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존감 시스템

과학적 상상력으로부터 얻는 감성적 위로

by 이현직

3년 전 스물여섯, 일곱 즈음 한창 주위 친구들이 취업준비를 할 무렵, 비교적 일찍 준비를 하던 친구가 술자리에서 고민을 털어놓았다. 면접에서 너무 많이 떨어지고 자존감도 낮아져서 겁도 나고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지 막막하다는 이야기였다.


이야기를 듣고 나서 누구라도 할 법한 말을 최대한 머릿속에서 걸러가며 어떤 말이 가장 좋을까 고민했다.


그러다가 문득, 그 즈음에 읽기 시작한 리처드 도킨스의 '이기적 유전자'라는 책이 떠올랐다. 책의 머리에 적혀있는, '인간을 포함한 모든 생명체는 DNA 또는 유전자에 의해 창조된 생존 기계이며, 자기의 유전자를 후세에 남기려는 이기적인 행동을 수행하는 존재'라는 부분이 스쳐가며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유기체는 DNA를 담는 껍데기에 불과한 것이라는데, 계속 술잔을 들고 힘들어하는 내 앞의 이 DNA는 꽤 잘 존재 해왔네'. 그 이후로 든 생각은, 자존감이 낮아진 다는 것은 고통스러운 일이라기보다 여러 세대를 거쳐도 살아남을 수 있도록 하기 위한 시스템의 일부라고 느껴졌다. 자존감이 낮아져야 허탈, 허망, 분노 같은 감정을 잘 활용해 다시 자존감을 높이기 위한 활동을 할 것이니 말이다.


영화 '프로메테우스'와 미드 '웨스트월드'가 생각나며 상상이 더 멀리 나아갔다. 만약 세상이 훨씬 발전하고 내가 창조주가 되어 스스로 생각하는 유기체를 만들 수 있게 되었다고 했을 때, 필연 나는 나의 자식 같은 해당 유기체의 안에 자존감이 내려가게끔 프로그래밍을 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렇게까지 생각이 미치니, 자존감이 떨어진다라는 말에 자연스레 '고통'을 떠올리지 않게 되었고 과장해서는, 존재하는지 마는지도 모를 창조주의 자애로움까지도 느껴졌다.


생각을 정리한 후에 내 앞의 친구에게, 그리고 그 옆자리에 자연스레 나를 앉혀두고는, 그 말로 둘을 위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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