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헵시바 Jan 03. 2024

오니기리

적게 쓰고 건강하게 먹기(7)

 어디론가 떠나고 싶은 날인데 약속도 없고 날씨도 좋지 않다면, 기분을 내기 위해 평소에 잘하지 않는 요리를 합니다. 주로 해외 영화나 드라마에서 보던 요리를 하는데, 가장 쉽고 간편하게 만들 수 있으면서도 확실하게 여행의 기분을 내는 음식을 꼽자면 바로 ‘오니기리’입니다. 

 일본식 주먹밥을 칭하는 오니기리는-지역에 따라 오무스비라고도 불립니다- 삼각 김밥의 모티브가 된 음식으로, 우리나라의 둥그런 주먹밥 모양과 달리 삼각형 모양으로 만듭니다. 왜 삼각형이 되었는지 확실히 알려진 바가 없지만 음식치고 특이한 형태 때문인지 오니기리는 일본을 대표하는 시그니처 음식이라는 데 동의하지 않을 사람은 아마 없을 것입니다. -삼각형 모양의 유래로 먹기 좋게 일부러 각을 만들었다는 설도 있고, 세 번 만에 먹기 위해서 삼각형으로 만들었다는 설도 있습니다.-

 이 일본식 주먹밥은 우리나라의 둥근 주먹밥을 만드는 방식과 기본적으로 비슷합니다. 김밥 속 밥을 만들 때처럼 흰쌀밥을 살짝 식힌 후, 소금을 넣고 고슬고슬 섞은 다음 한 주걱 덜어서 이등분합니다. 이등분한 밥을 살짝 눌러 평평하게 놓고 한쪽에는 속 재료를 올려놓고 밥을 합쳐 둥글둥글하게 뭉치다가 삼각형의 먹기 좋은 모양으로 만든 후 조미되지 않은 김을 붙이면 완성입니다. -일본에서는 소금으로만 밑간을 한다고 하는데 입맛에 따라 참기름을 넣어도 됩니다.-

명란젓 오니기리

 오니기리를 만들 때는 꼭 일본 여행을 하고 있는 기분이 듭니다. 학생 때 보던 일본 드라마나 일본 영화 생각도 나고, 도쿄에서 보던 수많은 종류의 오니기리가 생각나서 그런 것 같습니다. 

지금은 그런 사람이 드물지만, 제가 학생 때였던 십몇 년 전까지는 일본 드라마와 영화를 보면 ‘친일이냐?’라고 비아냥대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일본 문화가 한국에 들어와 있는 것을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고, 개개인으로 따지면 좋아하는 사람도 많았지만 이를 공개적으로 소비하지는 않았습니다. 그래서 일본 문화는 음지에서만 소비하는 문화였지요. 

 저는 그때도 지금도 한국 드라마를 더 좋아하지만, 일본 드라마 특유의 현실감이라곤 하나도 없는 내용에 매료됐습니다. 그때의 저는 심각하게 생각할 필요가 없는, 그런 스토리를 좋아했던 것 같습니다. 그러다 보니 감각적으로 스토리를 이해할 수밖에 없었고, 영화나 드라마를 보면서 가장 많이 보이는 요리였던 오니기리가 자연스레 제가 생각하는 일본의 이미지가 되었습니다.

 저는 한국에서 나고 자란 순수 토종 한국인이니까 일본에서 오니기리가 어떤 상징이고, 일본인에게 어떤 느낌을 주는지 정확히 알 수 없습니다. 다만 우리나라의 주먹밥은 아닐 것 같다고 생각합니다. 저에게 한국식의 김가루가 잔뜩 뿌려진 주먹밥은 괜히 엄마가 생각나는 음식입니다. 엄마가 떠올리는 요리가 몇몇 있지만, 특히 주먹밥은 엄마가 놀러 갈 때 부랴부랴 싸는 요리로 기억됩니다. 주먹밥을 집에서 해 먹는 경우는 잘 없었던 것 같습니다. 그러나 제가 본 일본 드라마나 영화에서 오니기리는 주로 집에서 해 먹는 요리였습니다. 혼자서 간편하게 만들어 먹는 그런 종류의 요리였지요. 추측해 보건대 우리나라의 김치볶음밥 정도에 해당되는 요리가 아닐까 싶습니다. 집에서 혼자 간편하고 쉽게 해 먹을 수 있는 요리라는 점에서 말입니다.     

 

무말랭이 오니기리, 소고기 장조림 오니기리와 두부 구이

 앞서 말했지만 저에게 오니기리는 기분을 내기 위해 만드는 음식입니다. 언젠가부터 파스타를 말할 때 굳이 이탈리아 요리를 먹는다고 생각하지 않은 것처럼, 국내에 이미 수많은 일본 가정식 요리가 많이 정착해 있는 것 같습니다. 이런 요리들은 더 이상, 먹으면서 일본 요리라고 생각하지 않을 정도로 우리나라 문화 깊숙이 자리하게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오니기리는 다릅니다. 딱히 요리 실력이란 게 필요 없을 만큼 간단한 요리이기 때문에 다른 일식집들처럼 오니기리만 전문적으로 파는 사업장을 잘 만나볼 수 없을뿐더러, 오니기리의 핵심은 집에서 먹어야 한다는 데 있는 것 같습니다. 어릴 적 보던 일본 영화와 드라마에서 오니기리를 소비했던 그 모습이 제게 강박을 일으키는 걸지도 모르지만요.

 이렇게 외국에 온 듯한 착각을 일으키는 음식을 만들면 저는 부엌에서 신이 나서 요리하는 내내 혼자서 키킥 댑니다. 기분이 너무 좋아집니다. 내 두 발은 대한민국의 한 작은 아파트 부엌에 서 있지만, 생각과 마음은 도쿄로, 파리로 순간 이동을 한 것처럼 말이죠. 제일 간단하게 이런 기분을 내게 하는 건 역시 오니기리이고요.


 제가 초반에 쓴 글 중, <음식 장면과 관계성>이라는 글이 있습니다. 영화나 드라마 속 음식 장면을 그냥 지나치지 못한다고 말했었지요. 이번에는 오니기리를 설명해 보았지만 아마 다음에 어디론가 떠나고 싶은데 떠나지 못하는 주말에는 영국 음식을 만들어 볼까 합니다. 요즘 들어 자꾸 생각나는 옛날 드라마가 있거든요. 맛은 보장할 수 없지만, 영국 음식이니까 괜찮지 않을까 싶습니다.

마지막으로 예쁜 사진은 한 번 더.

사진. 헵시바

작가의 이전글 나 홀로 파티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