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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화 Jun 30. 2024

공간 II

헤어살롱: 세월이 흐르는 공간

때는 코로나 19가 창궐하던 2020년 어느 더운 여름 일요일이었다. 시원하게 머리를 자르고 싶은 세 남자와 아침부터 서둘러 미용실로 향했다. 미용실 첫 손님은 우리였지만 휴일에는 커트고객은 안 받는다는 직원의 무심한 답변이 돌아왔다.


이런, 이게 문전 박대이구나... 다른 곳을 향했다. 그  미용실도 마찬가지였다. 휴일에 돈이 되는 파마 고객만 받고 커트는 평일 한가할 때로 돌리는 미용실의 이익 남기는 방법이다. 이해할 수 있었지만 화가 났다. 아니 이해하기 싫었다.


그때부터인 것 같다. 내가 직접 우리 집 세 남자 커트를 시작한 계기가 된 시점이다. 가위를 사고 이발기도 용도별로 사고, 제법 미용실에서 사용하는 모든 도구를 쿠*에서 주문했다. 그리고 유투*에서 커트동영상을 몇 번이고 돌려봤다. 만반의 준비가 되었다. 드디어 우리 집 헤어살롱을 개업한 것이다. 


3주에 한 번씩 안방 화장실은 헤어살롱으로 변신한다. 기름칠한 이발기를 충전시켜 놓고, 가지런히 가위와 빗을 가죽 케이스에 꺼내 놓는다. 의자 위에 쿠션도 얹어 놓고, 물뿌리개에 물도 담아 놓는다.


손님 맞을 준비는 다 되었다. 손님들이 들어온다. 투덜투덜 한 명씩 들어온다. 


첫 번째 손님은 이제는 어떤 스타일로 해달라는 말하는 것도 귀찮은 듯이 눈을 감고 음악을 듣는다. 하긴 어떻게 얘기를 해도 한 가지 스타일밖에 없다. 이 헤어살롱은 면도도 해준다.  이제 청년이 되어가는 아들을 보면 뭔지 모를 느낌이 저 밑에서 올라온다.  깔끔하게 정리된 머리를 이곳저곳 거울로 비쳐보고 꾸벅하고 나간다. 


두 번째 손님이 들어온다. 사춘기 이 손님은 긴 앞머리를 고수한다. 절대 눈썹 위로 올라가면 안 된다. 점점 요구사항이 많아진다. "도토리 같다, 송이버섯 같다. 팽이 같다.." 항상 투덜거린다. 그러다 요즘에는 머리를 묶고 다녀야 하겠다고 손님 파업 중이다. 이 손님을 다시 잡으려면 아무래도 미용학원을 다녀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세 번째 손님이 들어온다. 이분은 대충 잘라도 불만이 없다. 곱슬머리손님의 머리는 어떻게 잘라도 자기들끼리 어우러진다. 숱은 점점 줄어들고 흰머리는 점점 늘어난다. 세월의 힘은 못 이기나 보다. 마음이 짠해진다. 아마도 이 손님은 평생 이 헤어살롱을 이용할 단골손님이 될 것 같다.


헤어살롱을 개업한 지 벌써 3년째 접어든다. 이 공간이 없었다면 손님들이 세월에 따라서 변화하는 모습을 자세히 느낄 수 없었을 것이다. 코로나 19 아니었으면 생각도 못한 도전이었지만, 이제는 깔끔하게 다듬어진 모습들을 보면 저절로 흐뭇해진다. 시간이 흐를수록 손님들의 발길은 점점 뜸해지겠지만, 내 힘 다 할 때까지 이 공간에서 그 손님들과 함께 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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