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다림
성격상 누군가를 오래 기다려본 적이 없었다. 내가 늦으면 늦었지 누군가를 이렇게 애태우면서 기다린 적은 없었다. 오늘은 연락이 올까? 내일은? 기다림은 계속되었다.
안절부절못하는 나를 알았는지 열흘 째 되는 날 연락이 왔다. 그는 그렇게 나를 애태우며 찾아왔다.
얼굴을 본다는 마음에 설레어서 어떻게 시간이 갔는지도 모른다.
기다림.. 그때의 기억이 아직도 선명하다. 내가 기억하는 것처럼, 그 한테도 그때의 나를 기억해 달라고 하는 것은 나만의 욕심일까?
오늘은 그 기다림에 대한 기억이 고스란히 적혀있었던 일기를 공개하려고 한다. 나의 기억 속 기다림으로 들어가 보자고 한다. 두둥!
2006.06.18
사랑하는 나의 아가야.
우리 아가가 세상에 나오기로 한 날이 벌써 이틀이 지나가고 있단다. 엄마는 우리 소망 이를 얼른 보고 싶은데 우리 아가는 아직 준비가 덜 되었나 보다. 기다림은 때론 설렘을 갖게 하고 때론 조바심을 갖게 하는 것 같아. 아가야. 얼른 엄마가 안아줄 수 있게 나오렴! 우리 아가를 무척 기다리고 있단다. 사랑한다. 아가야. 우리 만날 때까지 파이팅 하자! 엄마가~
2006.06.19
소망아 엄마야.
우리 아가 아직 소식이 없네. 우리 아가 빨리 나오라고 오늘 엄마는 운동도 많이 하고 산책도 했는데, 우리 소망이는 언제쯤 엄마한테 노크할 건가요? 내일 할 건가요? 엄마는 준비되어 있으니까 언제든지 나오세요. 소망아. 많이 사랑해! 곧 보자! 우리 아가 힘내서 열심히 준비해요! 엄마도 파이팅 할게! 엄마가~
2006. 6.22
우리 소망아. 엄마야.
아직 엄마는 우리 아가 얼굴을 못 보고 있네. 우리 아가 언제 나오나 항상 기다라고 있어요. 엄마 뱃속이 그렇게 편해? 엄마가 가끔씩은 조바심이 들고 그래. 미안해. 엄마가 우리 아가 준비될 때까지 잘 참고 기다릴게. 곧 보자 아가야. 사랑한다. 소망아. 엄마가~
2006.06.24
안녕! 소망아.
오늘은 엄마 생일이야. 축하해 줄 거지? 엄마 생일 전에 볼 줄 알았는데 우리 아가 아직 안 나오네. 엄마배가 며칠 전부터 조금씩 아픈 거 보니 곧 만날 수 있을 것 같은데~ 우리 아가 다음 주에 꼭 보자! 사랑한다 우리 소망이! 엄마가~
2006. 06.25
아가야. 엄마야.
우리 아가 오늘은 곧 나온다는 신호를 보냈어. 그래서 엄마는 병원으로 달려갔지. 그런데 아직 준비가 덜 되나 봐. 내일 다시 가봐야 할 것 같아. 소망아. 우리 내일 얼굴 보자. 엄마 뱃속에 우리 아가를 편하게 보호해 주는 물이 별로 없다네. 소망아, 내일은 꼭 까꿍 하자! 그리고 엄마에게 꼭 힘을 줘야 해. 사실 좀 두렵기도 하거든. 사랑한다. 아가야. 엄마가~
2006년 6.26일 이 기다림은 끝이 났고 예정일 보다 열흘이나 지나고 첫 아이가 찾아왔다. 17년 전에 썼던 일기장을 뒤적이다가 애타게 기다렸던 기다림의 글을 발견했다.
메모지에 써서 일기장에 붙여놓은 기억 속으로 하나씩 들어가 보니, 내가 얼마나 이 아이를 소중하게 생각했었지 새삼 느껴진다. 글을 통하여 아이를 기다리고 처음 만났을 때 가슴 뛰었던 기억이 소환되었다. 그리고 한편으로 그렇게 기다렸던 아이를 요즘 너무 소중하지 않게 대하는 것 같아 죄책감까지 든다. 그때의 기억을 다시금 되뇌며, 이 소중한 아이에게 다시 다가가야겠다.
소망아! 오늘 저녁에 이 엄마가 달라진 모습 보여 줄게. 기대해~~ 아... 그런데 부작용이 예상되는 이 싸한 느낌은 무엇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