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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AY 케이 Feb 04. 2023

유학일기 #1:
JP 모건 뉴욕본사 인턴 합격 썰


12월 13일, 나는 침대 위에서 이틀 뒤 있을 기말고사를 준비하고 있었다. 


오후 1시쯤 갑자기 전화가 왔다. SPAM RISK 전화였고 나는 '아, 또 스팸이구만' 하고 전화를 끝까지 받지 않았다. 그리고 20분쯤 뒤에 이메일을 확인했는데, INTERVIEW RESULTS라는 제목의 메일이 와있었다. 

메일 속에는 recruiter이 결과를 알려주고 싶으니 언제 전화를 할 수 있냐는 내용이 담겨 있었다. 나는 지금부터 언제든지 가능하다는 답장을 보냈고, 메일을 보내자마자 10분 뒤에 '이 번호로 전화가 올 거야'라고 답장을 하셨다. 뭔가 번호가 익숙해서 핸드폰을 다시 확인해보니 바로 아까 스팸이라고 생각했던 그 번호였다. ㅎㅎ 


전화가 오기 전 그 10분 동안 정말 많은 일을 했다. Recruiter이 전화를 준다는 건 보통 합격 소식을 전하기 위해서인지 아니면 전화로 불합격 통보를 하기도 하는지도 알아보고, JP 모건에서 전화를 받은 경험이 있는 사람들의 경험담도 열심히 알아봤다. 대체적으로 전화가 온다는 것은 합격일 가능성이 높다는 검색 결과를 보자마자 갑자기 심장이 너무 빨리 뛰면서 가만히 앉아있을 수가 없었다. 


전화가 왔다. 합격이었고, 그 말을 듣자마자 핸드폰을 들고 있는 손이 달달 떨리면서 recruiter 분이 하시는 얘기에 집중하기가 너무 어려웠다. 대충 기억나는 건 내 직업이 무엇이 될 것이며, 나는 뉴욕에서 회사를 다니게 될 거고 페이는 어느 정도 될 것이다라는 내용이었다. 마지막에 질문이 있느냐고 물어봤는데, 내가 합격했다는 것이 믿기지가 않아서, '정말 내가 붙은 게 맞나요?'라는 질문을 하고 싶었는데, 차마 말이 나오질 않았다. 


그 짧은 5분의 통화가 끝나자마자 다리가 풀려서 바닥에 주저앉았다. 너무 현실 같지가 않아서 내가 방금 그분이랑 통화한 게 맞는 건지 다시 통화기록을 확인했다. 분명히 통화도 하고 합격이라는 얘기를 들었다는 게 확실한데도 얼떨떨한 기분이 사라지지가 않았다. 


미국에는 3학년이 되면 취업을 목표로 하는 사람들은 보통 첫 학기에 인턴쉽 지원을 집중적으로 한다. 내 주변친구들은 한 학기 동안 여러 회사의 면접을 몰아서 보느라 학교 생활은 완전 뒷전이 되었고, 대학원이 목표인 나에게는 학교생활을 잘하는 것이 중요했기에 할 수 없이 인턴 취업은 거의 포기하고 '인터뷰 기회가 오면 경험 삼아해 보는 거지' 하는 마음으로 몇 개의 회사에만 지원했다. 


인터뷰 기회는 JP 모건에서만 왔다. 1차 시험을 보고 한 달 남짓 뒤에 갑자기 Superday에 초대받았다는 연락을 받았다. 은행 인턴쉽에 대해서 아무것도 모르던 상태여서 Superday가 무슨 설명회 아니면 네트워킹 이벤트인 줄 알았는데 구글에 알아보니 final interview였다. 심지어 내가 지원하지도 않은 분야에서 인터뷰를 하자고 연락이 왔다. 난 그냥 Market Analyst로 지원을 했는데, 내가 더 하고 싶었던 Quant Research 분야 인터뷰였다. 준비할 시간은 1주일 남짓이었고, 한 번도 final interview를 경험해보지 못한 나는 주변에 인턴쉽에 합격한 친구들에게 모두 연락해서 도대체 이런 인터뷰는 어떤 걸 물어보냐, 시간이 별로 없는 상황에서는 어떤 걸 우선순위로 준비를 하냐, 혹시 비슷한 인터뷰를 본 친구가 있냐 등등 질문 폭격을 퍼부었다. 지금 생각해보니 친구들한테 미안하면서 너무 고맙다. 


드디어 인터뷰날, 혹시나 인터뷰를 할 수 있으니까라고 하며 챙겼던 줄무늬 셔츠를 입고서 떨리는 마음으로 책상에 앉았다. 잘 보이는 곳에 '이미 난 JP 모건에 다니고 있는 사람이다'라는 말이 쓰인 포스트잇을 붙여놓고 줌 미팅에 들어갔다. 첫 인터뷰는 오전 9시였고, finalist 10명을 한 명씩 면접관과 매칭하여 각자 다른 방으로 배정을 해주었다. 그런데 무슨 일인지 나만 매칭이 안되고 방안에 남겨졌다. Recruiter이 오늘 나를 면접하실 분이 아파서 회사에 나오질 않으셨다고 했고, 나는 오늘 예정되었던 3개의 인터뷰 중 2개만 하고 추후에 마지막 하나를 하게 될 거라고 그러셨다. 다음 인터뷰 로테이션까지 50분 정도를 그냥 기다리고 있어야 하는 것이었다. 뭔가 그 시간 동안 더 많은 준비를 할 수 있을 것 같았는데, 당황을 많이 했는지 아무것도 읽히지가 않았다.


첫 인터뷰의 시간이 오고야 말았고, 그전까지는 심호흡을 차분히 하면서 긴장을 낮추는데 노력을 많이 했는데, 이제는 진짜라는 생각에 그 침착함이 순식간에 깨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유로운 미소를 얼굴에 장착하고 밝고 자신 있게 인사를 했다. 첫 번째 면접관은 누가 봐도 경력이 엄청 많은 사람 같아 보였고, 본인 소개를 하셨는데 금융 지식이 많이 부족한 나에게는 외계어나 다름없었다. 정말 하나도 알아듣지를 못했다. 그다음에 내 resume에 적혀있는 지난여름 인턴쉽에 대해서 질문을 하셨다. 그 인턴쉽에 대해서는 묻지 않으셨으면 좋겠다 하는 생각을 했다. 지난여름에는 내가 도대체 무엇을 한 건지 아직도 잘 이해가 안 되는데, 내가 참여했던 프로젝트에 대해서 설명을 하려니 정말 쉽지가 않았다. 


두 번째 면접관은 2-3분 정도 늦게 인터뷰 룸으로 들어오셨다. 이분은 왠지 너무 인터뷰를 하고 싶지 않은데 하고 있는 듯한 느낌을 너무 티가 나게 풍기셨던 것 같다. 인터뷰 시작부터 끝이 날 때까지 어색하고 불편한 분위기가 쭉 지속되었고, 식은땀이 날 정도로 힘들었던 인터뷰였던 것 같다. 이분은 전혀 나에게 관심도 없으셨고, 나에 대해서 좋은 평가를 해주실까 의문이 드는 상황에서 나는 그분의 태도를 전혀 의식 못한 척 세상 밝고 적극적인 태도로 인터뷰에 최선을 다해야 했기 때문이다. 그래서인지 대답을 제대로 못한 문제도 몇 개 있었고, 아무튼 너무 찝찝했던 50분이었다.


사실 이 두 면접을 보고 나서는, '첫 인터뷰인데 내가 합격까지 바라는 건 너무 욕심이겠지?' 하는 생각이 바로 들었다. 제대로 대답을 못한 질문도 있었고, 내가 확실히 면접관을 impress 시켰다는 느낌이 하나도 없었다. '살면서 처음 한 파이널 라운드 인터뷰인데, 어떻게 완벽하게 잘할 수 있었겠어. 괜히 기대를 했네. 다른 친구들처럼 인턴쉽 하나 따려고 내가 학기 내내 인터뷰를 보러 다닌 것도 아니고, 준비를 따로 열심히 한 것도 아닌데, 너무 욕심낸 것 같다.' 하는 목소리만 머릿속을 맴돌았고, 기대하고 계획했던 건 아니지만 나도 인턴쉽을 딸 수 있겠구나 생각했던 것도 굳이 왜 그랬나 싶었다.


그로부터 일주일 뒤, 면접관 한분이 아프셔서 못했던 하나 남은 인터뷰를 하게 되었다. 이번에는 저번과 좀 다르게 내가 어떤 분과 인터뷰를 하게 될지 알려주셨다. 그분을 인터넷에 검색해봤는데 executive, 즉 내가 가려고 하는 부서의 대빵 느낌이다. 무려 JP모건에서 20년이나 근무하신 분이라 내가 몇 마디만 뱉으면 내 실력과 가능성이 다 읽힐 것 같다는 무서운 기분이 들었다. 앞전 두 개의 인터뷰가 만족스럽지 못해서 이번에는 진짜 잘해야 한다는 생각이 가득했는데, 그분과 처음 인사를 나누자마자 긴장이 다 풀렸다. 상상 이상으로 친절하게 대해 주시고, 분위기가 무거워질 겨를이 없었다. 게다가 너무 놀랐고 운이 좋았다고 생각했던 건 내가 학교에서 하는 diversity 관련 리서치에 굉장히 관심을 가져주셨다는 것이다. 앞전 두 인터뷰에서는 diversity에 관련된 활동이 전혀 나의 인턴쉽과 관련이 없기에 그 활동에 대해서는 아무 질문도 묻지 않으셨는데, 이분은 회사 내에서 diversity 관련 일을 하고 계시던 분이라 내 연구에 관심을 가져주신 것이다. 이건 정말 운이 좋았던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이런 큰 은행에서, 인턴쉽과 전혀 무관한 나의 연구 분야에 관심을 보여주실 분이 몇이나 될까 싶다. 마지막 인터뷰 동안에는 그 분과 뭔가 좋은 커넥션을 맺었다고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앞전 인터뷰들은 so so 했지만 이번에는 그래도 확실히 좋은 인상을 남긴 것 같았다. 나중에 인턴쉽이 시작하면 이분은 꼭 한번 뵈러 가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퀀트 분야에 여학생들을 멘토링하시는 프로그램도 진행하신다고 하는데, 퀀트 산업에서 커리어를 쌓고 싶은 내게는 이분과의 네트워크가 참 중요한 것 같다. 


인터뷰 과정을 돌아보면서 나는 파이널 인터뷰 한번 만에 합격을 받은 게 정말 감사하다는 생각을 했다. 이 과정을 여러 번 겪고, 불합격 소식도 여럿 받으면서 결국에 하나를 따내는 그런 상황이었다면 너무 스트레스를 많이 받지 않았을까? 나는 학부를 시작하면서 대학원 입시를 준비하겠다는 그런 일편단심의 마음으로 이만큼 달려왔는데, 이렇게 취업이라는 추가적인 옵션이 생겨서 너무 기쁘다. 남들은 다 취업을 준비할 때, '아 나는 대학원 준비해서 취업 준비는 깔끔하게 포기한다'라고 다짐했고, 대학원의 길이 아니면 안 되는 것처럼 생각할 때가 참 많았다. 그래서인지 학교 공부가 힘들고 결과물이 좋지 않으면 정말 낙담하고, 만약 내가 대학원을 잘 못 가면 어떡하나 하는 생각에 너무 괴로웠었다. 그런 내 인생에 이번 인턴쉽 합격은 정말 예상치 못한 선물이다. 


인생은 항상 계획대로만 흘러가진 않는다. 나는 내 노력만 충분하다면 내가 세운 계획대로 언제든지 목표를 달성할 수 있다고 믿었는데, 최근 그 생각이 사실이 아니라는 것을 배웠다. 내가 아무리 노력해도 안 되는 게 있다는 것도 알게 되었고, 내가 노력을 많이 하지 않았는데도 쉽게 되는 일들이 때로는 생긴다는 것 역시 알게 되었다. 내가 어떠한 방향성을 가지고 앞으로 나아가는 노력을 하는 것은 너무 중요하고 나의 역량을 쌓게 되는 것이지만, 항상 인생은 그 방향성대로만 나아가지는 않는다는 것을 받아들인다. 그리고 그 uncertainty를 환영한다. 불확실성이 두렵긴 하지만 불확실성이야말로 인생을 interesting 하게 만드는 가장 중요한 요소가 아닐까 싶다. 이번 인턴쉽 합격은 합격도 합격이지만 많은 깨달음을 얻고 인생에 대해서 더 깊은 insight를 가지게 된 계기 같아 열 배로 더 기쁜 것 같다. 그리고 꿈의 도시 뉴욕에서 10주간 살게 될 여름이 너무 기대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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