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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aurel Mar 06. 2023

5분 대기조

나는 장군님을 모시고 산다

“엄마, 체육복을 놓고 온 거 같아요”      

기숙사 학교에 다니는 아이는 주말에 외출을 나왔다가 일요일 밤에 들어간다. 정말 정말 늦게 들어간다. 밤 11시 30분 롤콜 시간 전에는 들어가야 하는데 11시에 들어간다. 남편이 아이를 데려다주고 집에 들어오면 12시다. 어떨 땐 12시도 넘는다.      


처음 기숙사 있는 학교에 들어갔을 땐 너무너무 좋아했다. 드디어 자기도 기숙사에서 지내게 되었다고. 기숙사에서 살고 싶어서 국제중도 지원했다. 순전히 기숙사 때문이었다. 그런데 그게 1년을 안 갔다. 1년은 무슨 1학기도 안 갔다. 집에서처럼 아무 때나 먹을 수 없고 아무 때나 잘 수도 없는 기숙사는 식당이 없어서 조금 늦잠을 자고 싶은 주말이면 아침밥은 100% 못 먹을 수밖에 없다. 아침밥만 안 먹으면 다행이지. 식당까지 내려가기가 귀찮다고 점심, 저녁도 안 먹는다. 도대체 나는 일주일에 한 번 먹을까 말까 한 라면을 어떤 사람들이 그렇게 많이 먹나 했더니 우리 딸이었다. 기숙사 냉장고에 음식을 둘 수도 없어서 시험공부 때문에 집에 안 오는 주말이면 잘 먹으면 두 끼 먹는 거 같다. 그것도 라면이나 과자로. 그러니 아들 군대 보낸 것처럼 집에 왔을 때마다 먹고 싶은 거 시켜 먹느라 바쁘다. 정말 자기도 그 안에서 먹고 싶은 게 너무 많아서 이번 주에 집에 가서 뭘 먹을지 메모해 온다.     


일산에 살 때도 외대부고에 못 들어갈 성적은 아니었다. 그렇지만 시험결과는 모르는 것이고 지역전형으로 뽑는 수가 워낙 많아서 고민 안 하고 이사 왔다. 그리고 어릴 때부터 공부는 알아서 잘했지만 다른 부분은 허당이라서 이렇게 손이 많이 갈 줄 알았기 때문에 일산에서부터 체육복을 가지고 오는 것보다 나을 것 같았다. 왕복 4시간 운전에다 한번 용인에서 일산까지 갔다 왔다가 일주일 동안 몸살이 났다.     


아이에게 체육복은 거의 피부다. 모두가 부러워하는 예쁜 교복이 있지만 이 학교에서 공부만 하기로 마음먹은 아이에게 교복은 그저 불편한 옷일 뿐이다. 그래서 매일매일 체육복만 입는다. 체육소녀도 아니고. 그런 체육복인데 집에다 놓고 갔단다. 나도 집에 할 일이 많지만 얼른 체육복을 챙겨서 나간다. 다른 건 빌려 보겠지만 친구들보다 키가 작은 아이에게 맞는 체육복이 없을 것이고 (친구들 키가 거의 170이다. 여자애들 기준) 이제 월요일인데 금요일 저녁에나 벗을 체육복이 벌써부터 없으면 너무 곤란하다. 그러게 하나 더 사라니까 정말 말도 안 듣는다. (이 일이 있고난 뒤에 하나 샀다)


체육복이 아니더라도 학교에 갈 일은 종종 있는데 문제는 연락이 안 되는 거다. 키티폰을 쓰는 아이가 매일 전화벨소리를 꺼놓으니 통화는 거의 불가능이고 거의 아이패드로 보내는 문자로 뭔가를 물어보거나 할 때 바로 대답을 안 해주면 나중엔 됐다고 한다. 진짜 5분 안에 답하지 않으면 그게 무슨 일인지 알 수가 없다. 내가 5분대기조도 아니고... 뭐가 됐다는 건지. 왠지 찜찜하다. 바쁘다고 잘 설명도 안 해주니 뭔가 요구할 때 바로바로 해주지 않으면 내가 더 답답한 상황이 되어 버린다. 그래서 내 핸드폰은 언제나 소리를 켜놔야하고 소리를 꺼야 할 땐 애플워치에 의지한다.      


모두들 아이가 공부를 알. 아. 서. 잘하니 얼마나 좋냐고 하지만 글쎄... 그런데 나는 이 아이가 왜 이렇게 키우기 힘든 걸까. 이렇게 하루 24시간 신경 써야 하고 틈틈이 집에 있는 다른 가족들도 키워야 하고 (아들, 강아지, 남편)


그러다 며칠 전 그 이유를 알아냈다. 몇 년 전 아이의 사춘기가 극에 달해 있을 때 받은 심리검사결과지를 며칠 전에 자세히 보았는데 공감이 0이다. 내눈으로 보기에 공감그래프가 거의 바닥에 닿아있다. 그러고 보니 6살이나 어린 작은 아이는 내가 힘들다고 얘기하지 않아도 엄마 힘들지 않냐며 가끔은 자기가 원하는 게 있어도 말하지 않았었는데 큰아이는 그런 적이 없다. 오죽하면 내가 자기 때문에 속상해서 밥을 못 먹고 있는데도 혼자 햄버거를 시켜 먹는 거 보고 뭐 저런 괴물이 있나 싶었었다. 같은 시간 작은 아이는 자기 저금통을 털어서 죽을 사 온 거랑 너무 비교가 되었다. 그동안 내가 아이를 잘 못 키웠다고 생각했었는데 이건 절대 내 탓이 아니다. 날 닮은 건 아니니 남편을 닮은 거다. 어쩐지 시아버님 성격이 차가운 면이 있으셨다에 생각이 이르고 보니 남편이 더 미워 보인다. 아... 밥 주기 싫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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