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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여경 Dec 08. 2022

어쩌다 작가, SF 코미디 작가, 클레이븐

코미디, SF 그리고 장례식


언론의 자유는 많은 이들이 바라는 가치입니다. 하지만 

한국에서는 예술로서의 ‘풍자’가 거의 사라지고 있습니다. 

정치와 사회 풍자를 하는 코미디 프로그램들이 사라지는 일이 없는 미국을 보면 부럽기도 합니다. 

곽재식 작가처럼 한국 SF 코미디의 명맥을 이어가고 있는 클레이븐 작가를 소개합니다.                     

          

시리즈 소개     

어쩌다 작가 에세이 시리즈는 다른 직업을 가지고서 작가의 꿈을 꾸고있는 많은 분들을 응원하고자 마련되었습니다. 이 작가님들이 어떤 시련과 즐거움을 거쳐왔는지 들여다보고 기운을 얻어가는 기회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기획자 윤여경-     



    

코미디, SF 그리고 장례식.          

by 클레이븐


나는 SF 코미디 장르를 주로 쓴다.

이 미묘한 왜소 항성같은 장르는 너무 깊이 들어가면 작가를 파멸시킨다. 반면에 너무 멀리서 겁쟁이처럼 굴면 제맛을 내기 쉽지 않다. 그렇기에 우리는 장르적인 골디락스 존에서 어렵사리 안착하여 작품이 SF코미디 근처를 맴돌도록 노력해야 한다.     

그렇다면 우리 함께 생각해보자. 왜 이렇게 끔찍하게 어려운 말을 써가며 SF코미디를 논하는 걸까? 이유는 간단하다. 요즘 같은 시대에 코미디를 쓰는 것이 거의 불가능해졌기 때문이다.     

지난 수년간 우리는 코미디의 입에서 호흡기가 떨어져 나오는 것을 보았다. 개그콘서트가 죽었고, 코미디 빅리그 역시 호흡기를 뗐다. 소규모 스탠드 코미디가 간신히 살아남았지만, 인지도는 거의 없다.     

왜 이런 상황이 펼쳐진 걸까? 이유는 간단하다. 이제 더이상 사람들은 풍자와 무례함을 구별하지 못하게 된 것이다. 전통적인 슬랩스틱이나, 블랙코미디 역시 무례함(혹은 비하)이라는 이름의 거대하고 블랙홀의 위장 속에 빨려 들어가 버렸다.     


의도했든 의도하지 않았든, 우리나라 사람들은 예전처럼 코미디를 즐기지 못하게 된 것이다.     

거창한 사회 정의란 이름 아래 웃음은 분석되고, 의도를 파악함과 동시에 드러내기 위한 도구로 전락했다. 그나마 블랙코미디는 간신히 살아남긴 했지만, 블랙코미디 특유의 머리를 때리는 웃음은 유쾌함보단 쓴웃음으로 기조를 바꾸었다.     

나는 이런 현상이 SNS와 인터넷의 입김에서 비롯되었다고 생각한다. 모든 사람이 초연결 사회 속에서 항시 타인의 생각과 접촉한다. 스스로 고독을 취할 시간조차 없이 말이다. 그러다 보니 생각이 온전히 정립되기도 전에 나의 생각과 유사한 타인의 생각을 접하게 된다. 이런 유사한 생각은 또 다른 타인의 정제되지 않은 생각과 접합되고 변형된다. 그리고 마침내 수많은 사람 손에 정제된 생각이 나타나면 그때부터 사람들은 그것을 자기 생각이라 생각하게 된다. 마침내 타인의 생각과 자신의 생각의 경계가 뿅하고 사라지게 되는 것이다.     

이렇게 사라진 경계는 유동적으로 흐르는 것처럼 보이다가 마침내 집단의 성향에 맞게 재단되기에 이른다. 이 때문에 코미디는 더 이상 새로운 시도를 할 수 없는 지경에 다다르고 말았다.     


웃음은 전체 이용가 수준에 머물러야 하며, 수많은 이들의 눈치를 보게 되었다.     

그들이 말하는 모든 내용을 숙지하고 그들의 생각을 내 머릿속에 반드시 집어넣고 고려해야만 하는 것이다. 인셉션이 따로 없다.     

웃기는 것이 이토록 어려워졌다면 SF는 어떠한가? SF는 사정이 조금 더 나으니까 SF코미디를 주야장천 파는 것 아닌가, 싶은 분들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불행하게도 SF는 고대부터 지금까지 계속 침체기였다. 영문 문학 쪽으로 가도 SF의 수요는 그리 크지 않을 정도니 무슨 말을 하랴? 반면에 2000년대 초, 그 이전부터 태동한 판타지와 무협의 입김은 여전히 강하다. 그리고 2020년대에 들어서 인간은 책을 내려놓고 다른 매체로 눈을 돌렸다.     

게임과 영화, 드라마, 애니메이션의 물결 속에 소설의 설 자리는 갈수록 줄어드는 추세이다. 그 줄어드는 파이 속에서 SF는 힘겹게 불씨를 이어가고 있다. 오로지 SF를 좋아하는 사람들의 가내수공업적인 단순노동을 토대로 말이다.     

이쯤 되면 SF코미디는 거의 ‘자살’을 뜻하는 은어처럼 보이기도 한다. 물론, 글을 잘 쓰는 사람이라면 그다지 걱정할 필요 없는 일이다. 그렇다고 모두가 글을 잘 쓸 수는 없는 노릇이다. 거기다 설령 글을 잘 쓴다고 하더라도 시장성이 없는 글이라면 그 글로 밥 한끼 먹기 힘들다. 컨디션과 잘못된 기획이 작품을 망치는 일도 있었다. 하지만 현실만 따지고 산다면 인간이란 종족이 지금처럼 위대한 발자취를 남길 수 있었을까? 난 단호하게 그렇지 않다고 말하고 싶다.     

만일 인간이 현실적으로만 살았다면, 우리의 선조들은 아직 원시림에서 빠져나오지 못했으리라. 과거 그들이 수많은 바보 같은 짓을 반복하고 그 과정을 기록함으로써 현대 사회가 탄생한 것이기 때문이다.     

아니, 거창하게 인류 역사를 들먹일 필요도 없다. 애초에 따지고 보면 인간의 삶은 항상 죽음을 향해 달려가고 있다. 가만히 있어도 죽고, 가만히 있지 않아도 죽는다. 과정은 불확실하나, 그 결과 값은 같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각자가 추구하는 바가 다르긴 하지만 조금 특이하게 사는 것도 나쁘지는 않을 것이다.     

10년 전의 내가 이런 생각에 다다랐을 즈음, 나는 수많은 고민에 사로잡혔다.     

FTL에 어서오세요 by 클레이븐, 그래비티 출판사



사이다 전개만 나오는 소설이 잘 팔린다고 해서 꼭 그런 소설을 쓸 필요가 있을까? 공대를 나왔다는 이유로 꼭 중공업이나 플랜트 건설업체에 들어가야 할까? 취미로 쓰기 시작한 소설을 취미의 영역으로 내버려 둬야 할까?     

나 역시 이런 고민이 낙엽처럼 차곡차곡 쌓여가던 때가 있었다. 수많은 사람들이 손가락질하며 등을 돌렸다. 심지어 문학 동아리에서는 ‘뭐 저런 실력도 없는 늙다리가 들어와서 저딴 글이나 쓰고 있냐.’는 뼈가 담긴 눈총을 받기도 했다. 또한, SF적인 클리세를 이해하지 못하는 이들은 굳이 왜 SF를 쓰냐고 반문하는 경우도 있었다.     


그럴 때마다 나는 SF 코미디의 장점을 설파했다. 현실과 동떨어진 배경에서 불쾌감 없이 현실을 풍자할 수 있다는 둥, 미래의 모습을 상상하는 것이 즐겁다는 둥. 이런저런 장점을 이야기했다. 심지어 아이들과 어른들의 밝고 어두운, 혹은 심도 있는 상상력을 자극 시킬 수도 있노라고 말한 적도 있다. 그런데도 그다지 반응은 좋지 않았다.          

특히, 즐겁다는 말에 사람들은 부정적이었다. 그들의 주 논지는 간단했다. 쓰는 사람만 즐거우면 어쩌냐는 것이다. 이해를 못 하겠으니 뭐라 말하기도 힘들다는 사람들도 있었다. 하지만 쓰는 사람이 일단 즐거워야 작품이 나온다는 점을 미뤄본다면 조금 씁쓸한 기분에 사로잡히곤 한다.     

윤여경의 SF 강의 자료


그럴 때마다 나는 ‘은하수를 여행하는 히치하이커를 위한 안내서’를 읽었던 순간을 떠올린다. 엄청난 두께의 책장을 넘겼지만, 도무지 시간 가는 줄 몰랐다. 2000년 이전에 쓰인 작품이란 것이 믿어지지 않을 만큼 세련되고 골때리는 상황과 유머로 가득한 글이었다. 그 책을 8번 읽은 뒤에야 나는 언젠가 죽기 전에 그런 책을 써보고 싶노라 생각했다. 그리고 지금까지도 나는 그런 생각으로 글을 쓴다.     

수많은 사람들이 꾸중하건 내 알바 아니다. 어차피 인간은 죽는다. 이 글을 쓰고 있는 필자도 10년 20년은 모르겠지만, 길면 60년~70년 사이에 이 세상에서 사라질 것이다. 그렇다면 남들이 뭐라 하건 그냥 한번 질러보는 게 낫지 않겠는가? 아무도 올라가 보지 않은 봉오리에서 서서 그간 눈총을 준 이들에게 한번 크게 비웃어주는 것도 멋지지 않겠는가?     


그러니 다시 한번 더 말하는 바이다.     

경고한다. SF 코미디를 쓸 생각이라면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다. 자신이 없거나 조금이라도 망설여진다면 지금이라도 돌아가라. 원고를 삭제하고 출력한 원고가 있다면 드럼통에 집어넣고 불쏘시개로 쓰기 바란다. 어쩌면 SF코미디를 쓰는 것보다는 불타는 드럼통을 길거리에 두고 사람들과 단체로 멋진 그루브를 추거나 박력 넘치는 폴리네시아 춤을 추는 편이 공익에도 도움이 되리라. 어쩌면 당신의 인생을 구해줄지도 모른다.     

그러나 위와 같은 경고를 듣고도 SF코미디를 쓰고 싶은가? 판타지 코미디나 무협 코미디 대신 SF코미디가 정말로 쓰고 싶은가? 그렇다면 필자는 말릴 생각이 없다. 이런 경고 문구를 보고도 쓰고자 마음먹은 사람을 막을 수 있는 건 이 세상에 없으니까 말이다.     


거기다 나로서는 쓰고자 하는 이를 돌려보낼 수 없다. SF코미디를 쓰려는 자가 내 독자이며, 나 역시 그의 독자가 될 운명이다. 그렇기에 오늘도 나는 위대한 SF코미디 작가가 나오기를 갈망한다.     

누가 되었건 부디 SF를 좋아하는 이들의 갈망을 조금이나마 챙겨 주기를 바란다.     


작가 소개     

SF 코미디 작가, 클레이븐     

FTL에 어서 오세요. 그래비티 출판사     

그 외 다수 이북 출간, 아작 출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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