짜릿짜릿 몸이 떨리던 그날의 한시간
지난주 수요일, 오후 5시부터였다.
한 시간 내내 짜릿함이 주체를 못 했다.
그 느낌은 마치 세포 하나하나가
빨래 짜듯, 아나콘다가 먹이를 조이듯 강렬했다.
그리고 마음속에 드는 생각 하나,
'나 살아있구나...'
인생에는 좋은 날, 나쁜 날, 힘든 날, 기쁜 날
정말 여러 종류의 하루들을 살지만,
진정으로 살아있음을 느끼는 순간들은
몇 없다고 생각한다.
그날은 바로 내가 주축이 돼서 준비한
행사가 있는 날이었다.
올해 나는 학교에서의 친정, 통계학부의
홍보대사로 활동하고 있는데,
지금의 나는 4학년이지만, 1-2학년의 나였다면
꼭 갔을 법한, 도움이 될 것 같은
행사를 준비하고 싶다는 마음에서
시작된 프로젝트였다.
그러다 떠오른 게 인턴쉽 패널 행사였다.
우리 학부에서 인턴쉽을 경험해 본 선배들이
인턴쉽을 이제부터 준비하고 지원하려는 후배들에게
질문도 받고, 조언도 하는 그런 자리를 만들면 좋겠다 하는 생각이 들었다
돌이켜보면 내가 후배의 입장이었을 당시
이런 기회들은 너무 찾아보기 어려웠고,
그래서인지 나는 별다른 조언도 도움도 받지 못하고
맨땅에 헤딩하듯이 인턴쉽 지원 과정을 거쳤다.
어찌어찌해서 인턴쉽을 따내긴 했지만
정말 뭘 모르고 무지막지하게 덤볐으니까
노하우라고 할 것도 별로 없는 것 같다.
인턴쉽을 하면서도 여러 가지 깨달음이 있었는데,
이걸 누가 미리 알려줬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는
순간들이 적지 않았다.
그래서인지 후배들이 개인적으로 연락이 와서
"인턴쉽 관련해서 궁금한 게 많은데,
혹시 커피 같이 한번 마실 수 있을까요?"
하면 그들이 예상한 것보다 더 적극적으로 도와주곤 한다.
어쩔 수가 없더라.
대화를 하다 보면 그들에게서
나침반도 없이 헤매던 나의 모습이 보여서
온 마음을 다해 하나라도 더 알려주고 싶다.
그런데 그들의 입장을 생각해 보니
내가 아무래도 선배니까 후배의 입장에서
나에게 먼저 다가오는 게 어려울 수 있겠다 싶었고,
후배들이 선배들에게 자유롭게 질문하고
서로의 질문 속에서 더 많은 것을 배우고
의미 있는 네트워킹을 할 수 있는
자리가 있으면 너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근데 마침 내가 통계학부 홍보대사인 것이다.
그런 자리를 마련할 수 있는 예산, 장소, 연락망이
이미 내게 주어져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학부 어드바이저 선생님께서 네가 주최하고 싶은
행사 하나 생각해 와라 했을 때
주저하지 않고 인턴쉽 패널 행사를 들이밀었다.
다행히도 선생님이 내 아이디어를
몹시 지지해 주셨고, 그로부터 세 달 동안 이 행사를 준비하게 되었다.
우선 고학년 학생들에게 모두 이메일을 돌려
인턴쉽 경험이 있고, 이 경험을 나누고 싶다면
연락을 달라고 했는데
생각보다 많은 학생들이 지원을 해주었다.
지원자가 없을까 봐 우리가 두당 10만 원
상당의 선물을 준비했다는 얘기를 포함해서
그런 걸 지도 모르겠지만
시작부터 기대 이상이었다.
이런 행사를 연다고 홍보를 하자마자
학생들이 너도나도 참석 명단에 이름을 남겼고,
학교 안에 패널을 열만 한 장소를 수소문하다가
딱 적합한 장소를 내가 원하는 날에 예약도 할 수 있었다.
JP모건에서 내가 한 가지 배운 게 있다면
커리어와 관련된 professional 한 행사를
진행하고 준비하는 방법이다.
JP모건의 스케일을 학교에 그대로 가져올 수는 없지만
그래도 보고 들은 게 있어서
기억을 되살려 최대한 모방해 봤다.
패널리스트 이름표도 준비하고,
직접 참가하지 못하는 학생들을 위해서
화상으로 참여할 수 있도록 준비하고,
음식도 알레르기 프리, 글루텐 프리, 그리고 채식이
다 준비될 수 있도록 메뉴를 선정하고,
우리가 패널을 진행하는 방을 잘 찾아올 수 있도록
건물 곳곳에 길을 찾아올 수 있는 표지판들을 설치하고,
생각해 보니 디테일 하나하나에 신경을 많이 썼다.
당일날 패널리스트들이 하나둘씩 도착하고,
참석자들이 자리를 채워주기 시작했다.
3개월 동안 계획하고 준비하던 모든 것이
내 눈앞에 펼쳐지고 있으니까
너무 가슴 뛰었다.
나는 진행자 역할을 맡았는데
처음이어서 미흡한 부분도 많았고,
너무 벅찬 마음에 정신이 하나도 없어서
진행자 역할을 제대로 한 건지 기억이 잘 나진 않지만
학생들이 패널들과 대화를 하면서
보여주는 표정들이 너무 진지하고 뭐라도 하나 배워가려는
열정적인 눈빛을 보니
나의 부족함이 분위기에 영향을 주지 않은 것 같아 다행이었다.
패널들이 주인공이었고, 나는 보조 역할이었기 때문에
대부분의 시간을 앉아있었는데,
다른 사람들은 아무도 눈치채지 못했겠지만
나는 그 행사의 모든 순간순간 온몸에서 불꽃놀이가 일어나는 것 마냥
기쁨과 뿌듯함이 끓어오르는 것 같았다.
정말 상관없는 얘기처럼 들릴지 모르지만
학창 시절동안 나는 무대에 설일이 꽤 많았다.
오케스트라, 개인 독주, 현악 4중주 등등 내가 연주하는 것부터 해서
현대무용 공연, 합창공연도 있었다.
최근에도 학교 댄스동아리를 하면서 공연을 하기도 했는데,
내가 했던 모든 공연을 돌아보면
준비했던 시간, 연습했던 시간은 엄청났는데
공연 자체는 5분 안에 끝나니까
허무한 마음이 들었던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근데 이상하게도 이번에 내가 연 행사는
내가 주인공도 아니었지만
행사 내내 그리고 행사가 끝나고 집에 돌아가는 길에서까지
마음이 긍정적인 에너지로 꽉 찬 느낌뿐이었다.
허무하다는 느낌은 전혀 들지 않았다.
준비를 열심히 한 것은 똑같은데
준비를 해서 공연하듯 보여준 것도 똑같은데
왜 이렇게 드는 마음이 다르지 하고
생각을 해봤는데,
여태껏 했던 무수한 공연은
말로는 관객을 위해 한다고 하지만
솔직히 여태껏 나는 내가 잘하는 것, 내가 준비 열심히 한 것을
마음껏 뽐내고 싶은 마음이 가장 앞섰던 것 같다.
그래서 항상 아쉬움이 남고,
내가 이렇게 준비를 많이 한걸 사람들이 5분 안에 알까?
뭔가 다 보여주지 못한 것 같은데
너무 빨리 끝났다는 생각에 허무했던 것 같다.
그런데 이번 행사는 정말 진심으로
후배들이 가장 궁금해하는, 가장 걱정이 많은
부분에 있어서 불안감을 해소시켜 주고
알짜배기의 내용을 가져갔으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접근했고,
나 좋자고 하는 것보다
다른 사람들의 만족스러운 경험이 우선이었는데,
참석자들이 행사가 끝나고 난 후 나에게
이런 행사 열어줘서 고맙다,
정말 유익하고 좋았다 얘기해 주니까
내가 내 위치에서 좋은 역할을 했다는 마음에
스스로 만족감을 많이 느낀 것 같다.
객관적으로 생각해 봐도
이 행사가 정말 대단한 업적까지는 절대 아니다.
그럼에도 나에게 개인적으로 너무 의미가 깊은 일이어서
느끼는 감정의 강렬함이 달랐던 것 같다.
순간 살아있음을 온전히 느껴서인지
그 순간 내게 주어진 현재를 최대로 만끽하는 기분이었다.
겪어보니 이런 짜릿함,
생각보다 중독적인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