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래를 보다.

노래가 좋을 때마다 써놓은 주저리주저리

by 장권

도무지 입에 올리지 않고는 참을 수 없는 노래가 있다.

한 소절 한 소절 꼭꼭 씹었다 뱉었다 되돌린다.

음과 음이 너무 사랑스러워 그 간격을 마음으로 센다.

그 여백마저 꽉 차있다.

가삿말은 또 어떤가.

적당한 날씨, 적절하게 부는 바람, 포근한 온도, 눈부신 순간의 고백처럼 마음에 쿵하고 반향을 일으킨다.

이토록 벅차오르는 악곡이 있다니.

이토록 음절 하나, 자음 하나, 모음 하나. 구석구석 들여다보고 싶은 가사가 있다니.

터져 오르는 감정을 끌어안는다.

얼마나, 어떻게, 어느 정도로 좋은지 조잘대다 밤을 새워도 좋아.




좋아하는 곡은 오감으로 느끼기 위해 노력한다.

특유의 향이 나는 곡이 있고, 또는 그 곡을 처음 들었을 때 주변의 향이 기억나는 곡이 있다.

눈앞에 그려지는 서사가 담긴 곡이 있고, 색깔로 보이는 곡이 있다.

까끌하게 목에 걸려 넘어가지 않는 곡이 있고, 뜨거워서 나도 몰래 손을 떼는 곡이 있다.

웅장하게 마음을 울리는 곡이 있고, 이불을 덮어쓴 채 소곤거리는 곡이 있다.

달달함이 귓가에 걸리는 곡이 있고, 씁쓸함에 괜히 물을 들이켜게 되는 곡이 있다.




정말 좋은 노래를 들을 때면, 특정한 상황, 풍경, 냄새, 날씨, 향기 그리고 빗댈 수 있는 사물이 떠오르곤 한다. 이것은 너무 주관적이어서 ‘누구도’ 이해할 수 없을 수도, ‘누구나’ 이해할 수 있을 수도 있다. 내 플레이리스트에 대한 독특한 소개서.


나쁜 놈들 - Zion.T

악어가죽으로 만든 수첩 표지를 손끝으로 매만지는 느낌. 마찰로 인해 점점 덥혀지는 손끝, 그 온도와 촉감


댈러스 러브 필드 (Dallas Love Field) - 도영(DOYOUNG)

끝없이 펼쳐진 푸른 잔디와 돌아가는 바람개비, 하늘에 선을 긋는 하얀 비행기


숨고 싶어요 (With. 선우정아) - 헤이즈 (Heize)

허리 정도 높이의 탁자에 놓인 동그란 어항. 화려한 분재유목과 붉고 푸른 수초와 알록달록한 형광 자갈돌, 어디에도 보이지 않는 물고기


요지경 (Feat. 슈프림팀, Yankie, Mellow) - 프라이머리

면마다 빨간색으로 물음표가 그려진 정육면체 나무 상자. 모서리마다 빨간 테이프가 붙어있다. 상자 윗부분을 힘주어 누르면 힘차게 튀어 오르는 삐에로 용수철.


우울한 편지 - 유재하

손때 묻은 갈색 가죽 가방. 어깨에 크로스해서 매면 골반께 에 척척 감기며 구겨지는 에이징 된 가죽


Adrenaline (Italian ver.) - Aalia (알리아)

신라면 블랙에 버터를 넣어 먹는 맛


CoolAs - 키(KEY)

실버 에나멜 펌프스 힐. 신는 용도로 사용하기보다는, 누군가 어깨 높이로 굽을 잡은 채 소품처럼 들고 다닐 것 같다.


Cross My Mind - Twin Forks

어디든 떠나고 싶은데 내 앞에 보이는 건 통통배뿐. 노를 젓자.


Sway - 가인, 조형우

여기, 이 자리, 이 테이블에서의 대화가 끝나면 다시는 만나지 못할 것만 같은 둘.


The Chase - Hearts2Hearts (하츠투하츠)

어두운 방에 홀로 빛을 내는 빔 프로젝터. 청록색 물결이 까만 벽에 몰아치고 소녀는 빛을 등지고 서서 그림자놀이를 한다.


Twilight - Oshio Kotaro

붉은 반점처럼 불꽃이 박혀 타들어가는 나뭇가지 하나를, 해가 막 넘어간 검푸른 하늘에 들어 올리는 모습


UNFORGIVEN (feat. Nile Rodgers) - LE SSERAFIM

최대 출력의 기가 호스(The Gigahorse)*가 흙먼지를 잔뜩 일으키며 달려 나간다.

*영화 매드맥스에 나오는 임모탄 조의 차량


Why Can't You Love Me? - 웬디 (WENDY)

봄이라는 이름이 붙긴 이른 듯한 늦겨울, 해가 비추는 곳을 따라 선유도공원 산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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