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장. 조기 은퇴는 로망이 아니라
시뮬레이션이다

은퇴 준비 - 경제적 체크리스트 3가지

서른 중반, 은퇴한 지 1년이 지났다.

힘들어서가 아니라, 앞으로의 삶을

나다운 선택들로 채우고 싶어서 내린 결정이었다.

그럼에도,

월급이 사라진 자리에서 생각보다 많은 감정들이

돈과 연결되어 있다는 걸 매일 체감했다.


요즘 특히 자주 듣는 질문이 있다.

“얼마 있어야 은퇴할 수 있어요?”


오늘은 그 질문에 답하면서,
은퇴하기 전으로 돌아간다면 가장 먼저 계산해 볼

경제적 3가지를 정리해보려 한다.


1. “얼마 있어야 은퇴할 수 있나요?”
— 생활비는 절대 축소해서 잡지 않는다


은퇴하기 위한 최소 자산 규모를

구하는 건 의외로 간단하다.

현재의 월 생활비 × 12 ÷ 현실적인 수익률


예를 들어,

월 300만 원이 필요하다면 연 3,600만 원이고,
이를 금융 수익률에 따라 나눠보면 다음과 같다.

연 3% 수익률 → 약 12억
(나는 보수적으로 접근하여 연 3%로 계산했다)

연 4% 수익률 → 약 9억

연 5% 수익률 → 약 7.2억


이 간단한 계산만으로도

은퇴 가능 여부는 꽤 선명하게 드러난다.

문제는 계산식이 아니라,

대부분 생활비를 축소해서 잡는 데에 있다.


“아껴 살면 되지”라는 착각

많은 사람이 은퇴를 생각할 때,
자기도 모르게 줄어든 소비를 전제로 한다.

비싼 여행지는 덜 가겠지

취미는 줄이겠지

외식도 줄겠지

하지만 실제로는 그 반대다.

직장을 그만두면,
무엇보다 먼저 시간의 여유가 생긴다.
그리고 이 여유는 지출을 줄이기는커녕, 확장시킨다.


예를 들어,

여행: 날짜 제약이 없으니 더 자주 간다
(절약형이라도 '횟수'가 늘어 총액은 줄지 않는다)

만남: 시간 여유가 생기면 자연스럽게 늘어난다

문화생활, 취미, 운동: 훨씬 더 많이 한다

나는 이 비용을 루틴비라고 부른다.


직장인일 때는 루틴비가 생존비보다 커지면

“조금 사치하네”라고 느끼기 쉬웠다.
하지만 은퇴 후에는 루틴비가 무너지면

하루의 에너지가 쉽게 바닥나고

불안감이 훨씬 커진다.


생활비 계산 방식

(최근 3개월 전체 지출 − 반복 가능성이 거의 없는 일회성 지출) ÷ 3

여기서 말하는 일회성 지출은
이사비, 큰 병원비, 아주 특별한 이벤트처럼
정말로 다시 반복되지 않을 항목들이다.


다시 말해,

'절약 잘하는 나'가 아니라,

'지금의 나' 기준으로 계산해야 한다.


2. 은퇴를 버티게 하는 건
'자산의 크기'가 아니라 '현금흐름 주기'다


직장에서는
자산 규모가 심리적 안정의 기준처럼 느껴진다.
나도 그랬다.

그래서 예금통장에는 300만 원 이상을 두지 않았다.
쓰지 않을 돈은 모두 투자했고,
자산이 얼마나 불어났는지가
내 상태를 대변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하지만 퇴사 후 첫 달,
입금 내역이 텅 빈 통장을 보면서 깨달았다.

나를 안정시키는 건 자산 총량이 아니라,

정해진 주기에 돈이 들어오는 구조라는 점을.


그래서 나는 포트폴리오를 전면 재구성했다

은퇴 직후, 자산 유형을 3가지 기준으로 분류했다.

예측 가능한 흐름형 자산
(배당 / 월세 / 채권 이자)

평가차익 중심 자산
(성장주 / ETF / 장기 포트폴리오)

유동성 자산
(CMA / 예적금)


이 세 가지를 조합해
“얼마가, 언제 들어오는가”를 중심으로 재설계했다.

월세 → 매월

배당 → 분기·반기

채권 → 월·분기

CMA → 필요시 즉시

입금 주기가 구조화되니

심리적으로 훨씬 안심이 됐다.


나의 포트폴리오 Before vs. After

Before (은퇴 직전)

부동산 20%

미국 주식 80% (그중 약 90% 성장주)
→ 수익률은 양호했지만 월 현금흐름은 사실상 0원

After (은퇴 직후 재설계)

부동산 20%

미국 주식 40% (배당 기업 40%, 성장주 60%)

미국 채권 30%

CMA 10%
→ 월세 + 배당 + 이자 흐름이
‘월급의 빈자리’를 대체하는 구조가 됐다.


핵심은 남들의 포트폴리오가 아니라

내 소비 패턴에 맞는 흐름을 설계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지출이 월 단위로 고르게 발생한다면
→ 월세·채권 비중을 조금 더 늘리는 게 맞고

여행·취미 등 분기별 큰 지출이 많다면
→ 분기 배당 구조가 더 유리하다

갑자기 큰 비용이 발생할 가능성이 있다면
→ CMA·단기채 비중을 키워야 한다


3. 은퇴 후 나를 미치게 한 건
'고정비'가 아니라 '충격형 출금'이다


직장 다닐 땐 거의 체감하지 못하지만,

은퇴 후에야 비로소 충격이 되는 3대 비용이 있다.

건강보험료

국민연금 납부 여부

세금 (특히 종합소득세)


건강보험료 — 보험료가 X원 늘었습니다

직장인은 보험료를 이렇게 낸다.

보험료는 월급 기준으로 산정되고

회사가 50%, 본인이 50% 부담하며

월급에서 자동 차감된다

그래서 “내가 돈을 내고 있다”는 체감이 거의 없다.


하지만 퇴사하면 자동으로
직장가입자 → 지역가입자로 전환되면서
비용 산정 방식이 완전히 달라진다.

소득, 재산, 자동차, 금융자산, 임대소득, 배당, 이자

이 모든 요소가 보험료에 반영된다.

“월급이 없으니 보험료도 줄겠지?”라는 생각은

완전히 틀린 전제다.


퇴사 후, 자기 부담 보험료는 2배 이상 상승했다.

문제는 금액 그 자체보다,
입금은 없고 출금만 있는 구조가

매달 반복되는 것에서 오는 심리적 압박이었다.


국민연금 — 내야 돼? 말아야 돼?

수입이 없으면 국민연금은
일시적인 납부 중단이 가능하다.

그래서 나도 고민했다.

“고정 수입도 없는데, 그냥 안 낼까?”

지금까지 낸 금액 기준으로,
나중에 받을 예상 연금은 100만 원이 되지 않았다.

이 사실이 오히려 더 큰 불안을 키웠다.

그래서 나는 이렇게 정리했다.

“경제적 효율보다,
미래에 대한 심리적 안전을 위해
최소 100만 원 정도는 받을 수 있게 맞춰가자.”

국민연금은 ‘투자 수익률’ 관점의 상품이라기보다,
심리적 안전장치에 가깝다.

그래서 나는 지금도 자발적으로 납부를 이어가고 있다.


세금 — 제발 그만 좀 가져가세요

퇴사 후 첫 해,

종합소득세를 보고 적잖이 충격을 받았다.

“지금은 예전만큼 벌지도 않는데,
왜 세금이 이렇게 많이 나가지?”

세금이 갑자기 늘어난 게 아니라,
그동안은 세후 금액만 보고 살았을 뿐이었다.

머리로는 이해되지만,
체감상으로는 매우 속이 쓰렸다.

충격을 줄이는 유일한 방법은

얼마 나갈지를 미리 인지하는 것.

즉, 모르는 비용을

예상 가능한 비용으로 바꾸는 것뿐이다.


은퇴는 로망이 아니라 시뮬레이션이다.

아무리 멋진 비전이 있어도
현금이 없으면, 지속할 수 없다.

‘돈이 많아야 은퇴할 수 있다’는 말이 아니다.
지금의 자산과 지출 구조로,
내가 몇 년을 버틸 수 있을지를
구체적으로 계산해 보라는 얘기다.


이 글이
‘막연한 불안’에서 ‘선명한 숫자’로
한 발 더 나아가고자 하는 누군가에게
작은 도움이 되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