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울한가요
한 달 반 정도를 우울증 약에 기대어 보다가 약을 멈췄다.
물론 불면증으로 인한 약은 여전히 복약 중이지만 말이다.
우울증이란 것을 내가 경험해 보리라는 생각은 해본 적이 없었다.
그러다 문득 내 상태가 우울증 상태라는 것을 깨닫게 된 것은,
자율신경이 제멋대로라는 것을 경험하고 나서였다.
손발에 땀이 주체 못 할 정도로 나거나, 늘 나도 모르게 어깨에 힘을 주고 있어서 마치 누가 어깨 위에 올라타 있는 것처럼 무겁고 버거운 상태.
그 상태를 문득 깨달아서 애써 어깨의 힘을 빼고 움직이면 나도 모르게 얼굴 근육이나 목 근육에 힘이 팽팽하게 들어가 있는 상태.
심지어 콧대나 광대뼈, 귀에 연결된 근육들이 제멋대로 힘이 들어가는 상태.
종일토록 나도 모르게 힘이 들어간 근육들과 다투다 보면 저녁 무렵이 되면 온종일 노동이라도 한 것처럼 기운이 소진되는 상태들.
이것저것을 찾아보니 결국 우울증과 우울증에 따라 수반되는 자율신경 실조증과 비슷한 증상들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의사에게 나의 상황들을 토로하고, 그에게서 처방받은 약을 복용했다.
그러면 또 종일 머릿속이 뭔가 엉켜있는 것처럼 멍청한 상태가 된다.
그래서 마인드 셋을 반복하는 걸로 우울증 약을 대체했다.
그렇다고 증상이 완전히 좋아진 것은 아니나, 스스로에게 계속 나는 지금 우울한 게 아니야.
그저 이런저런 외적인 안 좋은 상황들이 연거푸 생기니 자꾸 내 속으로 마음이 웅크리고 들어가는 것뿐이야 하고 되뇌며 버텨낸다.
담당 의사에게 불면증 약에 대한 혹은 우울증 약에 대한 탈출 방법을 물어보아도,
그가 가진 대응방법으로 사용할 수 있는 약물이란 게 지극히 제한적인 수단이라서 그에게서도 답은 없었다.
나 또한 과거에 주변에서 우울증 이라거나 공황장애가 있는 사람들을 마주하면 마음속으로 그건 아마도 그 사람의 마음이 지극히 나약하고 의지가 박약해서라고 생각하는 경우가 있었다.
그러나 내가 그런 상태를 겪어보니, 정작 나 자신은 간신히 견뎌내는 상태일 뿐 주변 사람들은 겉보기에 크게 문제없어 보이는 내가 그럴 거라곤 생각도 하지 않았다.
그렇다고 내가 굳이 내 상태를 숨기는 경우는 별로 없다.
특별히 비즈니스 관계로 맺어진 상대라면 당연히 티를 낼 순 없지만,
주변 지인들에게는 납득하긴 어렵겠지만 내가 지금 그런 상태이니 평소와 다른 부분이 있더라도 이해해 달라 양해를 구한다.
그러나 사람의 마음이란,
상대가 큰 상처를 입은 상황을 보고 연민은 가질 수 있지만 당장 내 발등에 꽂힌 가시 하나에 더 큰 통증을 느끼는 법이라는 것을 안다.
나 역시도 그러했으니까.
생각해 보면 지금 현재의 내 외적 상황보다도 더 어렵고 더 힘들었을 상황들이 과거에도 숱하게 있었다.
단지 지금의 내 마음이 여러 형태로 약해져서 더 크게 느끼는 것일 지도 모른다.
대학원 후배에게서 부재중 전화가 왔어서 전화를 했다.
대뜸 형님 목소리가 왜 이렇게 안 좋냐며 안부를 묻는다.
그렇게까지 티가 났었을까 싶어서 내가 요즘 우울증 때문에 좀 힘들어서 그럴 거라 말했다.
헌데 그 후배 안부를 물으니, 한동안 신장이 많이 안 좋아서 약을 복용했었는데,
그 약물의 후유증으로 한쪽 다리에 괴사가 일어나서 다리가 좀 불편해졌다고 한다.
몸조리 잘하라고 말을 하고 전화를 끊고 보니,
상대적인 비교는 어렵겠지만 한참 아래나이의 젊은 친구가 그런 병을 앓고 있다는 게 어쩌면 더 우울할 일일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쨌거나 나는 마음은 힘들어도 몸은 아직은 잘 움직이고 있으니 말이다.
그리 생각하면 현재 세상을 살아가는 사람들 중에 우울할 마음의 틈새도 없이 살아가야 하는 사람들도 참으로 많겠구나 싶다.
거래처 사장님 중에는 몇 년 전에 스물 중반의 딸을 지병으로 잃는 경우도 있었으니까.
자식을, 그것도 다 큰 자식을 잃은 부모의 마음이 어떨지는 차마 헤아려지지도 않는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니 그 사장님도 여전히 열심히 웃어가며 업을 하고 있는 걸 보니,
그 속마음이야 어찌 되었을지는 몰라도 현재를 열심히 살아가는 모습으로 보인다.
결국 시간이 모든 것을 순응시키고 나아지게 만들지는 못할지라도,
현실 현재를 살아가야 한다는 마땅한 적응은 하게 만드는 것 같다.
우울한 마음이 치달을 때면 나를 제외한 세상의 모든 사람이 행복해 보이고 부럽다.
그러나 그들 역시 마음 한 구석에 우울할 수 있는 덩어리 하나쯤 다들 가지고 있을 것이다.
그러다가 거리를 지나는 정말 힘들어 보이는 상황의 사람들을 흘깃 바라보면,
아 그래도 내가 저 이들보다는 낫구나 도 싶다.
비교할 문제가 아니다.
비교라는 것이 더더욱 우울을 깊게 만든다.
그런 상황에서도 웃음 짓고 열심히 자신의 일에 몰두하는 사람들을 보면 경외감에 젖는다.
저게 사는 거구나 싶다.
상황과 처지는 저들에겐 그저 거쳐가는 과정일 뿐이구나 싶다.
나 역시 그럴 것이다.
언젠가는 불면증 약에 의존하는 것도 탈출할 수 있을 것이다.
우울이라는 이따금 엄습하는 불필요하고 가늠하기 어려운 감정들도 마찬가지 일 것이다.
결국은 나 스스로 탈출하고자 마음먹고, 나 스스로 헤쳐 나와야 할 것이다.
그래야 살아가는 거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