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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코틴 Jul 28. 2024

예민한 직장인의 생존기 1

: 잠이 오지 않는 밤에

6월, 항구 마을 바닷가


 살아내면 살아낼수록 희미해지는 것들이 있고, 반대로 선명해지는 것들이 있다. 희미해지는 것들은 안타깝게도 꿈과 열정처럼 반짝이는 것들. 선명해지는 것들은 익숙하게도 나태, 권태 같이 익히 들어온 것들이다. 그리고 불안은 어디로든 들어와 마음의 수많은 틈과 구멍 사이에 켜켜이 쌓여간다. 적어도 나는 그렇다. 하필이면 예술적인 소양을 타고난 내 잘못이기도 하지만, 불행 중 불행으로 ‘게으르고 예민한 예술가’ 타입인 나는 재능에 대한 덕도 그닥 보지 못한 채 하루하루를 힘겹게 살아내는 중이다.


 난 평생 예술을 하며 살아갈 거라고, 너무도 당연하게 생각했던 시절이 있었다. 나는 조금 늦게까지 생각 없이 살았던 편이다. 그냥 흘러가는 대로 인생에 몸을 맡겼던 것 같다. 그러다 27살 무렵이었나? 나의 자그마한 열정 가지고는 가난한 예술가로도 살아날 수 없겠다는 생각을 어렴풋이 했다. 그렇게 어쩌다 작은 회사에 취업을 했고, 눈 깜빡할 사이 2년을 지내고 보니 반 년 뒤면 서른이더라, 는 흔한 이야기. 숫자에 연연하지 않으려고 하지만 주변에 잘 휩쓸리는 특성상 마음이 자주 조급해진다. 내 존재는 어느 순간부터 작아졌을까?


 ‘왜’에 매몰되는 순간 어떤 감정이든 걷잡을 수 없이 커져버린다는 건 잘 알지만, 어쩌다 이곳까지 흘러온 걸까 하는 궁금증에 ‘왜’라는 질문을 멈출 수 없게 된다. 철 없는 마음에 주변을 탓해본 적도 있었고, 원망조차 버티기 버거워 마음을 비워본 적도 있었지만 결국엔 초예민한 나로 돌아와 버리는 게 정말 힘들었다. 불행은 예술의 뿌리가 되기도 하지만, 과연 나의 어설픈 불행도 그러할까? 나이가 들수록 불행이라는 단어를 믿지 않게 된다. 불행이라는 추상적인 단어보다는, 무능력이라는 확고하고 객관적인 지표가 내 인생을 더 잘 나타내는 것 아닐까. 도대체 나는 언제까지 무능력해야 할까?


 사랑하면 닮는다는 말이 있다. 낭만적인 말로 느껴지겠지만 나는 조금 다르게 생각한다. 사랑하면 당연히 닮는다. 누군가가 맞춰가니까. 나는 무엇을 사랑해야 할까? 무엇이든 나를 닮지는 않았으면 좋겠다. 어떻게든 맞춰갈 테니, 내가 사랑하는 것과 닮아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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