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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스트 1
처음에는 별것 아닌 흔한 열감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틀, 사흘이 지나도록 열이 내리지 않고, 환자는 더 발작적인 기침을 하였으며 기침을 할 때마다 싯누런 가래가 보였다.
오한과 발열. 그리고 호소하는 심한 근육통.
류신은 혹시나 하는 마음에 환자에게 동의를 구하고 혈액검사를 의뢰했다.
- 이건, 선생님. 처음 보는 바이러스입니다.
- 뭐라고요? 기존 바이러스 데이터에 자료가 없나요?
- 네. 이건, 뭔지 알 순 없지만, 신종 바이러스입니다.
창백해진 얼굴로 차트를 들고 온 임상병리사는 규정상 쓰는 마스크가 아닌 좀 더 두껍고 호흡에 불편한,
그러나 비말 차단에는 가장 효과가 높은 수위의 마스크를 연신 추켜올리며 보고한다.
류신은 그저 규정대로 착용하고 있던 자신의 얇은 파란색 마스크에 갑자기 신경이 쓰였다.
비품 물자가 늘 부족하니 이 마스크를 쓰기 시작한 게 한 사나흘 되었나 싶었다.
- 그러면…. 어떤 항생제에도 변화가 없던가요?
류신이 안경알 너머로 병리사를 쏘아보듯 날카로운 눈빛을 보냈다.
- 네. 현재로서는 그렇습니다. 좀 더 알아봐야겠지만, 우리 병리 국에서 보유한 항생제는 이 바이러스에 반응이 전혀, 없습니다. 게다가 이 바이러스는……. 아주 쉽게 전염이 될 가능성이 커요.
- 감기나 인플루엔자보다 말이오?
- 네. 선생님. 잘 사멸하지 않고, 기침으로 나온 비말에도 전염이 됩니다. 만약 환자가 손으로 막으며 기침을 했다면 그의 손과 악수를 한 사람들도 예외가 없을 겁니다.
임상병리사의 보고가 이어질수록 류신은 갑자기 목구멍이 간질간질해지는 느낌이 들었다.
그동안 환자는 개인실도 아닌 12인실에 입원했었다.
찾아봐야 알겠지만, 종합병원의 12인실은 치료 병동이라기보다는 외래환자 중 열이 높거나 추후 관리가 필요한 정도의 환자들이 머문다.
그 때문에 그 나흘간 누가 그곳을 거쳐 갔는지도 조사해야 할 일이지만, 그들을 면회하려고 왔던 수많은 사람.
의사, 간호사, 병원 시설을 관리하고 유지하는 수많은 사람들.
누가 과연 어떻게 일지는 아무도 장담할 수 없었다.
자기 자신도 환자의 손을 잡아 병상에서 일으킨 적이 없다고 할 수 없었다.
마음이 다급해진 류신은 임상병리사를 대동하고 병원장실의 문을 두드렸다.
- 그러니까, 환자를 격리실에 입원시키고 그동안 해당 병실 접촉자를 모두 찾아서 격리조치를 하자? 그런가?
류신과 임상병리사가 급히 면담을 요청하는 바람에 보건관리국에서 나온 손님과의 바둑을 망쳤다고 생각하는지 병원장의 표정은 류신과 같은 긴장이 아닌, 못마땅함이 그대로 표출되어 미간에 주름이 잡혀있다.
- 네. 즉시 하지 않으면 예전의 사스 사태처럼….
‘탕!’
갑자기 주먹으로 책상을 내려치는 병원장 때문에 류신과 병리사는 움찔 선 채로 굳어 버렸다.
- 뭔 헛소린가? 이게 그거랑 같다고 누가 그러던가? 자네, 이제 간신히 수련의 딱지 떼고 임상의로 올라온 거 아닌가? 게다가 전공도 그냥 일반 내과지 않나? 호흡기내과도 아니고.
내가 사스로 온갖 고생을 할 때, 자넨 아마 학생이었겠지? 그리고 거기 자네. 자네 임상 병리 국 근무를 얼마나 했지?
소리 지르듯 외치듯 하는 병원장 서슬에 병리사 이안은 다시 움찔거리다 풀 죽은 목소리로 간신히 대답했다.
- 이, 이년 되었습니다만…….
- 뭐야. 이 풋내기들이 감히, 내 병원에서 사스와 같은 전염병이 새로 돌 거라 말하는 건가? 먼저 호흡기 내과의에게 보이고, 그다음 상급병원에 표본을 보내서 검사를….
- 병원장님. 죄송합니다. 하지만 시간이 없습니다.
류신이 다급한 목소리로 병원장의 거친 말을 자르고 나서자, 병원장이 날카로운 눈으로 류신을 노려보았다.
- 그래? 좋아. 그러면 그 병실을 일단 격리하고, 자네와 자네. 둘 다 그 병실에 입원하게. 일단 그렇게 격리를 하지.
- 병원장님? 이미 그게 뭔지 모르지만 퍼지기 시작했다면 상부에 보고를!
- 이봐. 자넨 임상의 고 난 병원장으로서 명령을 내리는 거야. 지금 와있는 보건성 관리자가 누군지 알아? 후대 보건성장관이 될 사람이라고! 뭐가. 있었든! 다 없었던 일이 되어야 하는 거야! 빨리 나가!
그처럼 병원장이, 의료인답지 않은 이유로, 그토록 폭풍 같은 반응을 할지 몰랐다.
병리사와 함께 병원장실을 나선 류신은 문득 병원 중 제일 경치가 잘 보인다는 최상층에서야 비로소, 병원을 둘러싼 노간주나무 숲이 눈에 들어왔다.
드문드문 눈이 남아 있어도 늘 푸르른 숲은 생명력으로 가득해 보였다.
하늘은 시린 날씨만큼이나 푸르렀다.
류신은 앞으로 얼마나 지나야 병동에서 나설 수 있을지 자신이 없어졌다.
엇비슷한 생각을 했는지 차트를 든 손을 부들부들 떨던 병리사가 처음 류신에 보고하던 것처럼 창백한 얼굴로 투덜거렸다.
- 아, 이게 무슨 일이람. 선생님. 저는 처가 이제 곧 출산이라고요. 그런데 병원에서 격리하라니. 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