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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랬구나 Dec 14. 2023

옷솔로 코트를 빗는다

그런 아이템들이 있다.

안 써 볼 때는 전혀 필요성을 모르나, 한 번 사용하면 안 쓸 수 없는 것.


나에겐 옷솔이 그렇다.

요즘 매일 사용하면서도 감탄하는 그것.

바로 옷솔이다.


이 제품의 정식 명칭은 모르겠다. 내가 구매한 곳에서는 '양복 브러쉬'라는 이름으로 불리고 있고,

유명하다는 영국 제품은 'Clothes Brush'라는 이름으로 판매되고 있다.


양복 브러쉬라고 하기엔 용도가 제한되는 것 같고, 옷솔이라고 하기엔 영국 제품을 직역한 것 같아 마음에 들진 않지만 옷솔이 가장 적합한 것 같기도 하다. 암튼 뭐라 부르던 요즘 나에겐 없어선 안 될 품목 중 하나다.

아직 혹한이 찾아오지 않아서인지, 패딩보다는 코트를 입는 날이 많았다.


코트를 입고 외출했다가 돌아오는 날 나는 정성스레 코트를 빗는다.

옷장에 있는 일명 코디 걸이라 불리는, 옷이 정면을 바라보게 걸 수 있는 후크에 옷걸이에 걸은 코트를 걸어준다.


그리고 위에서부터 아래로 옷솔로 코트를 슥슥 빗어 준다.

코트에 붙어있던 머리카락이나 먼지가 떨어진다. 작은 보풀도 제거된다.

그리고 모직이 빗질하는 방향으로 정리되면서 옷의 구김도 펴진다.

앞 판, 뒷 판, 깃 한번, 소매 두 짝 슥슥 빗어 주면 말끔하게 손질한 옷이 된다.

세탁소에라도 다녀온 듯 판판하게 정돈된 그 느낌이 너무 좋다.

그리고 옷장 아래에 떨어진 먼지를 청소포로 슥슥 밀어주면 정리 끝.


혹시 코트에 냄새가 배어있다면 섬유 항균제나 섬유 탈취제 슥 뿌려서 베란다에 걸어 두면 의류관리기 부럽지 않다.(의류관리기가 부럽지 않다는 말은 경험해보지 않아서 하는 말인지도 모르겠다. 아무쪼록 거실 책상 할부가 끝나기 전까진 부러워하지 않아야 한다)



내가 20대였다면, 옷을 빗질할 생각보다는 예쁜 옷을 하나 더 사려고 했을 것 같다.

하지만 나이가 들 수록 외면의 화려함보다 하나하나의 됨됨을 따지게 되고 정성을 들이게 되었다.


전에는 매주 손톱과 발톱에 색색의 색을 입혔으나 요즘은 발뒤꿈치 각질 관리와 핸드크림 바르는 것에 정성을 기울인다.

전에는 헤어스타일에 관심이 있었다면 요즘은 머릿결 관리를 위해 헤어에센스는 과감히 투자한다.

전에는 눈화장 방법에 관심을 쏟았으나 요즘은 피부 보습과 자외선 차단에 힘쓴다.

전에는 옷을 고를 때 디자인만 봤다면 이제는 원단과 바느질을 꼼꼼히 살핀다.


어려서는 내가 누구인가 알아가기보다는 보이는 나를 많이 신경 썼었다.

남에게 보여주고 싶은 내 모습을 만들었었다.

내가 무엇을 원하는지 보다는 어떤 모습의 내가 남들에게 주목받는지만 생각했었다.

그러다 보니 내면보다는 외형에 더 관심을 기울였었던 것 같다.


하지만 이제는 다르게 생각한다.

덧붙이는 화려함보다,

내면의 단단함에서 나오는 빛남이 더 아름답다.


다른 사람이 보는 나는 중요하지 않다.

누가 뭐래도 나는 나를 알아줘야 하고, 내 목소리에 내가 귀 기울여야 한다.

그리고 나를 돌봐줘야 한다. 나를 살펴야 한다. 나는 무엇을 좋아하는지, 나는 무엇을 하고 싶은지.

나를 살피지 못하면 내면의 단단함은 없다.



나를 살피는 것, 그리고 내면의 단단함.

사실 요즘 내가 전혀 그렇지 못했다.

나는 없었고, 쉽게 부서졌었다.


육아에만 전념한 10여 년의 시간 동안 보이는 나, 내면의 나 모두 잃었었다.

나를 철저히 잃어보니 내가 보였다.

나를 찾고 싶었다.


코트를 빗다가, 내 마음도 빗었다.

내 마음의 티끌을 털고 나니 내가 보였다.

매일매일 정성스레 내 옷을 빗듯,

내 마음을 빗고 살아야겠다.



(이미지출처_켄트인스타그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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