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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화 Jun 30. 2024

기억 II

기다림

성격상 누군가를 오래 기다려본 적이 없었다. 내가 늦으면 늦었지 누군가를 이렇게 애태우면서 기다린 적은 없었다.  오늘은 연락이 올까? 내일은? 기다림은 계속되었다.


안절부절못하는 나를 알았는지 열흘 째 되는 날 연락이 왔다. 그는 그렇게 나를 애태우며 찾아왔다.

얼굴을 본다는 마음에 설레어서 어떻게 시간이 갔는지도 모른다.


기다림..  그때의 기억이 아직도 선명하다. 내가 기억하는 것처럼, 그 한테도 그때의 나를 기억해 달라고 하는 것은 나만의 욕심일까?


오늘은 그 기다림에 대한 기억이 고스란히 적혀있었던 일기를 공개하려고 한다. 나의 기억 속 기다림으로 들어가 보자고 한다. 두둥!


2006.06.18

사랑하는 나의 아가야. 

우리 아가가 세상에 나오기로 한 날이 벌써 이틀이 지나가고 있단다. 엄마는 우리 소망 이를 얼른 보고 싶은데 우리 아가는 아직 준비가 덜 되었나 보다. 기다림은 때론 설렘을 갖게 하고 때론 조바심을 갖게 하는 것 같아. 아가야. 얼른 엄마가 안아줄 수 있게 나오렴! 우리 아가를 무척 기다리고 있단다. 사랑한다. 아가야. 우리 만날 때까지 파이팅 하자! 엄마가~


2006.06.19

소망아 엄마야. 

우리 아가 아직 소식이 없네. 우리 아가 빨리 나오라고 오늘 엄마는 운동도 많이 하고 산책도 했는데,  우리 소망이는 언제쯤 엄마한테 노크할 건가요? 내일 할 건가요? 엄마는 준비되어 있으니까 언제든지 나오세요. 소망아. 많이 사랑해! 곧 보자! 우리 아가 힘내서 열심히 준비해요! 엄마도 파이팅 할게! 엄마가~


2006. 6.22

우리 소망아. 엄마야. 

아직 엄마는 우리 아가 얼굴을 못 보고 있네. 우리 아가 언제 나오나 항상 기다라고 있어요. 엄마 뱃속이 그렇게 편해? 엄마가 가끔씩은 조바심이 들고 그래. 미안해. 엄마가 우리 아가 준비될 때까지 잘 참고 기다릴게. 곧 보자 아가야. 사랑한다. 소망아. 엄마가~


2006.06.24

안녕! 소망아. 

오늘은 엄마 생일이야. 축하해 줄 거지? 엄마 생일 전에 볼 줄 알았는데 우리 아가 아직 안 나오네. 엄마배가 며칠 전부터 조금씩 아픈 거 보니 곧 만날 수 있을 것 같은데~ 우리 아가 다음 주에 꼭 보자! 사랑한다 우리 소망이!  엄마가~


2006. 06.25

아가야. 엄마야. 

우리 아가 오늘은 곧 나온다는 신호를 보냈어. 그래서 엄마는 병원으로 달려갔지. 그런데 아직 준비가 덜 되나 봐. 내일 다시 가봐야 할 것 같아. 소망아. 우리 내일 얼굴 보자. 엄마 뱃속에 우리 아가를 편하게 보호해 주는 물이 별로 없다네. 소망아, 내일은 꼭 까꿍 하자! 그리고 엄마에게 꼭 힘을 줘야 해. 사실 좀 두렵기도 하거든. 사랑한다. 아가야. 엄마가~


2006년 6.26일 이 기다림은 끝이 났고 예정일 보다 열흘이나 지나고 첫 아이가 찾아왔다. 17년 전에 썼던 일기장을 뒤적이다가 애타게 기다렸던 기다림의 글을  발견했다. 


메모지에 써서 일기장에 붙여놓은 기억 속으로 하나씩 들어가 보니, 내가 얼마나 이 아이를 소중하게 생각했었지 새삼 느껴진다. 글을 통하여 아이를 기다리고 처음 만났을 때 가슴 뛰었던 기억이 소환되었다. 그리고 한편으로 그렇게 기다렸던 아이를 요즘 너무 소중하지 않게 대하는 것 같아 죄책감까지 든다. 그때의 기억을 다시금 되뇌며, 이 소중한 아이에게 다시 다가가야겠다.


소망아! 오늘 저녁에 이 엄마가 달라진 모습 보여 줄게. 기대해~~ 아... 그런데 부작용이 예상되는 이 싸한 느낌은 무엇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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