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인 백서 11

현재 좌표는 어디인지 아세요?

by 능선오름


이제 8개월 차 된 신입직원이 그만두겠다고 한다.


- 저, 대표님. 일을 그만두고 싶습니다.

- 왜, 많이 힘드나?

- 그냥 이 일이 제게 안 맞는 거 같아서 공무원 시험을 치려고 합니다.

- 공무원? 현실적으로 지금보다 연봉이 1천만 원은 내려갈 건데 괜찮겠어?

- .....



- 아버지 일을 도우려고 합니다.

- 아버지께서 뭘 하시는데?

- 노래방을 5년째 운영 중이십니다.

- 근데 잘 되시나? 요즘 어려우실 거 같은데...

- 네. 코로나 때 힘드셨나 봅니다.

- 그런데, 아버님께서 분점을 내신다거나 그런 게 아니면 아버님 수입을 자네가 1/N 하는 거 아니야?

- ......



- 저, 대표님. 혹시 저 그만두는데 권고사직으로 해주시면 안 되겠습니까?

- 뭐? 그거 불법이야. 자발적 퇴사잖아? (안 그래도 바쁠 때)

- 아니, 그래도 제 일정계획에 좀 달라져서 해주셨으면 좋겠어서...

- 아버님 노래방 운영에 바로 들어가기로 한 거 아녔어?

- 지난번 말씀 하신 대로 아버지 수입 1/N 인 상황이라... 어려울 것 같습니다.

- 엥? 그러면 퇴사하면 당장 할 게 없다고?

- .......

- 아무튼 그건 불법이야.... 우리 회사에서 자발적 퇴사하는데 권고사직이나 해고 처리 한 적도 없고. 불법으로 그럴 수 없지.

- ... 네....



잘 모르겠다.

왜 서른도 안된 직원들이 회사를 그만둘 때 너무나 당당하게 ‘실업급여’를 받으려고 하는지.

그들은 채 몇 달 안 되게 고용보험을 들어놓곤, 그게 무슨 자동차 보험처럼 당연히 자신들이 받을 정당한 권리 정도로 생각하는 것 같다.

그런 식이면 고용보험에서 가진 돈이 아무리 많아도 마이너스 일 것이고,

멀쩡히 수십 년 고용보험을 낸 사람들은 그냥 잃어버리는 돈이 될 터인데.

나만 해도 오래도록 고용보험을 내놓고도 ‘사업자’가 되어 버리는 바람에 온전히 날려먹은 돈인데 말이다.

몇 년 전에는 실업급여를 받아서 동남아 가서 1년 지내도 된다고 희희낙락 계획을 세우는 어처구니없는 말도 들은 적 있으니까.


젊은이들아.

실업급여는 말 그대로 일을 하고 싶지만 회사가 어려워져 강제로 직원을 내보냈을 때 그 직원들이 재취업될 때까지 먹고살기 위한 최소한의 생존수당이야.

그냥 일이 하기 싫어져서 자발적으로 나간 사람들이 일정 기간 공짜로 돈 받아먹으며 놀멍쉬멍 하라고 주는 돈이 아니라고.

도둑질이야.

다른 게 도둑질이 아니라고.

조건도 맞지 않는데 서류 가짜로 꾸며서 나랏돈을 쌈짓돈처럼 빼먹는 거 그게 바로 도둑질이라고.

내가 어느 기간 동안 꼬박꼬박 ‘고용보험’ 냈으니까라고 하기에는 그런 편법으로 빼먹는 돈이 네가 낸 돈보다 훨씬 많다고.

그게 도둑질이야.


제발 정신 좀 차려.

직장생활이 너무나 좋아서 하는 사람이 몇이나 되겠어.

게다가 시작 1년도 안되어 (물론 나름대로의 스트레스는 있겠지. 하지만 그런 논리라면 동급 근로자들이 다 그만둬야 하잖아?) 전공도 다 포기하고 경험도 다 내려놓고 그만두는 모양새면 그건 자네가 스스로 생존할 절박함이 부족한 탓 아닐까?

결국 자네가 우왕좌왕 방황하는 몇 달간 자네의 할 일을 다른 동료들이 대신 짊어지는 배려가 있었음을 모를 정도로 어린가?

월급쟁이 주머니에서 나가는 4대 보험이 아깝다면,

4대 보험 보장이 안 되는 사업장을 찾아가면 돼.

그만큼 보장이 부족하여 나중에 힘들 것 각오하면 되겠지.

그렇게 이십 대 삼십 대 나이에 존재하지도 않는 샐러리맨의 파라다이스를 찾아 헤매다,

나중에 뽑아주기도 어려운 나이가 되어 들락날락 기록이 빼곡한 이력서로 이제 안정된 직장을 찾고 싶다 운운하는 그런 자기소개서 내는 팔자가 되지 말라는 말이야.

정말 많거든.

일 년 단위 혹은 몇 개월 단위로 급여 올려가며 이곳저곳 방황하며 직장인으로서의 황금기를 다 보내버리고,

뜬금없이 대리 월급으로 부장처럼 일하겠다고 자기소개서로 아우성을 친들,

그런 사람을 어떻게 회사에서 믿고 채용할 수 있을까?

자기 경쟁력은 자기가 만들어 가는 거야.

대개 그런 이력을 가진 사람들이 능력 때문에 스카우트 제안을 받아서 이직한 건 아니야.

고작 얼마라도 더 받자는 ‘일당 정신’으로 한창 수요가 많은 젊은 시절을 탕진하고 사십 대가 넘어서야 베짱이처럼 어디라도 의탁하려고 하는 거. 서류로 다 보이거든.


후배야. 정신 차리렴.

기회는 다시 돌아오지 않아.

그리고 왜 중요하디 중요한 자신의 거취에 대해서 잘 알아보지도 않고 그냥 막무가내로 결정을 하지? 그건 소신도 뭣도 아니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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