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교에 다니는 둘째는 꿈이 CEO다. 그냥 돈 많이 벌고 싶은 사장 아니고 우리나라가 노벨상을 탈 수 있도록 과학자들을 지원해 줄 수 있는 경영자다. 아이가 그런 생각을 갖게 되기까지는 책도 많이 읽었고 나랑 이야기도 했다. 그런데 왜 자기가 노벨상을 타고 싶다고 생각하지는 않는지 모르겠다. 하지만 여기서 중요한 건 남들과 다른 꿈을 갖고 있는 것이다.
외대부고에 다니는 아이가 1학년때 반에서 꿈을 조사했었다. 아이의 꿈은 대통령이다. 많은 아이들이 초등학생 때 대통령이 되겠다는 꿈을 이야기하기도 하지만 이 아이는 고등학생이다. 그리고 그 꿈은 중학생 때 처음 생각했고 그 꿈을 실현시키기 위해서 매일매일 노력 중이다. 꿈이 있는 인간은 해야 할 일이 많다. 스스로 잠을 줄여 열심히 공부를 하고 그렇게 좋아하는 화장과 칼라렌즈를 끊고 그렇게 싫어하는 맨얼굴과 안경으로 시험기간을 버틴다. 그리고 요즘 아이들이 절대 손에서 놓지 못하는 그것, 휴대폰도 보지 않는다. 물론 카톡이나 문자나 전부 아이패드로 할 수 있지만 엄마아빠와 연락하는 일이 아니라면 친구들이 소소하게 보내는 문자나 카톡도 읽지 않는다.
어릴 때부터 친구들을 통솔하는 것을 좋아했다. 처음 어린이집을 다녔던 4살 때도 여름에 친구들이랑 수영장을 갔다 왔는데 어쩌면 아이가 부담임처럼 친구들 등에 선크림을 발라주었다고 선생님이 놀라셨다. 그러더니 초등 내내 반장, 전교부회장, 전교회장, 중등 때도 반장, 전교회장을 했다. 그렇게 앞에 나서는 일을 즐거워했다. 중학교 1학년 때와 고등학교 축제 MC도 했다.
내가 생각하는 이상적인 꿈은 자기가 가장 좋아하는 일을 즐겁게 하면서 돈도 버는 일이다. 아이가 앞에 나서서 하는 일을 좋아하니 국회의원이 되면 어떠냐고 얘기했다가 대통령으로 발전했다. 아이는 꿈이 생긴 후 경주마처럼 목표를 향해 달리고 있다. 나는 공부 열심히 해서 1등 하라는 얘기는 절대로 안 한다. 단지 네가 좋아하는 일을 하기 위해 노력해 보자고 했다. 그리고 내 역할은 아이가 잘 달릴 수 있도록 옆에서 같이 뛰어주는 것이다. 힘들어할 땐 물도 주고 땀도 닦아 주면서.
아이가 가고 싶은 대학은 서울대다. 왜냐하면 목표가 높아야 그만큼 노력을 더 하게 되기 때문이다. 목표가 인서울인 사람과 서울대인 사람의 노력의 정도는 분명 다르다. 엄마인 내가 옆에서 할 수 있는 건 아이가 하고 싶어 하는 일은 ‘자신에게 위험한 일’이나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주는 일’이 아니라면 반대하지 않는 것이다. 사람은 뭐든 자기가 겪어봐야 느끼게 되기 때문이다. 백날 말로 얘기해도 잔소리일 뿐이다. 딱 한 번만 해보면 알 수 있다. 그 일이 자기가 해도 되는 일인지 아닌지.
아이가 하고 싶어 하는 일이 너무 많은데 앞으로 어떻게 키워야 할지 고민이 돼서 사주도 봤었다. 군인도 되고 싶고 운동선수도 하고 싶어 했다. 전국티볼대회에 나가기 위해서 아침 등교 전 1시간 하교 후 1시간 이상 연습하더니 운동선수가 얼마나 힘든 지 알아버렸다. 그것 말고도 검사, 의사, 경찰 등등 너무 많았다. 그때는 아이의 관심사가 무엇인지 잘 모를 초등학생이었는데 지금 보면 많은 부분이 맞아서 신기하다. 하지만 사주는 참고하는 것뿐이다. 고등학교 시험을 보기 전에 합격여부도 물어봤었는데 외대부고는 떨어진다고 해서 일 년 동안 아이에게 그 이야기를 안 하기 위해서 무지 노력했다. 다행히 결과가 좋아서 그때 털어놓았다. 정말 1년 동안 얼마나 마음을 졸였는지 그 시간이 평생 같았다.
큰아이도 그렇고 작은 아이도 그렇고 반에서 진로에 대해 조사를 하면 반아이들 모두 다 하나같이 의사가 되고 싶은 아이들 뿐이다. 얼마 전 아이가 공부를 잘한다고 하니까 대뜸 친척들도 의대를 보내라고 이야기했다. 사실 모든 직업에 귀천이 없지는 않다. 누구나 더울 때 시원한 곳에서 일하고 추울 때 따뜻한 곳에서 일하는 직업을 갖고 싶어 한다. 거기에다 돈도 많이 벌고 명예롭기까지 한 의사가 되고 싶을 수 있다. 하지만 그 의사라는 직업이 그렇게 누구나에게 좋았다면 의대를 다니다가 나와서 다른 일을 하는 분들도 있고 의사를 하다가도 관두는 분들이 있는 걸 보면 그게 전부가 아니라는 거다. 의대생이 올리는 브이로그를 보니 의대 시험기간에 영어원서로 된 책 두장을 2분에 외워야 하는 분량의 암기량을 보고 의대에 안 가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못 간 거지만.
꿈이나 진로를 찾는 게 쉬운 일은 아니다. 그렇기 때문에 자기가 관심 있는 분야의 책을 많이 읽고 생각할 시간이 필요하다. 아침에 눈뜨면 학교 가고 학교가 끝나면 학원으로 직행해서 밤늦게 돌아오는 일상에서 그럴 시간은 부족하다. 아이가 좀 뒹굴뒹굴 거릴 시간이 있어야 책도 보고 뜬구름 잡는 생각 같아도 꿈이라는 걸 꾸게 되지 않을까.
이제 곧 중학교에 가는 둘째가 고등학교에 갈 때는 고교학점제가 실시된다고 한다. 휴... 내가 공부해야 할 새로운 형태의 입시제도가 또 나왔다. 대충 학원설명회에서 들어보니 (설명회는 학원설명회가 최고다. 두루뭉술하게 시간만 때우는 학교설명회와는 차원이 다르다. 학원 관계자분들 정말 감사해요!!) 이제부터는 적어도 중3까지는 자신의 진로를 크게라도 잡아야 한다. 그렇지 않고서 어떻게 고등학교에서 자기 적성에 맞는 과목을 선택한다는 말인가. 잘못하다가는 고등학교 3년을 통째로 날려버릴 수 있다. 내가 대학 4년을 보내버린 것처럼.
초등 5학년인 둘째의 같은 반 아이들도 외대부고에 다니는 첫째의 반 친구들도 거의 다 꿈이 의사다. 우리나라의 출산율이 왜 자꾸 떨어지는지 알 것 같다. 정말 이러다가 소멸되는 첫 번째 나라가 되어 버리는 건 아닌지 걱정이 된다. 셋째를 낳으면 더 잘 키울 수 있을 거 같은데 체력이 안되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