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텐츠 중독’이 아니라 ‘콘디신(콘텐츠 메디신)과 콘라벨(콘텐츠-라이프
콘라벨(콘텐츠-라이프 밸런스)이란?
밤에 잠자리에 누워서 유튜브를 보다가 시간가는 줄 모르고 잠을 덜 자서 새빨개진 눈으로 출근 준비를 해본 적이 있다면, 이런 생각이 드실 수도 있겠습니다. ‘알고리즘은 신인가? 나보다도 나에 대해서 더 많은 것을 알고 있는 것 같아.’
아이패드로 온라인 서점에 방문해도, 일요일 저녁 소파에 앉아 넷플릭스를 틀어도 알고리즘은 당신에게 최적화된 ‘콘텐츠’를 소개합니다. 당신의 할머니의 핸드폰과 당신의 핸드폰에서는 전혀 다른 영상 콘텐츠가 올라오고 있습니다.
다만 공통점이 있다면 알고리즘은 당신의 할머니와 당신이 밤낮으로 핸드폰을 놓치않고 콘텐츠를 소비하도록 설계되었다는 점입니다.
콘텐츠를 통한 도파민 중독(도파미네이션. 애나 렘키 교수)은 내성을 만들고 당신은 더 큰 자극을 원하며 더 오랜 시간 스크롤을 반복하게 됩니다. 휴식을 방해하고 건강을 해치며 삶의 질을 떨어뜨리는 이런 일을 계속해서 이어가야 할까요?
마약성 진통제인 아편을 평범한 사람들이 약용하고, 갓난아기에게 모르핀을 감기약으로 처방한 19세기를 떠오르게 합니다.
희비극으로만 구분되었던 장르가 미스테리, 호러, 로맨스, SF 등으로 본격적으로 세분화되기 시작한 것은 150여 년이 넘지 않았습니다. 에드가 엘런 포나 코난 도일, 쥘 베른이 그 시초입니다. 무협이나 서부극처럼 어느 나라에는 있는 장르가 다른 나라에는 없기도 합니다. 산업혁명 시대 이후 인쇄술과 영화가 발달하고 대중이 콘텐츠를 즐길 시간과 경제적 여유가 생긴 이후에 콘텐츠 산업이 발달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면서 짧은 시간에 마약처럼 일상을 잊게하는 콘텐츠들이 점점 발달했습니다. 일상을 잊게할 만큼의 자극적인 콘텐츠가 생기면서 콘라벨이 급격히 무너지기 시작했습니다.
한 생물학자의 주장에 따르면 생물이 생존하기 위한 필수 메카니즘이 바로 '균형'이라고 합니다. 균형이 무너지면 파멸이 가까워집니다. 콘라벨(콘텐츠-라이프 밸런스)이 필요한 시점입니다.
그렇다면 당신을 중독시키는 마약 콘텐츠가 아니라 중독없이 치유하는 균형 콘텐츠가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그런 콘텐츠가 따로 있느냐고요? 그 구분은 없습니다. 어떤 사람에게는 약으로 쓰이는 것이 다른 사람에게는 독이 되니까요.
콘디신(콘텐츠 메디신)이라고? 그거 먹는 거야?
아직까지 알고리즘은 어떤 콘텐츠가 우리에게 독이될지 약이될지 관여하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우리 자신이 어떤 콘텐츠가 자신에게 약으로 쓰일지 독으로 쓰일지 알아가기 위해서 장르 콘텐츠에 대한 공부가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저는 장르 콘텐츠가 일종의 콘디신(콘텐츠 메디신)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문학은 카타르시스를 만듭니다. 카타르시스는 비극의 정의(定義) 가운데에 나오는 용어. ‘정화’라는 종교적 의미로 사용되는 한편, 몸 안의 불순물을 배설한다는 의학적 술어로도 쓰입니다. 일상에서는 느끼지 못할 극한의 감정을 간접적으로 느끼게 하면서 카타르시스가 나오는게 콘디신의 원리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칠정이라는 것은 희노우사비경공으로 나뉘는데 증상이 심하면 희즉기완(喜則氣緩), 노즉기상(怒則氣上), 우즉기울(憂則氣鬱), 사즉기결(思則氣結), 비즉기소(悲則氣消), 경즉기산(驚則氣散), 공즉기하(恐則氣下)이라는 결과를 가져온다고 고서에서는 주장합니다.
공포와 놀라움을 느끼게 하는 호러물과 서스펜스 액션물, 즐겁게하는 로맨틱 코미디 등 사람의 특정 감정을 자극하도록 약속된 것이 장르 콘텐츠 물입니다. 독자들은 그 약속을 믿고 장르 콘텐츠를 즐깁니다. 사랑이 모든 것을 구원하는 뜨거운 결말이 아니라면 ‘로맨스’ 독자들을 크게 실망할 것이고. 놀랍지도 않고 예측 가능한 결말을 쓴 추리소설 작가는 독자들의 외면을 받을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장르콘텐츠가 자신에게 주는 영향력을 깨닫기 시작하면 자신에게 필요한 콘디신의 알고리즘을 만들 수 있을거라고 느낍니다. 예를 들어 로맨틱 코미디만 즐기는 사람은 자신의 인생에서 ‘외로움’을 많이 느끼고 있으므로 그에 대한 처치가 필요하며 로맨틱 코미디와 비슷한 콘텐츠를 집중 소비하면 희즉기완(喜則氣緩) 즉, 늘 산만하고 상사병같이 붕뜬 질환?이 생긴다는 사실 정도는 상식이 되는 때가 다가오지 않을까 싶습니다.
알고리즘이 나를 이끄는게 아니라 내가 알고리즘을 이끄는 때가 오기를
아기 고양이나 K-pop 영상인가요? 아니면 귀를 파는 영상인가요? 자신이 계속해서 보는 영상이나 콘텐츠가 무엇인지 살펴보며 자신의 욕망을 돌아보는 시간을 가지졌으면 싶습니다. 당신의 욕망이 알고리즘을 만들었으니까요.
어쩔 땐 단것을 먹고 싶을 때가 있고 매운 것을 먹고 싶을 때가 있듯 덥고 답답한 여름에는 시원한 호러가 보고 싶고 겨울에는 따스한 크리스마스 로맨스 영화가 보고 싶을 수 있습니다. 취향의 나노화가 진행되면서 수많은 서브 장르들이 또 만들어집니다. 비엘(보이즈 러브)장르, 실크펑크 장르, 타임리프 장르 등 인간의 욕망이 새로워지고 마음의 병이 다양해지면서 새로운 장르들이 만들어지고 변화합니다.
예를 들어 ‘크리스마스 캐롤’처럼 계도적이고 수동적이었던 시간여행 장르는 영화 ‘콘텍트’처럼 점점 더 신비한 ‘타임워프’나 ‘타임루프’, ‘타임 헤테로토피아’ 장르로 진화합니다. 앞으로 우리의 욕망은 또 어떤 새로운 장르를 만들어낼지 궁금합니다.
VR 스토리텔링의 세계가 본격화하게 되면,
현재 제페토 플랫폼에서는 작가가 아닌 사용자들이 중심이 되어 즉석 연극이 만들어지고 있습니다
여러분이 영화의 주인공이 되고 스토리텔링을 선택해야 할 것입니다. 어떤 장르가 어떤 자극을 만들어내는지, 어떤 새로운 욕망이 어떤 장르를 만들어내고 있는지 약이 되는지 독이 되는지 알아야 할 것 같습니다 예술과 문학은 오랫동안 인간을 치유해왔습니다. 콘텐츠들도 그러할 것입니다. 콘텐츠 테라피를 위한 많은 연구들도 기다립니다.
호러를 쓰는 작가가 평생 호러를 쓸수도 있고 SF를 쓰는 작가가 평생 SF만 쓸수도 있지만 피카소처럼 평생에 걸쳐 여러 가지 방식의 표현을 써보는 작가도 있습니다. ‘어쩌다 작가’ 3편에서는 주로 SF 코미디와 호러를 쓰시는 ‘클레이븐’과 ‘아신유’작가님을 소개합니다.
가장 뛰어난 작가는 독자를 작가로 만드는 이라고 들은 적이 있습니다. 콘텐츠에 독자가 몰입하여 일상을 잊게하는 것이 아니라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게 하는 작가. 콘라벨을 가능하게 하는 작가. 그런 작품은 분명 ‘걸작’일 것입니다. 걸작을 향해 매일 조금씩 걸어가는 두 작가님을 응원하며 두 분의 이야기를 들어볼 시간을 가져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