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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예다고 Mar 03. 2024

나만이 가진 기억(작업일기를 위한 에세이)

기억은 나눠야 기억된다

1. 장면 하나


어느 겨울, 아버지가 나와 여동생을 데리고 나섰다. 열두 살의 나는 한 살 어린 여동생의 손을 꼭 잡고 아버지의 뒤를 따랐다. 우리가 간 곳은 야탑의 버스터미널이었다. 어디로 가던 길이었는지, 무슨 일로 나갔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다만 한지에 묻은 먹물처럼 흐릿해진 그날의 시야 속에서도 거울을 보듯 분명히 보이는 장면이 있다. 터미널의 어느 식당 테이블에 뜨끈한 어묵 국물과 기름기가 좔좔 흐르는 김밥 두 줄을 두고 앉은 우리 세 사람이다. 무슨 사연이었는지 어머니는 그날 함께 오지 않았고, 세 사람만의 외출은 이전에는 없던 일이었다.


 "김밥 하나 먹고, 이렇게 국물 한 번 맛을 봐. 어때? 맛있지?"


아버지의 말씀에, 나는 그대로 따라 해 봤다. 미리 싸둔 김밥의 찬 밥알 사이로 구수한 어묵 국물이 새어 들어왔다. 쌀밥의 찰기와 기가 막히게 어울리는 맛이었다. 나는 그날 이후로 김밥을 먹을 때면 꼭 어묵 국물을 곁들여 먹는 버릇을 들였다.


지금은 무기한 폐업 중인, 성남종합버스터미널 전경


2. 장면 둘


 함박눈이 내린 지 며칠 지나지 않은 어느 날, 아버지는 또 나와 여동생을 데리고 길을 나섰다. 그날도 어머니는 일 때문에 같이 시간을 보내지 않았다. 아버지가 그의 어린 두 자녀를 데리고 간 곳은 작은 유원지였다. 성남에 오래 살았던 사람들은 기억하고 있을 것이 분명한 그곳은 바로 희망대공원이었다.


 다람쥐통, 모노레일, 범퍼카 등 신나는 오락거리에 우리 남매는 너무나 즐거웠다. 기쁨이 배가된 이유는 또 있었다. 희망대공원은 성남시에서 당시 교육제로 국민학교를 다닌 세대라면 봄소풍, 가을소풍이나 되어야 가던 곳이었기 때문일 것이다. 우리 남매가 미숙한 운전 솜씨로 서로의 차량을 치고 박으며 노는 모습을 카메라에 담는 아버지의 모습이 눈에 선하다. 아버지의 수동 미놀타 카메라에서 연신 터지는 플래시가 흰 눈밭을 뚫고 들어와 별빛처럼 두 눈에 담긴 장면과 함께.


 놀이기구를 몇 가지 타고난 뒤, 아버지는 우리를 유원지 내의 포장마차에 데리고 가셨다. 한겨울의 추위는 한풀 꺾였지만 여전히 눈은 녹지 않은 터였다. 양손이 빨갛게 언 우리 손을 호호 불며, 아버지가 말씀하셨다.


 "토스트 먹자."


노랗게 계란물을 입혀 구운 식빵에 계란과 슬라이스 햄을 저며 넣은 토스트가 나왔다. 빵의 외피에 설탕이 듬뿍 묻어 달착지근하기 그지없었다. 지금 생각하면 당이며 탄수화물이며 건강에 좋지 않을 것이 분명한 토스트였다. 하지만 그날의 우리에게는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음식이었다.


1980년대 성남 희망대공원의 모습. 사진출처 : 페이스북 "시간여행자"


3. 나만의 기억


 위에 이야기한 두 가지 에피소드는 내게 사진처럼 선명히 남은 추억이다. 하지만 그 추억을 만들어 준 아버지는 하늘나라로 가신 지 십여 년이 지났고, 어머니는 그때마다 자리에 계시지 않았으며, 함께 있던 여동생은 그 장면들을 전혀 기억하지 못한다. 성남버스터미널은 무기한 폐업이며, 희망대공원 놀이동산은 사라진 지 이십여 년이다. 추억의 장소는 사라졌고, 그토록 즐거웠던 시간은 세상에서 오직 나 한 사람만 가진 기억이 되어 버렸다.


 나는 가끔 동생에게 몇 번이나 물었다. 그때 이러이러한 일이 있었는데, 전혀 기억이 나지 않느냐고. 그러나 동생은 조용히 고개를 가로저을 뿐이다. 나보다 아버지에게 더 사랑받고, 나보다 아버지를 더 사랑한 동생인데도 그렇게나 기억을 하지 못한다니. 서운했다. 겨우 한 살 차이로, 기억의 선명도가 이렇게 차이 난다는 사실에 답답하기도 했다. 하지만 어쩔 수 없다. 앞으로도 여전히 그날들은 내 안에서만 생생하게 재생될 뿐이다.


다만 나는 이 기억을 남기고 싶다. 내 기억 속에만 존재하는 아버지를, 그 분과의 추억을 남들도 알 수 있는 형태로 세상에 남겨 두고 싶다. 내가 아는 방법은 그림뿐이다.


4. 기억을 나눠야겠다


약 십 년 전, 인상주의 화가들의 명화들을 예술의 전당에서 전시했던 어느 날이었다. 푸른 물 위로 떠오른 새벽의 붉은 해. 그것을 포착해서 그린 모네의 <해돋이>를 본 적이 있다.


모네, <해돋이>, 유채, 63 x 48 cm, 1872, 마르모탕 모네미술관


작품 앞에서 나는 모네와 새벽을 나누고 있었다. 이른 아침의 어느 순간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의 눈에 보이던 장면을 완전한 사실로 전달하고 있던 것은 아니다. 카메라의 등장 이후 사실에 대한 재현은 이미 미술의 목적에서 벗어난 뒤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어떤 사실적 이미지와 영상보다도 확실하고 분명하게, 나는 그와 새벽을 함께 하고 있었다.


 모네가 이 순간을 표현하지 않았다면, 그가 바라보던 순간은 그의 뇌리에 남았다가 사라졌을 것이다. 그 순간의 인상은 그저 개인의 인상으로 그치고 말았을 것이다. 모네는 그가 바라보고 느낀 감각의 기억을 세상에 남겨둠으로써, 타인에게도 그의 기억을 공유했다. 감상하는 주체 각자의 안에서 재구성된 새벽의 모습으로 말이다.


 나 역시, 나만의 기억으로 남을 수많은 장면들을 그대로 두지 말고 남겨야겠다. 자꾸 이야기하고, 지속해서 상기하고, 널리 알려야겠다. 기억은 나눠야 기억된다. 나눌수록 커지고 선명해지며 풍성해질 것이다. 그렇게 기억의 편린들이 모여 그들의 생각과 경험 속에 녹아들며 오래도록 살아갈 것이다.


그것을 간절하게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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