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희들이 악플을 알아?
“님이 딱 제 어머니 케이스네요. 자신감 넘치고 내가 제일 잘났고 실제로도 똑 부러지고 할 일 척척하는 공부 잘하고 열심히 사는 유능한 나한테 취하는 여성. 그런데요 너무 자만하는 거 정말 안 좋아요. 주변인들도 다 힘들고요. 나중에는 ‘이 쉬운 걸 왜 못해?’ 이런 훈육법을 쓰셔서 자식들한테, 주변인들한테 상처 주고 ‘나보다 멍청한 그것’들을 이해 못 하고. 열심히 산 거 알겠어요, 노력하고 야망 있는 거 좋아요... 그런데 좀 과하게 어필하시네요. 아직 어려서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해요. 학생이라는 신분에서 이룰 업적이라곤 열심히 공부하는 것뿐이니까 어찌 보면 100퍼센트를 달성한 것처럼 보이시겠죠. 하지만 살다 보면 알게 될 거예요. 공부가 다가 아니고, 나 혼자서 살 수 없고, 내가 제일 잘난 게 아니란 걸요. 아, 참고로 저희 어머니는 연대의대, 이대의대, 한양의대 모두 붙으시고 이화의대로 가셔서 이화여대 수석 입학, 수석졸업에 신촌 세브란스에서 연대 의대생들 제쳐가며 레지던트, 인턴에 펠로우까지 마치셨습니다. 자기가 제일 중요하고 야망 넘치는 이과탑 여자가 어떻게 사는지 옆에서 보는 입장에서 걱정돼서 말씀드립니다. 본인만 잘난 거 아니고 본인만 특출 난 거 아니에요. 얼마나 공부를 잘하시는지 모르겠지만.. 매우 높은 확률로 학창 시절 님보다 열심히 살았고, 여전히 그렇게 살고 있는 제 어머니를 보고 드리는 말씀입니다.”
악플이 달렸다. 엄마에게서 받은 상처가 많았구나.. 그런데 어쩌라고?
두어 달 전 아이가 <가갸거겨고교>에 출연했다. 같은 고등학교에 다니는 후배가 고정으로 나가는데 이번엔 선배와의 시간이란다. 공부 잘하는 학교선배를 섭외하는 거라 굳이 나가야 하나 싶었지만 아이는 무대체질이다. 중학교 때도 1학년인데 오디션에 합격해서 학교축제 진행을 했고 고등학교 때도 했다. 꼭 뽑히고 싶어서 춤도 연습하고 노래도 연습했다. 키는 작지만 열심히 노력해서 축제 대본도 3학년 선배 분량까지 자기가 밤새워서 써갔다. 그렇게 남 앞에 서는 걸 좋아한다.
아이는 정말 즐겁게 녹화를 하고 왔다. 평소대로. 그리고 드디어 편집본이 유튜브에 올라온 날, 숨죽이고 유튜브를 켰더니 제목이 <외대부고 내신상위 1%, 문과 탑 언어천재, 영어 지문 700개 하루 컷>, <지능 상위 1%만 푼다. K-천재들 지능 대결>. 말 그대로 썸네일이 너무 자극적이어서 거짓말쟁이 PD 얼굴이 궁금할 지경이다. 악플이 달릴 거라고 예상은 했지만 그렇게 많이 달릴 줄은 몰랐다. 거짓말은 없었고 같이 나갔던 카이스트 천재에겐 악플이 하나도 없었으니까.
제일 화가 나는 건 잘 알지도 못하면서 그녀의 노력을 폄하하고 여성을 깔아뭉개는 말들이었다. 오죽하면 담당 PD가 댓글을 보고 아이에게 괜찮냐고 물어볼 정도였다.
그 아이가 외대부고를 들어가기 위해서 삼 년 내내 아무리 아파도 지각이나 결석 한번 하지 않고 중학교 1학년 때부터 수행평가 보기 전날은 밤을 새워서 자료를 찾았으며 그 조그마한 아이가 시험 스트레스로 대상포진까지 걸려가며 공부했던 걸 말이다.
아이는 기말고사를 앞두고 일단 그 악플들을 신경 쓰고 싶어 하지 않았고 (그러면서 자기가 나온 부분에 대댓글을 다는 정성), 그의 언제나 냉정하고 이성적인 아버님은 “악플러들 다 죽여버릴까”를 고민했다. 그리고 나는 매일같이 보던 유튜브를 더 이상 못 보게 되었다. 유튜브앱을 열려고 생각만 해도 다른 악플이 달렸는지 확인하고 싶어서 앱을 지워야 하나 생각 중이다.
처음엔 아이에게 말도 못 하고 부부가 전전긍긍이었다. 평소 같으면 마음이 아파 잠도 못 잤겠지만 이미 방송은 나왔고 그 방송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할지는 보는 사람의 의견이기 때문에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러나 남편이 악플들을 읽어보고 나에게 와서 징징거렸고 아이는 점점 나를 걱정하는 문자를 보내왔다. 처음엔 내가 두 사람을 달랬지만 이렇게 두 사람이 얘기하는 걸 보니 뭔가 더 대단한 글이 올라왔나 궁금해져서 유튜브앱을 열어 다시 보게 되었다.
“근디 여자가 뭔 대통령이여 나라 망할 일 있냐”
“남자도 힘든게 대통령인데 감정적인 여자가 대통령되서 무슨 나라 망할 일 있나...”
“애초에 대통령은 봉사직인데 너무 출세욕에 눈이 먼 사람처럼 보임”
“저렇게 겸손없고 경거망동한 인성이 바뀌지 않는이상 아무리 똑똑해도 국민들이 안 뽑아줄거에요~”
“좋은집에서 태어났겠지...금수저면 누구나 가능하다 뭐가 그리 대단한건지???”
아이는 아직 고등학생이다. 아직 자기 꿈을 이루기엔 시간이 많이 남았고 꿈이란 건 누구나 그렇듯이 살다 보면 바뀔 수도 있는 부분이다. 그런데 이 악플러들은 여자는 대통령이 되면 안 된다는 성차별적 시선에다 우리 딸을 한번 만나본 적도 없으면서 인성이 어떻다고 평가를 한다. 이런 게 악플이구나... 세상 억울하고 답답한 시간이었다. 그렇다고 하나하나 설명하며 따라다닐 수도 없고 이런 오해를 받는 게 맞는 건가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는 시간들이 흘렀다.
가족 모두가 마음의 상처를 안고 서로 다독이는 동안 2학년 2학기 기말고사가 끝나고 아이의 성적이 나왔다. 2학년 2학기까지 합산한 성적이 외대부고 문과 3등이다. 그리고 2학년 370명 중에 10명 뽑는 파이오니아도 합격했다. 같은 학교 아이들이 모두 다 정말 열심히 사는 편이라서 그 속에서 더 열심히 살기 위해 그렇게 들어가기 어렵다는 동아리도 20개 지원해서 16개 합격하고 2개는 동아리 부장도 하고 축제 MC도 하고 얼마나 앉아 있는지 엉덩이가 짓무르도록 노력해서 나온 결과다.
우리 가족이 가진 거라곤 건강한 몸과 마음뿐인데 이것도 금수저라고 한다면 감사히 받아들이고 살아야겠다. 정치를 하는 게 꿈인 아이가 앞으로 먹을 욕이 이렇게 시작됐구나 싶다.
에필로그: 아이가 유튜브 출연료로 30만 원을 받아왔다. 아빠가 ‘욕받이값’이라며 놀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