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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연우 May 31. 2024

맛없는 걸 맛없다고 말을 못 해

말할 수 없는 슬픔

사건의 발단은 저녁을 다 먹은 식탁에서였다. 퇴근하고 장을 봐온 남편과 혼자서 식사를 끝낸 나는 시시콜콜한 대화를 이어나가고 있었다. 그러던 중 남편은 오랜만에 아이들과 빵을 다시 만들어야겠다고 했다. 그 말을 들은 나는 예전에 만든 빵맛이 생각나서 그때 만들었던 빵이 퍽퍽해서 맛이 좀 없었다고 말했다. 그랬더니 갑자기 남편이 화를 버럭 냈다. 맛이 없었다니 맛있게 먹어놓고 딴소리를 한다고 정색을 했다. 어떻게 엄마라는 사람이 딸이 만든 빵이 맛이 없었다고 말할 수 있냐며 나를 이해 못 하겠다며 이상한 엄마로 몰아갔다. 별생각 없이 나는 느낀 그대로 말한 것뿐인데 남편의 어이없는 비난을 들으니 점점 화가 났다.

"자기야, 이게 싸울 일이야? 그때 빵을 만들어줘서 먹긴 했지만 좀 퍽퍽해서 맛이 없었다고 말한 것뿐인데 그게 그렇게 잘못이야?"

"그럼. 딸이 만들었으면 맛있다고 해야지. 맛없으면 먹지를 말던가. 실컷 다 먹어놓고 이제 와서 맛없다고 하나? 앞으로는 당신이 만들어 먹어."

"아니, 맛없었다는 걸 맛없다고 하는 게 화낼 일인가? 음식을 만들지 못하더라도 맛이 있다, 없다고 평가는 다들 하지 않아? 밖에 나가서 사 먹는 음식도 맛있다, 맛없다 하는 판에. 빵을 만들지 못하면 그런 이야기도 못하나?"

남편과 나의 이야기는 좁히지 못하고 결국 남편은 딸까지 소환했다. 남편은 딸에게 이 모든 상황을 이야기했다. 상황을 전해 들은 딸의 표정은 굳어졌다.

"어떻게 엄마는 빵이 맛없었다고 말할 수 있어요? 그때 빵을 먹었으면서. 그럼 맛없는 빵을 왜 먹었어요? 빵을 먹지 말던가. 잘 먹어놓고 왜 맛없다고 해요?" 갑자기 딸은 눈물을 뚝뚝 흘리더니 답답한 듯 울기 시작했다. 상황은 점점 이상해져 갔다.

'이건 무슨 상황이지? 왜 일을 이렇게 키우지? 내가 그렇게 잘못한 것인가?'


아무튼 그날 남편과 나는 기분이 서로 상할 만큼 상했고 딸도 방으로 들어가 버렸다. 식탁에 멍하니 앉아 생각하니 이렇게 일을 키운 남편의 행동에 화가 많이 났지만 딸의 마음이 걱정돼서 딸을 불러냈다.

"00아, 엄마가 빵이 맛없다고 했던 거 미안해. 네가 만든 모든 빵이 맛없었다는 것이 아니라 작년에 만들었었던 빵 중에 발효가 덜 된 것이 좀 퍽퍽해서 맛없었다고 했을 뿐이야. 기분이 나빴다면 정말 미안해."

"그런데 00아, 빵 만드는 실력이 늘려면 맛없다고 하는 평가도 들어봐야 하는 거야. 왜 맛이 없었는지를 생각해 보고 수정하면 더 잘만들 수 있지 않을까?"

나는 나름대로의 이유를 덧붙이며 사과했다. 내 말을 듣고 있던 딸은 화가 좀 가라앉은 듯했고 다행히 기분이 풀려 방으로 들어갔다.


이 어이없는 일을 겪고 난 후 남편과 딸은 주말에 빵을 만들었다. 이번에 만든 빵은 내가 먹어봐도 맛있었다.

"이번에 만든 빵은 먹을 만 해? 맛있어?" 남편이 작정하고 물어본다. 내 대답은 정해졌다.

"어. 이번에 만든 빵은 맛있네. 발효도 잘 되었고."


며칠 후 이 이야기를 직장동료와 친구에게 이야기했다.

" 혹시 T세요?하하하. 저는 맛없다고 해도 괜찮던데. 저도 빵을 자주 만들었는데 그런 평가를 해줘야 좋더라고요."

빵 만드는 것을 좋아하는 동료는 이렇게 말했다.

"그니까. 나도 그럴 것 같은데 기분이 엄청 나빴나 봐. 아니면 내 칭찬이 듣고 싶었나?"

"아마도 네가 맛있다고 리액션을 해주거나 칭찬해 주기를 바랐나 봐. 반대로 생각하면 기분이 나쁠 수도 있긴 한데 그렇게 싸울 일은 아닌 거 같은데."

"그렇지? 암튼 맛없다는 걸 맛없다고 말을 못 해."




*이미지출처: 픽사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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