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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ali Whale Mar 19. 2024

굿바이 엄마: 내가 게이라고?

둘은 서울로 가는 광역버스를 탔다. 경기도 남쪽의 구도시에서 서울 홍대까지 가기 위해서는 광역버스를 타고 종로까지 가서 다시 지하철을 갈아타야했다. 불금의 퇴근시간은 어디로 가나 꽉꽉 막혀있었다. 종로에 도착했을 때는 러쉬아워가 지난 시간이었음에도 지하철은 만원이었다. 미소는 조금이라도 덜 어려보이기 위해 한껏 멋을 내고 나온 듯 했다. 상체를 움직이면 허리와 배꼽이 살짝 살짝 보이는 길이가 짭은 상의에 이제 막 가격표를 뗀 것 같은 빳빳한 스커트를 입은 미소가 인파에 밀려 기우의 품속으로 들어왔다. 무엇을 입을까 한참을 고민했지만 결국 검정색 티셔츠에 청바지를 입은 기우는 넘어지지 않으려고 있는 힘껏 지하철 고정바를 잡았다. 번들거리는 미소의 핑크빛 립글로즈가 쿵 하는 충동에 기우의 가슴팍에 쪽 하고 찍혔다. 에어컨이 세게 틀리고 있었지만 이마 위로 땀이 맺혔다.


지하철 문이 열리자 둘은 튕기듯 밖으로 나왔다. 2호선 홍대입구역은 오래된 형광등이 한 쪽 끝에서 깜박거리는 누렇고 낡은 지하철역이었다. 지하철이 들어오고 사라지는 터널 안쪽에서는 쥐라도 뛰어 나올 것처럼 음산했지만 금요일의 역사에는 사람들이 가득했다.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밖으로 나오자 대학생으로 보이는 젊은 사람들과 중고등학생으로 보이는 애들도 꽤 눈에 띄었다.


핸드폰 지도 어플을 이용해 미소가 미리 알아두었다는 가게를 찾아 걸었다. 골목골목으로 들어가자 여기저기서 음악소리가 새나왔고 놀이터나 공터가 있는 곳에서는 버스킹이 한창 이었다. 미소의 발길이 멈춘 곳은 낮은 상가건물의 지하로 들어가는 입구 앞이었다. 간판이 없어 겉보기에는 어떤 가게인지 알 수가 없었다. 9시가 넘은 시간이었지만 아직 오가는 사람이 없는 것을 보니 오픈 전 인 것 같았다. 


미소는 입구가 보이는 길 건너 편 공터의 보도블록에 쪼그리고 앉았다. 무릎을 움직일 때마다 치마 안쪽으로 속옷이 보일락 말락했다. 기우는 뻘쭘하게 서서 핸드폰에 시선을 고정하고 있었다. 윙 하는 모기 소리가 귓가를 맴돌았다. 언제까지 이렇게 기다리냐고 한 마디 하려던 찰나, 입구 안쪽에서 사람들이 나왔다. 어디에서 모여 들었는지 사람들이 삼삼오오 지하로 내려갔다.  


- 야. 그냥 당당하게 들어가. 알았지?
 
 미소가 기합이 가득 든 목소리로 기우에게 말했다. 둘은 약속이나 한 것처럼 허리를 꼿꼿이 세우고 고개를 불량하게 치켜들었지만 그게 더 어색했다. 미소는 처음의 기세와 달리 바로 길을 건너가지 않고 가게의 반대 방향으로 꽤 걸어갔다. 그러더니 마음에 각오가 섰는지 단호하게 몸을 돌려 다시 입구 방향으로 성큼성큼 걸어갔다. 1층의 유리문을 열고 지하로 들어가려는데 입구에서 직원이 그들을 저지했다. 


- 남자 분은 입장 안 되십니다.    

- 얘 게이에요. 

- 네, 손님, 두 분다 신분증 좀 확인하겠습니다. 

- 저 여기 대학생이거든요. 

- 네 학생증 확인하겠습니다. 


당황한 미소가 기우를 끌고 밖으로 나왔다. 주민등록증을 확인할까봐 잔뜩 쫄아있던 기우는 자신이 남자라는 것만으로 입구컷을 당했다는 것이 황당했다. 둘은 건너편 공터 안쪽으로 재빠르게 걸어갔다. 


- 게이? 너 진짜 제정신이냐?

- 아니면 됐지 어쩌라고.

- 뭐야. 남자는 못들어 간다고 왜 말을 안 했어?

- 난들 알았냐? 대충 우기면 될 줄 알았지.

- 와. 얘 진짜 대책 없네. 여기 도대체 뭔데?

- 레즈비언바.

- 뭐? 레즈비언?

- 그래. 그거 맞아. 너 뭐 꼰대냐?

- 어휴. 넌 알면서 날 이런데 데려와? 와. 진짜. 너희 엄마 레즈비언이냐?


미소의 표정이 순간 싸늘해졌다.


- 아니 진짜 그렇다는게 아니라. 왜 여기까지 와 계시냐는거지? 내 말은.

- 나도 몰라. 그러니까 알아보러 온거잖아.


미소도 엄마의 카톡에서 이 술집 이름을 확인하고 포털사이트에 검색을 해보면서 당혹스러웠다. 금토일 사막의 신기루처럼 주말밤에만 문을 여는 레즈비언바였다. 주소도 공개되지 않아 옛날에 몰래 파놓은 사촌언니의 인스타 계정으로 들어가 DM을 보내 어렵게 장소를 알아냈다. SNS도 안하는 엄마가 왜 그런 곳으로 가려고 하는지 미소의 머릿속은 온갖 상상으로 어지러웠다. 아빠는 같은 반 남자애의 엄마와 바람이 나고 엄마라고 믿었던 사람은 미스테리만 잔뜩 남기고 자신의 곁을 떠나버렸다.


미소도 짚이는 구석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었다. 10년 전쯤 이었다. 학교를 다니던 때인지 유치원 때인지 기억은 안 나지만 밤중에 엄마가 짐을 싸는 소리가 들렸다. 가방을 들고 나가는 엄마를 잠결에 따라갔을 때 문밖에서 다른 여자 목소리가 들렸다. 미소는 신발도 신지 않고 대문 밖으로 나갔다. 미소는 꿈인지 생시인지 분간도 못한채 엄마를 끌어안고 가지 말라고 붙잡았다. 그때 엄마 옆에는 이전에 본 적없는 아줌마가 있었다. 화가 난 것도 그렇다고 우는 것도 아닌 알 수 없는 표정으로 엄마와 자신을 쳐다보던 그 눈빛이 한동안 잊혀지지 않았다. 다음날 엄마의 가방은 다시 장롱 속에 들어가 있었다. 그 뒤로 한 두 번 더 집 앞을 배회하던 그 아줌마를 본적이 있었다. 마지막으로 본 것은 중학교 때였다. 친구가 거의 없던 엄마를 찾아오는 유일한 사람이었다. 집 앞에 차를 세워놓고 둘은 앞좌석에 앉아 심각하게 얘기를 하고 있었다. 팔걸이 위에 두 사람이 잡은 손이 유독 단단해 보였다. 신경이 쓰였지만 엄마의 짱친이려니 하고 애써 무시했다. 


엄마는 여느 엄마들과 크게 다르지 않았지만 여느 아내와 같진 않았다. 미소가 아는 한 엄마 아빠는 단 하루도 같은 방에서 자지 않았다. 어릴 땐 엄마가 아빠가 아닌 자신과 매일매일 같이 잔다는 것이 신이 났지만 나이가 들면서 보통 다른 부모님들은 한방을 쓴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미소는 그저 둘이 사이가 좋지 않아 그러려니 했었다. 몇 없던 미소의 친구들의 부모님도 특별히 사이가 좋은 사람은 한 명도 없었다. 하지만 엄마아빠는 싸우지 않았다. 둘은 서로를 싫어하는 것 같지는 않은데 왜 사이가 좋지도 않은걸까? 하는 궁금증이 한동안 있었다. 


중학생이 되면서는 엄마가 계속 자신과 같은 방에서 자는 것이 짜증났다. 엄마의 옷과 화장품, 가방, 책 같은 것들이 자신의 물건과 함께 어지럽혀져 있었다. 크게 잔소리를 하진 않았지만 침대에 누워 게임을 하거나 핸드폰을 할 때 엄마가 항상 같이 있다는 것도 싫었다. 일부러 이어폰을 끼고도 소리를 최대로 높여 엄마를 자극하기도 했다. 방이 두 칸뿐인 작은 빌라에서 엄마가 내 방을 떠나 갈 곳은 없었다. 아무리 짜증이 나도 차마 엄마에게 아빠 방으로 가면 안 되냐고 말할 순 없었다. 왠지 그 말까진 해선 안 된다는 걸 미소도 어렴풋이 알았다. 그러면 진짜 엄마가 선녀와 나뭇꾼 이야기 속의 선녀처럼 선녀옷을 갈아입고 떠날 것만 같았다. 


- 그래서 어떡할 건데? 


기우가 물었다. 미소라고 뾰족한 답이 있는 것은 아니었지만, 이대로 돌아갈 수는 없었다. 한참 동안 입구를 주시하던 미소가 주변 가판대로 달려가더니 까만 모자를 하나 사서 쓰고 왔다. 12시가 넘어가면서 사람들이 북적였고 둘을 저지 하던 직원이 담배라도 피려는 듯 건물 밖으로 나가는 것이 보였다.  


- 기다려. 난 가서 확인해보고 와야겠어. 

- 어떻게?


미소는 사람들 속에서 그 누구의 일행인 것 처럼 손을 흔들며 입구 쪽으로 다가더니 무리에 휩쓸려 들어갔다. 아까 버벅거리던 모습은 온데간데없었다. 기우는 초조한 마음으로 입구 쪽을 보고 기다렸다. 자신도 어떻게 해서든 들어가야 하나 호시탐탐 기회를 엿봤으나 도저히 용기가 나지 않았다. 지하철은 이미 끊겼고 야간 버스 마저 운형이 종료된 것을 확인했다. 자포자기한 심정으로 집까지 택시를 타면 얼마나 나올지 검색창에서 검색을 해보기도 했다. 야간할증이 붙어 생각했던 금액보다 한 참 더 나왔다. 이제는 혼자 갈 수도 없는 처지여 어쩔 수 없이 입구만을 바라봤다. 


새벽 2시가 다되어 갈 때, 입구 쪽에서 터덜터덜 걸어 나오는 미소가 보였다. 얼굴은 술을 마신건지 빨갛게 상기되어 있었고 눈가는 아이라인이 번져 판다곰 푸바오처럼 까맸다.

   

- 너 술 마셨어? 

- 마셨다. 

- 아주 미쳤구나. 엄만 찾았어?  


미소는 입을 꾹 다물고 말이 없었다. 


- 배고프다. 편의점이나 가자. 


기우는 미소를 편의점 쪽으로 데리고 갔다. 테이블 앞에 미소를 앉혀놓고 평소 자신이 좋아하던 삼각김밥에 사발면과 어묵을 계산해왔다. 미소는 멍하니 밖을 내다보고 있었다. 라면을 뜯어 뜨거운 물을 부어 놓고 삼각김밥과 어묵을 전자레인지에 데웠다. 덥고 목이 말라 사이다와 생수도 한 통, 물티슈도 한 봉 샀다. 편의점 안은 사막의 오아시스 같았다. 한 여름 밤에 서울의 레지비언 바 앞에서 전번을 교환한지 일주일도 안 된 미소와 이 난리를 치루고 있다니 기우는 꿈을 꾸는 것 같았다. 둘은 말없이 자기 앞의 음식들을 허겁지겁 먹었다. 먼저 침묵을 깬 것은 기우였다. 


- 괜찮아? 

- 응. 

- 엄만?

- 거기 있더라. 

- 그럼 된 거 아냐? 

- 뭐가? 

- 엄마 찾는다고 했는데 이제 어디있는지 안거잖아. 

- 바보냐. 

- 뭐가 문젠데? 


미소가 입을 닫았다. 기우도 답답하고 억울했다. 이럴 거면 그냥 엄마가 바람을 피는 것이 더 속편할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다. 엄마가 혹시 자신이 없는 것을 눈치 채고 전화를 할까봐 연신 핸드폰을 꺼내봤지만 기우였다. 완벽한 작전을 위해 엄마의 밥상도 깨끗이 비워 놓고 왔었다. 베개에 이불을 너무 잘 덮어놓은 것인지 엄마의 자식에 대한 믿음이 너무 깊은 것인지 그도 아니면 바람을 피느라 아들에게 관심이 없는 것인지 밤이 새도록 핸드폰은 울리지 않았다. 


- 맞더라. 

- 뭐가? 

- 우리 엄마 레즈비언이야. 

- 헐. 그럼 넌 어떻게 태어난거냐? 

- 그게 지금 나한테 할 말이냐? 

- 나 레즈비언 처음 봐. 너도 혹시?

- 뭐래? 그게 무슨 유전병이냐! 

- 아님 말고. 


기우도 도통 뭐라고 말을 해야할지 머릿속이 다 얽혀 버린 것 같았다. 차라리 이 모든 것이 다 꿈이길 바랐다. 편의점 유리벽 너머로 미소가 나온 술집 입구가 보였다. 여전히 여자들 여럿이 들어가고 나왔다. 레즈비언이나 게이는 완전히 다른 사람일거라고 생각했는데 기우가 동네에서 보는 누나나 아줌마들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같이 심각해지기도 어색하고 그렇다고 도망갈 수도 없었다. 미쳐버릴 것 같았다.  


- 엄마가 레즈비언이라니. 미쳐 버리겠네. 


이번에는 미소가 먼저 말을 꺼냈다. 


- 너 비밀이다. 

- 그래. 

- 아빠한테는 뭐라하지? 

- 그러게. 

- 내가 너랑 무슨 말을 하냐. 어휴. 


미소가 다시 말문을 닫았고, 이번에는 기우가 먼저 입을 열었다. 


- 엄마랑 얘기는 해봤어? 

- 아니... 

- 그래도 여기까지 왔는데 말이라도 해보지 그랬냐. 

- 엄마가 예전에 본 아줌마랑 있더라. 엄만 주방에서 일하는 것 같고. 아줌마는 사장인 것 같아. 

- 그럼 그냥 취직한 거 아냐? 

- 아냐. 나 엄마 그런 표정 처음 봐. 아빠한테는 한 번도 안 그랬어. 너 같은 애는 모르겠지만 난 알아. 둘은 그냥 친구가 아냐. 자식도 버리고 나와서 그렇게 행복해 보이는 거 반칙 아니냐? 엄마가 더 나빠. 


미소의 눈에 눈물이 그렁그렁 맺혔다. 기우는 미소가 좁은 편의점에서 왈칵 울음을 터트릴까봐 온 몸이 쪼그라드는 것 같았다. 기우는 한 팔로 미소의 어깨를 어색하게 토닥였다. 제발 소리 내어 울지는 않게 해달라고 속으로 빌었다. 한동안 눈물을 똑 똑 흘리던 미소는 어떤 결심이 섰는지 휴지로 팽하고 코를 풀더니 의자에서 벌떡 일어났다.


- 가자. 


미소가 어플로 택시를 예약하더니 편의점 밖으로 걸어 나갔다. 기우의 손에 전해주지 못한 물티슈가 들려있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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