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게 쓰고 건강하게 먹기(3)
올해 크게 바뀐 것이 있다면 바로 생활양식이 바뀌었다는 것이다. 4월 말부터 심해진 소양증으로 인해서 몸이 많이 힘들어지고, 한약을 장기간 복용하다 보니 생활 습관을 바꾸지 않을 수 없었다. 무의식적으로 안 아프려고 어떤 행동을 하지 않거나, 적극적으로 어떤 행동을 취하는 일을 반복하다 보니 자연스레 변화가 일어났다.
그중 식사 습관이 크게 바뀌었다. 체질 상 몸에 맞지 않은 음식이 많았다. 고추를 포함한 각종 향신료, 토마토, 닭고기, 오리고기, 잎채소, 바다 생선, 갑각류, 대부분의 과일, 생강, 꿀, 인삼 등…. 모두 잘 먹던 것인데 언급된 모든 것들이 소양증의 원인이라고 하니, 눈앞에 있어도 손이 잘 가지 않게 되었다. 나는 뭐든지 먹을 수 있지만 나를 위해 자유를 포기하는 법을 배웠다. 대신 가렵지 않으려고 차(茶)를 마시기 시작했다. 루이보스나 우롱차처럼 뒷맛이 깔끔한 차를 마시기 때문인지 달달한 것이 당겨서, 차를 마실 때 달달한 간식을 함께 먹고 있다. 티 타임 시간에 차 향을 해치지 않는 선에서 달큰함을 즐기는 것이 요즘 낙이다.
그러나 벌이가 적은 내게 디저트를 자주 먹는다는 건 부담스러운 일이다. 그래서 가급적 저렴한 버터 쿠키를 사 먹거나, 집에서 마들렌, 팬케이크를 만들어 먹는다. 들어가는 재료도 거의 비슷해서 재료를 추가 구매할 필요가 없고, 각각 다른 식감으로 즐길 수 있어서 질리지 않아 좋다. -쿠키는 손목이 아파서 만들지 않는다. 마들렌은 버터를 녹여 만드는 반면, 쿠키는 차가운 버터를 깍둑 썰듯이 잘라야 하기 때문에 힘이 든다.-
팬케이크 반죽을 만들다 보면 꼭 욕심이 난다. 계량을 할 땐 두 장만 만들어야지 해도, 막상 결과물을 보면 세 장이 되고 네 장이 된다. 한 번에 팬케이크 네 장은 못 먹기 때문에, 남은 팬케이크가 식으면 나중에 전자렌지에 살짝 돌려 과일 잼과 먹는다. 이렇게 먹어도 그럭저럭 괜찮은 디저트이다. 세상에는 별의별 팬케이크 레시피가 있지만 역시 제일 맛있는 건 기본이다. 버터를 두른 팬에 반죽만 구워낸 팬케이크. 위에 슈가 파우더와 시럽. 방금 만든 팬케이크는 이걸로 충분하다.
마들렌은 먹을 때 글레이즈드 작업을 꼭 하는 편이다. 가장 선호하는 글레이즈드는 역시 레몬인데, 상큼한 레몬 향이 미세한 밀가루 냄새를 잡아주기 때문이다. 글레이즈드를 두껍게 하면 보기에는 예쁘지만 마들렌 본연의 맛이 잘 살지 않아서, 나는 좀 얇게 붓으로 몇 번만 발라준다. 그럼 먹을 때 딱 적당하다.
아침과 저녁 사이에 점심 대신 디저트를 먹게 된 후로 저녁 식사 때 먹는 식사량이 3분의 2로 줄었다. 열량이 높은 음식이어서 인지 밤늦게까지 깨어 있어도 그리 출출하지 않다. 잠자리 들 때 몸이 가볍게 느껴지는 정도여서 산뜻하게 잠이 들어 좋다. 오후에 누리는 이 달달한 티타임이 즐거워 이제는 완전 삶의 루틴이 되어버렸다. 좋은 습관을 만들기 참 어려운 일인데, 아프고 나서 좋은 습관들이 많이 생겼다. 고난이 꼭 나쁜 열매를 맺는 것은 아닌 것 같다.
사실 나는 차(茶) 얘기를 하고 싶었는데, 어쩌다 보니 달달한 간식 얘기만 하게 되었다. 차 역시 티타임, 디저트에 포함되어 있는데 말이지. 차를 마시다 보니 달달한 간식을 먹게 된 것이거늘…. 어쩐지 주객이 전도된 기분이다.
사진. 헵시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