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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봄비전재복 Dec 09. 2024

비겁한 밥벌레

'시를 써도 되겠는가'에 토를 달다(195)


비겁한 밥벌레 /전재복



한 시인이 말하기를


세상의 절반이 나머지 절반을 미워하는 이곳에서

시를 써도 되겠느냐고

탄식을 했다


진실을 알고 있는 척하는 사람들이

내 침묵 오해할까 고뇌하며


나무 아래서 주운 새 키우듯

그리움의 언어로

시를 써도 되겠는가

물었다


그리고 투사가 아니어서

미안하다고 했던가

 


이어서 다른 한 시인이

발끈하여 쏘아붙이는

시에 날이 섰다


시를 써도 되겠는가

비겁한 중도라는 허울 뒤에 몸을 감추고


극단 된 양극을

자신만의 안위로

모두 끌어당기며


서로를 할퀴는 모국어의 썩은 뿌리에서

펄펄 살아 날뛰는 정신의 언어 하나 캐내지도 못하고


시인아! 시를 써도 되겠는가

문을 닫아야지

모든 문을 닫아야지


단호하게 선을 긋는다



두 시인의 설전 앞에

보탤 입이 없다

나는 비겁한 중도에 숨었고


참으로 같잖은 세상에서

나 따위가

껍데기로 소통하는 척했으며


펄펄 살아 날뛰는 정신의 언어 하나

캐내지도 못했으니


시를 써도 되겠는가

염치없어 차마 묻지 못하겠다

문 닫을 용기마저 없어서

아직도 언어의 쓰레기나 보태는

아! 나는 비겁한 밥벌레구나!



[시인 '류시화'와 '이선정'의 <시를 써도 되겠는가>에 토를 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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