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화 Jun 30. 2024

관계와 감정 V

세 남자

 토요일 정오 학원에서 돌아온 고 2 첫째가 밝은 표정으로 "엄마! 날씨가 너무 좋아요. 온도와 습도도 모두 딱 좋아요~".라고 얘기를 건넸다. 아침부터 학원에서 공부하느라 지칠 만도 할 텐데 집에 돌아오는 길 날씨 때문에 기분이 좋아졌나 보다. 점심 먹고 빨리 독서실 가라고 하려고 했던 말이 쏙 들어갔다. 집안에 세 남자가 모두 내가 뭔가를 내려주는 결정을 기다리듯이 동시에 나를 쳐다보고 있다. 어디든 가야 한다는 의무감이 밀려왔다. 


뭐 하루 논다고 뭐가 바뀌겠어? 가자!


우리들은 서둘러 캠핑 장비를 챙겨서 캠핑장으로 향했다. 가는 길이 막혀도 행복해 보였고, 아이들은 오랜만에 자연과 함께 개구리도 잡고, 냇가에 있는 돌멩이로 물수제비도 시간 가는지 모르고 열심이었다. 제일 좋아하는 남자는 남편이었다.  캠프파이어에 시원한 맥주를 마시면서 초록 가득한 하늘을 즐겼다. 이렇게 작은 것에도 저 세 남자 행복해질 수 있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를 둘러싼 관계에 대한 감정을 정리하면서 마지막으로 나랑 같이 사는 이 세 남자들에 대해서 생각해 보기로 했다.

어쩌다 배우자가 되고, 엄마가 된 나. 그리고 어쩌다 나를 엄마로, 아내로 둔 이 세 남자들. 평생 가족이라는 타이틀 아래 같이 인생을 가야 하는 운명적인 나의 남자들. 

남편, 아들들이었지 이렇게 세 사람을 묶어서 생각해 본 적은 없었던 같다.  갑자기 이 세 남자와 나의 관계를 정의해보고 싶어졌다.  


 나의 첫사랑 남자 1 첫째 아들, 나의 마지막 사랑 남자 2 막내아들, 나의 영원한 사랑(?) 남자 3 남편. 오글거리지만 나름 맞는 것 같다. 내가 이 남자들과의 관계에서 느끼는 감정에 대해서 생각해 보자.


남자 1. 첫사랑 

나에게 엄마라는 타이틀을 처음 안겨주고 새로운 경험을 하게 한 이 남자는 생각만 해도 가슴이 벅차오른다. 

배밀이를 하면서 나를 쫓아다녔던 이 남자는 눈물 나도록 그립다.

이마가 찢어져서  응급실에 이 남자를 안고 달려갔었던 때는 맘이 찢어졌다. 아려온다.

입 짧은 이 남자가 밥을 잘 먹을 때는 고맙다.

자신만의 시간으로 이 세계를 혼자 여유롭게 살고 있는 이 남자는 답답하다. 좀 서둘러 주면 좋으련만..

본인이 되고 싶어 하는 꿈은 확실한데 뭔가 효율적으로 공부하는 것 같지 않아 안타깝다.


남자 2. 마지막 사랑

언제 걸었는지 기억이 나지 않을 정도로 바빴던 시절 이 남자한테는 미안하다.

매일 강아지 사달라고 떼쓰는 이 남자는 귀찮다.

못해도 자신감 넘치는 이 남자는 황당하다.

팝송을 지겹게 불러대는 사춘기 이 남자는 귀엽다.

방을 돼지우리로 만들어놓고 그 돼지우리에서 사는 이 남자를 보면 폭발할 것 같다.

되지도  않은 논리로 매사 우겨 되는 이 남자는 짜증 나지만 그래도 귀엽다.

밤에 자는 모습이 젤 사랑스럽다.


남자 3. 영원한 사랑

버스 타는 곳이 나의 집 근처라고 태연한 척 따라다녔던 이 남자는 참 꾸준한데 응큼했구먼.

같은 교실에서 책상 밑으로 손 잡고 수업했었던 이 남자는 귀여웠다.

아무리 뭐라 해도 화내지 않는 이 남자는 고단수이다. 대단하다.

본인이 맡은 일에 묵묵히 일하는 이 남자는 듬직하다.

가족에 대해서 많은 책임감을 느끼며 살고 있는 이 남자는 안쓰럽다.

일이 잘 안 되었을 때 작아 보였던 이 남자는 왠지 애잔하다.


 이렇게 세 남자에 대해서 써보니 이 관계에 대한 대표 감정은 다분히 "사랑"이 맞는 것 같다. 때론 답답하고 조바심 나는 감정도 많지만 그것은 나의 욕심 때문에 만들어진 감정이었다. 내가 조금만 내려놓으면 더없이 기쁘고 예쁜 감정 단어로 함께할 나머지 인생이 채워질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사랑으로 만들어진 이 세 남자와의 관계를  하루하루 사랑으로 마무리하는 그 이상적인 날을 기원하며, "관계와 감정" 시리즈 글도 마무리해 본다.

작가의 이전글 관계와 감정 IV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