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공간을 정리한다는 건, 생각을 정리하는 것이라는 걸 이번에 몸소 느꼈다.
베란다 수납장 정리를 하면서, 그것도 심지어 쇼핑백만 정리했는데 글감이 두 개나 나왔다.
지난번 '프랑스 비닐봉지, 네가 왜 거기서 나와'에 이은 두 번째 쇼핑백 이야기다.
버릴 것을 선별하기 위해 하나하나 살펴보다 보니, 전국 유명 빵집들이 다 나온다.
먹는 거에 진심인 사람 바로 나다. 덤으로 쇼핑백 수집가인가.
요즘 빵 종류 중, 가장 화제가 되고 있는 곳 런던 베이글 뮤지엄.
안국점에서 살 때는 종이봉투에 넣고 투명 비닐에 담아줬었는데, 쇼핑백은 처음 봤다. 며칠 전 남편이 잠실점에서 포장해 올 때 가져온 쇼핑백이다. 아이들은 베이글을 꺼내 먹느라 바쁜데 나는 이 쇼핑백에 감탄하며 사진을 찍었더랬다. 매장에서 느껴지는 런던베이글만의 분위기가 쇼핑백에도 그대로 전해진다. 브랜드 정체성이 확실한 런던베이글뮤지엄! 진심으로 멋지다.
안국동에서 런던베이글뮤지엄 못지않은 인기스타. 노티드 도넛집 쇼핑백.
요즘 유명한 빵집들의 특징인 것 같다. 빵만 맛있는 게 아니라 매장도 예쁘고, 포장 용기도 예쁘다. 저 빵을 먹어보고 싶다 더하기, 저 매장에 가본 나를 사진으로 남겨서 SNS에 올려야겠다, 저 포장백을 들고 오는 경험을 하고 싶다를 요즘 브랜드들은 추구하는 것 같다. 빵 구매로만 그치는 것이 아닌 매장을 방문한 경험, 그리고 그걸 보여주고자 하는 사람들의 심리를 잘 활용한 것 같다. 사진으로는 안 남겼지만 노티드는 포장 상자도 몹시 예쁘다.
군산에서부터 데려와서 꼬깃함이 있지만 그것마저 멋스러운 이성당 노란 쇼핑백.
군산 시내에 가면 저 노란 쇼핑백을 들고 다니는 사람들을 엄청 많이 만날 수 있다. 쇼핑백 아랫부분에 적힌 빵집의 주소마저 디자인적인 요소로 느껴진다. 이제는 서울에도 있던데, 서울에 있는 이성당에서 포장을 해도 저 군산 주소가 적혀있는지 문득 궁금해진다.
이 분은 부산 유명 빵집 옵스 쇼핑백 되시겠다.
옵스는 남편이 부산에 출장을 다녀오면서 사 와서 처음 먹어봤다. 그때 그 빵집에서 유명한 거라며 슈크림을 보냉재까지 넣어 포장해 왔었다. 슈크림은 맛있었을 거다 분명, 그런데 슈크림의 맛보다 정성스레 들고 온 남편의 마음이 더 고마웠던 기억이 난다. 남편은 먹는 거에 진심인 나를 위해 KTX 놓칠세라 조마조마하며 택시까지 타고 다녀온 옵스였다. 그런데 어느 날 명동 롯데백화점 본점 지하에 떡하니 있는 옵스를 발견했을 때의 놀라움이란! 참고로 저 쇼핑백은 명동 롯데백화점에서 포장할때 가져온 것.
전국 유명 빵집이자, 우리 동네 맛집이자, 내가 우리 동네를 떠날 수 없는 이유인 나폴레옹.
나폴레옹 빵집 쇼핑백은 우리 동네에선 흔히 보는 가장 무난한 쇼핑백이라서(^^) 동네 사람들 끼리 무언가를 주고 받을 때 가장 많이 활용된다.
1946년부터 있었다는 장충동 태극당.
조경규 작가님의 만화 '오무라이스 잼잼'에 태극당 이야기가 나왔다. '오무라이스 잼잼'의 열렬한 애독자인 우리 집 어린이들이 몹시 가고 싶어 하여 다녀온 태극당. 아마 올 설 연휴 즈음에 다녀왔던 것 같은데 그래서 그런지 뒷면은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라고 쓰여있다. 보통 사용하는 쇼핑백 디자인은 아니고 특별한 시즌용 쇼핑백이었다.
마지막은 대기업 빵집 3형제.
맛과 가격은 쇼핑백에서 느껴지는 분위기에 정확히 비례한다.
옆에 있던 남편에게 쇼핑백들을 보여주면서 말했다.
"이거 봐, 나 빵 진짜 좋아하나 봐. 빵집 쇼핑백이 이렇게 많다?"
쓱 보더니 나를 몹시 설레게 하는 말 한마디를 한다.
"성심당이 없네. 기다려 다음 주에 출장 가니까 사 올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