모습은 진단결과를 굳이 보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지적장애 3급.


처음부터 알았다. 기나긴 시간싸움이 될 것임을. 그리고 무엇보다 든든한 지원군이 돼야 할 부모와의 협력이 중요했다. 다행히 아이의 어머니는 시윤이가 남들과 다름을 일찍부터 알았고 대학병원 문을 두드리며 발 빠르게 대응하고 있던터. 하지만 시윤이의 아버지는 아이의 장애를 받아들이고 이해하는 마음의 문이 반대로 굳게 닫혀있는 상태였다.



새로운 장소에서 낯선 타인과 관계를 맺고 친밀감을 쌓아가면서 익숙해지는 데는 누구에게나 자신만의 속도와 시간이 필요하다. 하지만 시윤이같은 경우 자기 세계가 짙고 경계가 높기 때문에 보통의 아이들보다 훨씬 더 오래 걸린다.


그렇게 일주일에 한 번씩 같은 시간마다 놀이치료실에서 만나기 시작한 우리.

처음부터 1년 동안 한 가지 놀이만  반복해 주구장창 하려는 아이와 매시간 조금씩 다른 놀이와 그 안에서 생각대화(질문하고 생각하고 응답하기)를 이어가 보려는 나와의 줄다리기가 시작되었다.


"목적지에 도착했습니다. 목적지에 도착했습니다.

안내를 종료합니다. 안내를 종료합니다."

 

차량내비게이션 기계음성에 꽂힌 시윤인 자동차 주차장 놀이를 하고 싶다고 미니카를 들고 주차타워 놀잇감의 입구문을 열고 닫고를 반복하며 혼자놀이 속 혼잣말을 무한반복 1년 가까이했다.

(1년이 훨씬 지난 지금도 시윤이를 떠올릴 때면 그 특유의 내비게이션 음성이 내 귓가를 맴돌곤 한다.)

그 놀이 안에서는 다른 형태의 어떤 작은 침범도 결코 허용하지 않던 초기 시기를 지나 점차 다른 모양 미니카를 허락하고 주유소 놀이형태로 이어지거나 자동차 경주를 함께 해보는 것이 가능 해질 때쯤 시윤이는 내가 권한 보드게임에 하나둘 관심을 갖게 된다.





초등입학전후쯤엔 아이의 장애를 담임선생님께 오픈할지 말지, 한다면 어느 정도 해야 할지(선입견에 대한 걱정도 함께), 도움반 수업을 신청해야 할지 등을 심각하게 고민하던 시윤이 어머니. 1학년을 지나오면서 수업시간에 시도 때도 없이 손을 들거나 친구들이 좋아서 마냥 쫓아다니며 손가락으로 쿡쿡 찌르는 시윤이의 돌발행동과 친구들의 거부반응등으로 걱정들은 점점 하나둘씩 불어나고 있었다.


만나는 모든 이가 시윤이의 장애에 대한 이해를 해주길 바라거나 기대할 순 없다. 특히 친구관계란 알짤 없이 조금도 봐주지 않은 사이기에 더더욱 시윤이 마음엔 크고 작은 상처와 스트레스가 날마다 차곡차곡 늘어났고 그만큼 삐뚤어지거나 이상행동(틱증상)으로 나타나곤 했다. 하지만 더 큰 문제는 이제부터 시작인 것을 알까.




이삼십 대 시기에 장애인시설에서의  경력은 장애아동의 출산부터 유아기, 아동기를 거쳐 청소년과 성인기 등 전 생애에 걸쳐 장애아이들이 우리나라에서 어떤 모습으로 커가고 흘러갈지를 큰 틀에서 파악하고 볼 수 있는 현실적인 시야를 갖게 해 주었다.

보통 대부분의 장애아 부모처럼 시윤이어머니 또한 지금까지의 아이모습만 파악하고 현재문제에 포커스가 맞춰져 있지만 사실 한 발짝의 가까운 미래에 모습도 알지 못할 뿐 아니라 향후 벌어질 갈등상황을 막연히 그려볼 뿐이다. 그래서 앞서 나와 비슷한 길을 이미 걸어본 선배 부모나 같은 장애아이를 키우는 커뮤니티 또는 시설이 모여있는 곳에서 정보를 얻거나 보고 배우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시윤이와의 시간은 국가지원 바우처를 연장까지 해 몽땅 써버렸기에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종결의 시간이 점차 다가오고 있었다. 키고 몸도 어느새 훌쩍 커버린 시윤이. 6살 꼬마는 9살의 초등학생으로 되었지만 남들이 모두 걷고 있는 진도를 따라가지 못하고 매우 천천히 자신의 속도로만 자라고 있었다.





초등2학년이 되자 학습격차는 눈에 띄게 늘어났고 그나마 착하고 순진했던 친구들도 다 곁을 떠나 시윤이는 정말 철저히 혼자가 되어가고 있었다. 올 것이 온 것이다. 부모상담시간에 강조하고 강조했지만 9살 아이에겐 역시 너무나 빨리 와버린 믿고 싶지 않은 현실이다.


처음으로 책을 시윤이의 친구로 만들어주기 위한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심심할 때, 내 곁에 아무도 없을 때, 평생 언제든 쉽게 가방에게 꺼내 볼 수 있는 친구 같은 책. 바로 책습관 만들기.

남은 두 달여 기간 동안 시윤이 어머니와 의논해 아이가 원하는 책으로 하루 15분씩 독서시간을 매일 가져 보기로 약속했다.

물론 초반엔 일주일 전부 성공하지 못하더라도 시간을 5분밖에 못했더라도 스티커를 붙여주고 선물을 주었다.

시윤이와 알록달록 주간 계획표를 만들고 아이가 좋아하는 책을 골라 읽어주며 아이도 소리 내 읽거나 그림도 보며 내용을 파악해 보는 등의 책 보는 방법을 반복해 알려주었다.

매시간 이야기해 줬지만 시윤이는 왜 이 책습관 만들기를 자신이 해야 하는지도 솔직히 이해하지 못한 채 글을 읽기에도 너무 바빠 내용을 파악하는 것은 한 달 후 겨우 가능해졌다.(그림이 60% 이상인 책이지만 쉽지 않았다)

3번째 보상물을 주며 칭찬과 격려를 아낌없이 해주었고 근근이 이어가며 그렇게 우리의 종결일이 결국 다가왔다.






마지막 종결날엔 케이크빵을 준비해 생크림을 짤주머니에 넣어 짜며 덧바르고 윗부분을 초콜릿과 젤리로 알록달록 데코 해 미니케이크를 함께 만들어보는 쫑파티를 해주었다. 그리고 우리의 모든 시간들을 마무리하며 촛불을 켰고 각자 소원을 마음으로 빌고 시윤이가 껐다.

시윤이가 말했다.


이제 여기 오면 선생님이 없는 거예요?

아니. 선생님은 언제나 이 자리에 있을 거야. 보고 싶을 때 우린 언제든 만날 수 있어.

그때까지 책은 꼭 우리 약속대로 네 곁에 친구처럼 붙여놓고 봐야 해. 알겠지?


자신이 오지 않고 수업을 더 이상 하지 않는다는 것을 다 이해하기도 힘든 시윤이.






수많은 아이들을 만나고 안녕을 말한다. 때론 뿌듯하게 문제가 어느 정도 소거되고 시원하게 종결할 때도 있지만 사실 그렇지 못한 케이스가 훨씬 더 많다. 시윤이의 경우는 어쩌면 평생 부모와 아이를 도와줄 곁에 누군가가 필요하다. 그래서 시원하게 웃으며 흔쾌히 보내주지 못하는 케이스다.

시윤이어머니는 당연히 우린 다시 만날 거라며 선생님 조만간 또 연락하겠다고 그렇게 마지막 말을 남기셨다.


시윤이가 어떤 모습으로 사춘기와 청소년기를 거쳐 성인이 될지 감히 상상해 본다.

어쩌면 평생의 시윤이 소원은 친구 한 명 만드는 것이 될지도 모른다. 조금 더 아이를 따뜻하게 안아줄걸이란 아쉬움이 남았다.


내가 맘속으로 시윤이와 함께 빌었던 소원은.

선생님은 널 항상 응원할게. 건강한 모습으로 우리 또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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