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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AN Jan 05. 2024

아침 7시에 열두 살 아들과 나눈 대화

진화과정중

"엄마가 틀렸다고 지적하니까 너무 기분이 나쁘고 화가 나요.

그냥 그 문제를 다시 한번 더 생각해 볼래?

다시 한 번 더 봐.

라고 이렇게 말해주세요."


너무 화가 나서 빨간 화산의 용암같이 하늘위로 솟구쳤던 내 마음은 그 순간 찬물을 확 끼얹은 듯 바닥으로 떨어져 식어버렸고, 말문은 턱 막혀버렸다.


맞는 말이었다.

돌이켜 생각해 보니 난 아이에게 지금까지 그랬던 것이다. 오늘 아침에도 어김없이 넌 절댓값을 아직 이해 못 한 거 같네. 이 문제 틀렸어.라고. 






아들이 아침형 인간이라 같이 6시 반에 일어나주고, 레몬차를 주문하면 방으로 타다 주고, 수학숙제를 하다 sos를 청하면 당연히 달려가 기꺼이 성심성의껏 도움을 주려고 함께 머리 맞대고 고민해 주었다.

그리고 아들에겐 당연히 그런 엄마에게 감사하게 생각해야지라고만 생각했다. 그래서 가끔 아들이 힘든 수학문제에서 막혀 불렀을 때, 도움을 주려고 한마디 하면 그렇게 짜증을 내고 화가 나서 씩씩거리는 말투와 눈빛, 행동에 나도 같이 들썩들썩 감정이 롤로코스트를 탔고 이해도 용서도 안 됐다.


2년 전부터였다.

수학문제를 풀 때마다 아이와의 전쟁이 시작되었다. 그것은 정말 자존심 때문일까, 문제 난이도가 맞지 않아 그런 걸까, 숙제 양이 많나, 그것도 아니면 그냥 고 그만해. 끝. 그냥 나랑 이건 하지 말자가 아이와 내 사이를 더 나쁘게 만들지 않겠다란 결론으로만 결국엔 도달하곤 했다.

그러면서도 아이는 다음날 다시 풀면 또 잘 풀리거나 결국 한 문제를 한 시간 고민하다 학원으로 가져가기도 했다.



숱한 시행착오와 경험의 시간들 속에 이제 아이는 자신의 감정을 들여다보고 조금은 컨트롤하게 되었으며, 적당한 중간쯤 어딘가의 합의점도 찾아 자신의 의사를 명확히 말할 수 있게 된 그런 나이가 된 것이다.

깜짝 놀랐다. 아이의 입에서 이런 말이 나올 줄은 상상도 못 했으니까.

순간 당황해 말문이 막혔다가 겨우 한 번 더 확인하다시피 꺼낸 말.

아., 내가 너한테 지금까지 틀렸다고 그렇게 말했니?

응. 엄마가 그랬어.

아.

깊은 마음속 어딘가에서 진심 아들에게 미안했다.

하지만 그 말은 하지 못한 채.

어어. 엄마가 이제부터 그렇게 말할게. 다시 한번 그 문제 볼래?라고.


그렇게 화가 났던 마음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혼자 돌아서서 몇 번을 되내며 난 비로소 깨달았다.

아들은 이제 성숙했고 난 몰랐던 사실을.


굳게 굳게 믿고 있던 내가 알던 사실이 조금씩 그 경계가 변화되고 모양이 달라지며 아들은 그렇게 점점 진화되어 가는 중인데 말이다.


그렇게 2024년 1월 5일 오늘.

사춘기 초입 모습으로 꽤나 엄마를 긴장하게 만들었던  아들의 초등5학년은 빠이했다. 그리고 초등마지막 학년, 6학년으로 가기 위한 긴긴 여정의 겨울방학이 다시 시작되었다.



(그림출처:pixbay.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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