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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게 Aug 23. 2024

어느 동백과 굴레에 대한 이야기

가볍지 않다는 것에 대한 안도_08




분재 : 보통 척박한 땅에서 자라 몸집이 작은 나무를 화분에 담아 기르는 것.

생장에 필요한 최소한의 환경만을 조성하여 식물을 작게 오래 기르는 것.

철사로 가지를 감아 원하는 모양으로 꺾어 독특한 수형을 만들며 기르는 것.








덜컥 동백 분재를 사고 마음이 바닥에 가 닿았다. 작은 화분, 한 움큼도 되지 않는 흙 속에는 크기에 맞추기 위해 아주 적게 잘리고 남은 약간의 뿌리 뭉치만이 담겨 있었다. 작고 큰 모든 줄기가 굵은 철사에 감겨 바람이 불어도 옴짝 달짝하지 못했고, 적은 흙은 물을 오래 머금지 못해 빠르게 말라 그는 매일 목이 말랐다. 그럼에도 겨울이라고 작은 꽃이 아름답게 피어난 이 동백을, 동백 분재 화분을 기르며 무거운 마음은 내내 가벼워지지 않았다.




자연에 식물들을 뽑아 화분에 기르는 것 자체가 반자연적이고 인공적이라면, 그중에서도 분재는 거기에 고문을 더하는 것처럼 느껴진다. 실내의 빛과 습도와 바람을 식물의 성장을 위해 실외처럼 조정하면서, 동시에 굵은 철사로 생장을 막아 생명을 원하는 모습으로 고정하는 것은 참 아이러니하다. 살아있는 박재처럼. 사람으로 따지면 가둬두고 묶어둔 체 최소한의 음식만을 제공하여 키 작은 어린아이의 모습으로 나이 들게 하는 것이 아닌가. 그럼에도 처량하게 꽃을 피우는 동백은 그 해 겨울을 견디고 봄에 이어 처음 모습 그대로 초여름을 맞았다.




아는 동생과 동네에서 맥주를 마시다 헤세의 데미안에 대한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다. 기어코 싸우는 새가 벗어나는 알은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각자의 굴레를 의미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사람들도 각자의 굴레에 갇혀 사니까 말이다. 도망을 가든 도움을 받든 스스로 싸우고 이겨내 입혀진, 혹은 입은 자신의 굴레들을 한 꺼풀씩 벗으면서 살아가는 것 같다. 우리네 삶이 말이다. 어떤 것에도 얽매이지도 얽매지도 않는 자유로운 상태를 늘 꿈꾸며 산다. 가난한 사람은 가난에서, 외로운 사람은 외로움에서, 직업이 없는 사람은 실업에서, 독립하지 못한 사람은 부모님의 품 안에서, 더 이상 살고 싶지 않은 사람은 죽음에서, 벗어나고자 사람들은 투쟁한다. 그러면, 동백은? 남다른 수형을 유지하기 위해 갇혀 있는 나의 동백도 스스로 굴레를 벗을 수 있나? 사람은 도망이라도 갈 텐데, 식물은 도망도 갈 수 없을 텐데. 하는 생각이 들어 잠시 잠깐 말없이 맥주만 홀짝였다.




다음날 아침, 나는 동백을 들고 식물샵을 찾아 분재 해체를 요청했다. 큰 화분에 넉넉한 흙을 담아 분갈이하며 모든 철사들은 오랜 시간에 걸쳐 모두 잘려나갔고 작게 뭉쳐 있던 뿌리도 다리를 쭉 뻗어 발 끝까지 기지개 켜듯 넓게 펴졌다. 그리하여 이제 나의 동백은, 독특한 수형이라 비싼 몸 값이었던 동백은, 다른 동백들처럼 평범한 수형으로 자라고 있다. 가지는 점차 키가 크고 흙은 물을 7일 정도 충분히 머금고 있으며 작은 바람에도 크게 자란 잎들과 가지들은 태어나 처음 추는 사람처럼 춤을 춘다. 주저하던 잎눈이 트여 새 잎이 무수히 자라는 모습을 보면 굴레를 벗고 맨 몸으로 언덕을 힘차게 달려 내려가는 죄수의 모습이 연상된다. 쇼생크 탈출처럼. 나는 자유다 나를 막을 테면 이제 막아봐라. 입과 발이 달렸다면 그렇게 말하며 이미 저 멀리 뒤도 돌아보지 않고 달려갔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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