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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연우 May 30. 2024

한 시간 걸려 만든 멸치볶음

평소처럼 아들 학원 끝날 시간에 맞춰 픽업을 하고 집으로 돌아왔다. 식탁에는 남편이 저녁식사를 마친 반찬과 빈그릇들이 올려져 있었다. 식사를 마쳤으면 설거지는커녕 다 먹은 그릇들이라도 치울 것이지 여전히 그대로 놓고 방으로 쏙 들어가는 남편이 얄미웠다. 하지만 불만사항을 입 밖으로 꺼내지 않기로 했다. 

"식사를 마쳤으면 그릇 정도는 치워줘야 하는 거 아니야?"

"내가 하려고 했었어. 잠시 쉬었다가 치우려고 했었는데 당신이 먼저 치워서 못한 거지."라는 그의 변명을 진작에 들었던 터라 이번에도 똑같은 변명을 늘어놓을게 뻔했다. 설거지를 바로 해치우지 못하고 늦게 치우는 꼴을 못 보는 내가 치우는 게 낫다고 판단했다. 잔소리를 한다고 곧바로 치울 것 같지 않기 때문이다.


빠르게 설거지를 마치고 내일 먹을 밑반찬이 무엇이 있을까 생각했다. 냉장고를 열어 밑반찬을 확인해 보니 몇 가지 나물 종류와 김, 김치 등은 있는데 지난번 만들어놓은 멸치볶음은 벌써 다 먹고 없었다. 오랜만에 만든 멸치볶음이 맛있었는지 남편이 거의 다 먹은 것이었다. 사실 멸치볶음 양이 많지도 않았으니 금세 먹는 것은 일도 아니었을 것이다. 남편은 오랜만에 만든 멸치볶음이 그렇게 맛있었다고 했다. 멸치볶음 하나만으로도 밥을 먹을 수 있겠다며. 예상치 못한 남편의 칭찬에 기분이 좋았던 나는 멸치볶음을 다시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했다. 


남아있는 멸치를 보니 딱 한 봉지가 남았다. 식탁 앞에 앉아 봉투 안에 있는 멸치 양의 반절을 덜어놓고 멸치를 손질하기 시작했다. 멸치 손질하는 동안 심심할 듯하여 50여분짜리 유튜브 강의를 틀어놓고 귀와 눈은 영상에, 내 손은 멸치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시간이 지나 많은 양을 했을 거라 생각했는데 멸치 머리와 똥을 따내니 손질된 멸치의 양이 처음보다 반정도로 줄었다. 생각보다 많지 않았다. 실상 몇 주먹 안 되는 양이다. 


이제는 식탁을 정리하고 본격적으로 멸치볶음을 해야 할 때다. 먼저 손질한 멸치를 전자레인지에 넣고 수분기를 날려주어 바삭하게 한다. 그리고 멸치의 뜨거운 김을 잠시 식히는 사이 양념장을 만든다. 미림, 설탕, 마늘, 고추장, 물엿, 간장을 넣고 양념장을 만든다. 프라이팬에 식용유를 넣고 멸치를 식용유로 코팅해 준 다음 양념장을 넣고 볶아준다. 원래는 양념장을 넣고 양념이 살짝 끓은 후에 멸치를 넣어야 하는데 식용유 코팅한 멸치를 잠시 내놓고 양념장을 끓이기가 번거로워서 그냥 섞는다. 그래도 맛은 똑같다. 마지막에 참기름을 두르고 통깨까지 뿌리면 멸치 고추장 볶음 완성이다. 특별히 어려울 것도 없는 멸치볶음은 한입 먹으면 바삭하기도 하고 매콤 달달하니 맛있다. 먹을 거 없을 때 밑반찬으로 딱이다.


완성된 멸치볶음을 그릇에 담고 보니 중간 크기 유리그릇 하나에 가득이다. 한 시간 가까이 멸치를 손질하고 10여분 동안 양념으로 볶아낸 멸치볶음인데 양이 별로 없어 조금 허망하다. 이래서 밑반찬을 사다 먹나 싶다. 시간 투자 대비 양은 적지만 내 손으로 직접 만들어서 우리 가족과 함께 먹을 수 있으니 좋은 거 아니겠는가. 이번에 멸치볶음을 다 먹으면 멸치 손질하는 것만큼이라도 남편의 손을 빌려야겠다. 맛있게 먹어주는 것도 좋지만 멸치 손질하는 시간이 너무 오래 걸리니 나의 수고도 좀 알아줬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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