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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게 Oct 31. 2024

묵직하게 읽기, 고골의 외투(1842)

당신에게 피가 되고 살이 되는 세계문학_03



* 책의 내용과 결말이 담겨 있습니다. *






" 우리는 모두 고골의 「외투」에서 나왔다

                    -  표도르 미하일로비치 도스토예프스키 "





외투. 얼마나 글을 쓰기에 매력적인 피사체인가. 밖에서의 차가운 추위를 막으며 동시에 주변인에게 가장 먼저 보이는 그 사람의 아이콘이다. 안감에 따라 가격도 천차만별인 것이 나에게 맞는 디자인을 찾기 위해서는 많은 발품이 필요하고, 지속적인 관리가 필요하나 결국 끝내 헤지는 날에는 과감히 버리고 새로운 것으로 교체할 수밖에 없다. 들인 돈과 만족감이 늘 비례하는 것은 아니지만 외투가 주는 충족감과 만족감에 도취되는 시간은 누구에게나 있다. 그 기간이 길 수도 짧을 수도 있지만 말이다. 추위에 얼어 죽지 않도록 지켜주는 단열재 그 이상의 역할을 사람들에게 부여받는 것이다. 외투만 그러하겠냐마는, 유독 외투는 그러하다.




이 책은 그런 외투를 가장 만족스러운 시기에 잃고 목숨도 함께 잃어버린 인물, 아카키에 대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 과연 도스토예프스키는 왜 우리들 모두가, 전 인류가 이 책에서 나왔다고 한 것일까. 그 궁금증 때문에 외투를 여러 번 다시 읽어 왔다.




아카키는 공문의 오탈자를 찾아 고치는 정서 작업이 유일한 업무인 관청의 가난한 공무원이다. 그는 정서 작업을 하며 유력가인 수신인에게 메시지를 전하는 역시 유력가인 발신인이 되어 보는 간접 경험을 즐긴다. 그에게는 그 체험이 유일한 즐거움이며 삶의 낙으로 그 외에는 그 어떤 것에도 흥미를 갖지 않는다. 자아실현의 욕구가 지배한 인간으로 그 외 욕구에는 관심이 없는 인물이다. 그 체험이 다른 이들에게 무의미해 보이고 무지해 보이며 어리석어 보인다 할지라도 그에게는 역시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다. 상관이 성실한 모습에 감탄하여 보다 의미 있는 업무와 승진을 제시해도 한사코 거절할 따름이다. 조용하고 편안한 내재적인 삶 속에서 - 그에게 한 가지 문제가 생긴다. 바로 러시아 북방의 혹한과 헤져버린 외투이다.




너무 낡아버린 외투는 그를 현실의 세계로 끄집어낸다. 수선을 거절하고 새 외투를 맞출 것과 엄청난 금액을 제시하는 수선공의 제안은, 그를 딱딱한 현실의 땅바닥에 던져버린다. 기어코 맞춘 외투를 입고 처음으로 직장 동료들과의 축하 파티에 참석한 날, 집으로 돌아오는 어두운 광장에서, 그의 외투를 빼앗아 달아난 괴한들은 그를 절망케 한다. 사건을 해결하고 외투를 찾아달라는 아카키의 간절한 부탁을 순전히 젠체하기 위한 이유로 거절하고 힐난하며 집 밖으로 쫓아낸 경찰서장과 ‘중요한’ 인사는, 결국 그를 열병에 걸려 땅 속에 묻히게 한다.


멋지고 튼튼한 새 외투를 맞춰 입은 아카키의 행복이 뒤집혀 절망과 죽음에 이르기까지는 단 며칠이 걸리지 않았다. 며칠 만에 그의 평온했던 내재적 삶은 산산이 깨어지고 행복에서 죽음까지 곧장 롤러코스터를 탄다. 이 이야기는 아카키가 유령이 되어 광장을 떠돌며 관리들의 외투를 훔친다는 다분히 환상적인 설정으로 끝맺는데, 그 당시 이 책을 읽은 이들은 주점에서 어두운 광장을 보며 이 이야기가 실제 일어난 일을 바탕으로 했다며 술 취해 주절거렸으리라. 그렇게라도 울분을 토로하게 하는 결말이 고골의 아카키 같은 이들을 향한 위로였을 것이다.




아카키는 개구리이다. 무심코 던진 돌에 맞아 죽은 개구리 말이다. 아무도 없는 숲 속에서는 2024년의 콘텐츠이고, 외투는 1842년의 콘텐츠인데 같은 이야기를 하고 있다. 그러니까 고골은 182년 전부터 개구리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평온해 보이는 일상도 어느 짧은 한 순간에 기울어 지옥불에 던져질 수 있다는 것. 그런 사람들이 늘 곁에 있다는 것. 언제라도 기꺼이 내가 그런 존재가 될 수 있다는 것을 말이다. 결국 우리는 모두 언제라도 아카키가 될 수 있는 개울가에 개구리일 뿐이다. 한 없이 나약하고 작은 돌에도 사라져 버릴 나약한 존재 말이다. 누군가는 이를 알고 있고 누군가는 자신의 죽음을 생각해 본 적도 없겠지만, 불행은 장님이라 사람을 가리지 않는다. 도스토예프스키는 그런 우리 나약한 인간에 대한 깊은 연민에서, 우리 모두는 동등하게 이 책, 고골의 외투에서 튀어나온 형제이다 - 고 말하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불행을 막을 수 없다면 우리는 당장의 행복에 집중할 필요가 있다. 지금 당장에 이 음절들을 읽고 나서 나를 향해 집채 만한 차가 돌진할 수도 있다. 그렇지 않고, 당신이 지금 이다음 음절까지 읽어나갔다면, 당신은 그만큼을 더 살아낸 이후이다. 기쁘게도 나의 나이만큼이나 살아내었고 지금 따뜻한 외투로 추위를 막아내고 있음을 새삼 인지했다면, 움직이자. 하고 싶은 것들을 당장에 하자. 행복을 위한 일들은 뒤로 미루지 말자. 당신에게나 나에게나, 내일이 없을지도 모르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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